‘안나 카레니나’ 윤공주가 말하는 행복이란? "내가 공주여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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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1년 여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 작품은 화려한 무대, 스케이팅이 접목된 안무, 환상적인 오페라 아리아 등 많은 볼거리와 매혹적인 여인 안나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 자유, 행복, 죽음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의 캐스팅 보드에 뒤늦게 이름을 올렸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무대를 단단히 채우는 윤공주는 이 작품을 통해 생애 두 번째 타이틀 롤을 맡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킬 박사를 사랑하는 런던 클럽의 무용수 루시로 분해 무대에 올랐던 윤공주는 이제 안나 카레니나라는 새로운 이름과 옷을 입었다. 자유와 행복을 원했던 안나로 변신한 윤공주가 그리는 안나와 그녀의 행복에 대해 들어보고 싶었다.

 
Q ‘안나 카레니나’에 뒤늦게 합류하게 됐어요.
정말 갑작스럽게 함께 하게 됐어요.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지킬앤하이드’ 서울 공연이 끝났고, 지방 투어와 올해 연말 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었던 터라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4월에 영어학원도 등록했어요. 삼십 대의 마지막에는 ‘영어 공부를 하자’라는 계획을 세웠거든요. 그런데 인생은 진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결정을 내리니까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어요. 대표님 전화받고, 계약서 오고 가고, 합류 보도자료 나가고, 프로필 사진 찍고, 첫 음악 연습 가는 것까지 일주일 만에 진행이 됐으니까요. 연습에 합류했을 때가 연습 시작 2주 정도 진행됐을 때에요.

제가 그동안 정말 이렇게 급하게 결정하거나 합류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안을 주셔서 감사했고, 망설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한 가지 걱정됐던 것은 제가 남들 한 번 할 때 저는 열 번 해야 하는 좀 느린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연습 초반에는 '지킬앤하이드'를 하고 있어서 완전히 ‘안나 카레니나’에 올인할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지금 무대에 오르고 있는 공연에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아침 10시에 런스루를 돌고 저녁 8시에 공연을 해야 하니까 아프지 않으려고 체력 관리에 더 신경을 썼어요. 두 작품을 연습하고 공연해야 해서 여러 가지 조율하고  힘든 점도 있지만 사실 너무 행복했어요. 비록 늦게 저에게 왔지만 너무 좋은 작품이고 그 안에서 최고의 캐릭터를 만났으니까요.

Q 첫 공연을 올린 소감이 궁금해요. 2016년 ‘아이다’란 작품 이후 두 번째 타이틀롤이기도 해요. 
전 로딩이 뒤늦게 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벌써 이만큼 하니 나중에는 얼마나 잘 하겠어요? (웃음) 이틀 쉬고 무대에 오르니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두려움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물론 '안나 카레니나'라는 작품에 안나로 나온다는 것이 좋지만, 저 혼자 하는 공연이 아니잖아요. 브론스키 역의 배우들을 비롯해서 다른 배우들을 믿고, 다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런데 리허설 백 번 해봐야 진짜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게 더 좋아요. 느낌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첫 무대를 서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다짐도 다시 세웠고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채워지면 좋은데요. 그게 내 맘처럼 되지는 않더라고요. 매일매일 라이브라는 것이 공연이 묘미고, 똑같지 않지만 기본은 채워서 가고 싶었어요.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Q 안나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 하셨나요?
안나를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주변에서도 많이들 말씀을 하시는데요. 공감하기 어렵기도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인간은 항상 진짜 사랑을 갈망하잖아요. 누구나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고요. 대본을 보고 안나의 순간순간의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그녀의 마음이 공감이 됐고요. 안나의 사랑은 드라마에서 가능한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누구보다 당연히 먼저 그 캐릭터에 대해서 공감하고 이해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 역할을 하기로 결정을 한 이상,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안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역할을 맡았으면 당연히 이해하고 무엇보다 연기하는 내가 먼저 캐릭터를 사랑해야 해야 하는 거니까요. 비록 제 현실에서는 그런 선택을 못 하겠지만 제가 표현하는 곳은 무대고, 그 속에 있는 인물이니까요.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죠. 안나의 사랑의 결말이 비록 죽음이라는 종착역이었지만 안나는 끝까지 가봤기 때문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선택이 없는 말 그대로 죽음 같은 사랑인 것 같아요. 안나에게는 이거 아니면 죽음이었으니까요.

Q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작품에 러시아 연출이 직접 연습에 함께 하셨어요. 그동안 했던 작품과 연습 스타일이 다르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그동안 해오던 연습 시스템이 아니었어요. 체계적으로 하기보다는 그날의 감정에 되게 많이 충실하게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왜냐햐면 배우들은 다음날 무슨 연습을 한다고 하면 그 장면을 미리 숙지해서 가는 편인데. 여기는 런스루를 초반부터 돌면서 순간순간의 진짜 진실된 감정을 갖길 원하셨거든요.

예를 들어 “남자를 만났을 때, 그렇게 남자를 쳐다볼 거야? 브론스키가 너를 안았다고 생각해봐. 그런 식으로 만질 거야?” 같은, 감정을 끌어내는 데 많이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많이 도움 됐어요. 그런데 다음날은 “왜 어제 한 것처럼 안 하냐”라고 하기도 하고요. 배우들이 로봇은 아니니까요. 어제처럼 똑같이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최대한 연습한 걸 잊지 않고 표현하려고 했어요.

Q 상대 역인 브론스키 역의 김우형, 민우혁 배우와는 이전에도 함께 연기한 적이 있어요.
제가 파트너 복은 참 많은 것 같아요. 둘 다 정말 멋지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은 다 결혼해서 애도 낳고 가정적이고 너무 완벽해요. 우형이는 십 년도 더 된 오래된 친구고요. 둘이서 작품도 많이 했어요. 우형이는 칭찬도 많이 해주고 제가 지쳐 있을 때마다 힘이 되는 메시지를 줘요.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돼요. 우혁이는 동생인데 듬직해요. 저와 ‘아이다’, ‘지킬앤하이드’를 같이 했어요. 이번에 제가 늦게 합류했지만 초연에 참여했던 우혁이 덕분에 많은 팁을 받았어요. 다른 배우와도 그렇지만 브론스키와 붙는 장면은 정말 온전히 믿고 갈 수 있어요. 안나의 연기가 힘들지 않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 다 이들 덕분인 것 같아요.
 
Q 극중 안나가 극장에 가서는 듣는 패티의 아리아 뿐만 아니라 귀에 들어오는 넘버들이 많아요.
극중 패티의 ‘죽음 같은 사랑’은 저도 너무 황홀해요. 비록 그 장면에서 볼 순 없고 듣기만 하지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뮤지컬 안에서 오페라를 들으니 새롭고 잘 어울리고 신선해요. 패티가 안나 대신 안나의 이야기를 해줬다고 생각해요. 안나가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다른 이에게 질타와 비난을 받는 선택을 했지만 끝까지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그 노래에 위안을 얻고 마지막 선택을 한 거죠.

배우 입장에서도 연습하면 할수록 안나의 심리 상태와 멜로디가 잘 맞아떨어지니까 좋더라고요. 안나의 곡에서 그동안 쓰지 않았던 소리를 많이 썼어요. 제가 보통은 떠 있는 호흡이 있었다면 이번에 음악감독님은 안나의 노래는 더 묵직하게 내려서 더 강단 있게 좀 더 밑에 소리를 내기를 원하셨어요. ‘자유와 행복’은 마치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부르라는 주문이 있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은 아들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에요. 너무 아름답고 슬픈 곡이에요. 이 넘버가 나오는 장면 리허설할 때 아들로 나오는 서준이가 잠든 거를 연기하는데 아이들이 안겨 있을 때 엄마에게 한번 더 안길 때가 있잖아요. 서준이가 저한테 그러는 거에요. 그 순간 전 제 아이도 없는데 눈물이 울컥 나더라고요. 너무 좋은 감정의 경험이었어요. 이런 것이 엄마의 마음인가 싶기도 하고요.  
 
Q 플레이디비 인물 DB에서 보니 데뷔가 2001년입니다. 벌써 이십 년 차 배우가 됐네요.
제가 10살부터 연기를 했더니 벌써 그렇게 됐네요. (웃음)  제가 2001년 ‘가스펠’이란 작품으로 대학교 2학년 때 오디션을 봐서 우연히 참여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학생이니까 학교 다시 다니고요. 그 뒤로 2003년에는 ‘토요일 밤의 열기’를 하게 됐고요. ‘사랑은 비를 타고’, ‘그리스’를 했고요. 스타로 확 뜬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씩 늘게 됐어요.

사실 제가 연기를 전공하긴 했지만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뮤지컬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막연하게 어떤 장르가 될지는 몰랐지만 연기에 대한 꿈은 있었던 것 같아요. 노래에 대한 재능은 많지 않은데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제2외국어가 스페인어였는데 축제에 나가서 스페인 노래도 불렀어요. 그때는 연극도 하고 응원팀에서도 활동하고 체육대회 나가고요. 아마 뮤지컬 배우가 안 됐으면 체육인이 됐을 것 같아요.(웃음) 제가 순발력이 없는데 지구력이 좀 있어요. 승부욕도 있고요. 몇 년 전에 배우들끼리 체육대회가 있는데 제가 계주에 나서서 역전 시켜서 이긴 적도 있어요. 그때 VIP 상을 수상했어요.

Q 데뷔 초에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역할도 많이 했었어요.
배우라면 작품을 할 때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죠. 저는 좋게 표현하면 도화지 같은 얼굴이에요. 청순가련형, 섹시한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파워풀 하지도 않은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저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제 모습을 장점으로 생각해주시고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여성스럽고 예쁜 목소리 덕분에 어릴 때는 청순한 역할들을 많이 주어졌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웃긴 거도 하고 싶었고요. 처절한 삶 속에 있는 여인도 표현해보고 싶었고, 강한 여인도 해보고 싶었고요. 하다 보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안나도 하게 된 것 같아요.
 
Q 한결같이 무대에 서온 윤공주가 윤공주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해본 것 같은데요. “내가 공주여서 정말 고마워.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서 고맙고, 모든 역경과 아픔을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아. 앞으로도 지금만 같으면 좋겠어”라고 해주고 싶어요.

어릴 때는 정말 스스로를 압박하면서 열심히만 했거든요. 지금도 옆에서 보면 저한테 혹독하게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윤공주 저더라고요. 이십 대 때는 틀 안에 갇혀서 ‘해내지 못 하면 안돼’라는 면이 강했다면, 삼십 대 지나고서는 ‘하면 다 된다’는 걸 알았어요. 어려움, 힘든 과정 속에 ‘결국은 해 내는구나’를 이제는 알게 됐어요. 그런 과정 속에 결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거기서 오는 기쁨이 너무 커요.

여행 가는 것도 좋고 쉬는 것도 좋지만 사실 아무도 부럽지 않아요. 제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걸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무대라는 곳이 저한테는 가장 큰 기쁨이고, 재미있는 놀이터고, 큰 즐거움이에요. 물론 거기에도 책임감도 있고 스트레스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잘 까먹어요. 그래서 그런지 오디션에 떨어지면 ‘역시 나는 안 돼’ 라거나, ‘왜 나는 오디션에 약하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동안 이걸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은 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못 할까’라는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다른 걸 해야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나는 계속하고 싶은데 나중에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두려움이 있죠.

그러니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으니 안 할 수가 없어요. 행복한 이 순간을 누리고 싶어요. 저도 못 해냈을 때, 좌절하고 자기만의 방에 들어간 적도 많아요. 그렇지만 부족한 건 채워 나가면서 무대에 서고 좋은 작품을 하는 기쁨과 감사함을 마음껏 누리면서 순간순간을 보내고 싶어요.

Q 윤공주 개인의 행복은 어디서 찾나요?
저는 걷기를 좋아해요. 제일 길게 걸었던 건 합정역에서 한남동까지 왕복 4시간 걸은 적도 있어요. 걷기는 사실 다이어트 때문에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어요. 처음에는 운동을 위해서 헬스장에서 하는 걷기 해봤는데 답답하고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밖에서 걷게 됐는데 장소에 구애 안 받고 어디서나 걸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걸으면서 자동차 소리, 사람들 이야기 소리도 듣고요. 작품 하는 중이라면 작품, 캐릭터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걸으면서 생각하다 보면 고민도 별거 아닌 게 돼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걸어요. ‘안나 카레니나’를 하고 있는 블루스퀘어는 남산이 가까우니까 정말 좋아요.

걷기 전에는 귀찮고 걸으면 힘들어요. 그런데 백 프로 확실한 건 아무리 힘들어도 걷고 나서는 백 프로 기분이 좋아요. 요즘에는 날씨가 좋으니까 ‘하루 종일 걷고만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그렇게 걷고 나서 밥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웃음) 세상 다 똑같은데 부정적으로 살면 뭐 해요. 마음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진짜 삶이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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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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