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를 꿈꿀 수밖에 없었던 그들, 연극 ‘어나더 컨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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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 베넷(이동하), 토미 저드(이충주)

규율과 질서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사회, 그 안에서 처절히 신음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제작사 PAGE1이 ‘아마데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프리뷰공연을 거쳐 현재 본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중이다.

지난 30일 언론에 공개된 ‘어나더 컨트리’의 무대에서는 1930년대 영국 사회의 시대상과 그 속에서 다른 세계를 꿈꿀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들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그려낸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이야기는 외부 세계가 강요하는 통념과 끊임없이 싸워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야 하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다.

‘어나더 컨트리’는 극작가 줄리안 미첼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쓴 희곡이다. 1911년 영국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명문 이튼 칼리지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했으나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KGB(소련의 비밀첩보조직)의 스파이로 활동했던 가이 버제스와 그의 후배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존 콘 포드가 이 작품의 모델. 이들의 청년기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조명해 엮은 ‘어나더 컨트리’는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돼 올리비에어워드 올해의 연극상을 수상했고, 1984년에는 콜린 퍼스와 루퍼트 에버렛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 토미 저드(문유강), 워튼(전변현)

이동하, 박은석, 연준석, 이충주, 문유강 등 ‘어나더 컨트리’의 배우들은 이날 극의 결말 부분을 제외한 약 100분간의 장면을 선보였다. 극은 장년이 된 가이 베넷의 독백에서 시작해 그의 과거로 돌아간다. 공연의 주무대는 계급의식이 철저했던 1930년대 영국의 귀족 학교. 이곳에 모여든 청년들은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해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을 꿈꾸며 엄격한 규율로 이뤄진 기숙사 생활을 견디고 있다.

규칙 위반자나 하급생을 향한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될 만큼 이곳의 규율은 매우 억압적이다. 누군가는 어른들의 권위의식을 그대로 내면화해 더 엄격한 규율을 주장하고, 누군가는 대학 진학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거기 동조하지만, 숨막히는 억압과 폭력은 차츰 이들의 일상에 균열을 낸다.
 
▲ 토미 저드(이충주), 커닝햄(윤석원), 멘지스(이태빈), 데비니쉬(강영석)
 
주인공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는 특히 더욱 기존의 질서에 쉽게 순응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겉으로는 자유분방해보이는 가이 베넷은 동성애자로서 태생적으로 동시대의 차별적인 가치관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고, 공산주의자인 토미 저드 역시 자신을 옥죄는 기존 질서를 혐오한다. 그러나 가장 보수적이고 냉혹한 성격의 학생 파울라가 기숙사장이 될 위기에 처하자 가이 베넷은 토미 저드에게 선도부 ‘프리 팩트’의 일원이 되어달라 요청하고, 이들의 상황은 점차 위기로 치닫게 된다.
 
▲ 가이 베넷(이동하)

이번 연극에는 그간 뮤지컬 ‘광화문연가’ ‘더 데빌’ 등을 연출했던 이지나가 예술감독으로, 배우 김태한이 연출로 참여했다. 첫 연출작으로 ‘어나더 컨트리’를 이끌게 된 김태한은 극중 문학자 커닝햄으로도 분한다. 그는 이번 작품과 관련해 “어느 국가나 사회이든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진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며 원작 속에 담긴 보편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이 작품의 주제를 잘 전달하면서도 유쾌하고 위트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그는 “개인과 단체의 사상 충돌, 가치관의 부조리와 모순, 거기서 파생되는 부작용, 서로 다른 사상이 충돌했을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결과들이 이 작품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며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신념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갈등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을 눈여겨볼 것을 권했다.
 
▲ 가이 베넷(박은석)

이동하, 연준석과 함께 가이 베넷으로 분하는 박은석은 극중 인물들이 속한 학교에 대해 “당시 영국 사회의 분위기와 지배적인 사상을 미니어처처럼 압축해 놓은 공간”이라고 설명하며 “이들의 모습을 통해 1930년대 영국 사회 전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처럼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인물은 굳건히 반항하고, 한 인물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한다. 그런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라고 전했다.

가이 베넷과 서로 유일하게 진심을 터놓고 소통하는 토미 저드 역은 이충주와 문유강이 연기한다. 이충주는 토미 저드에 대해 “너무 냉정하고 차갑고 권위적으로만 비춰지면 안 되겠다는 것이 숙제였다. 본인이 원해서 ‘아싸’가 된 친구이고, 사람을 진짜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들을 하는 멋있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라며 “그런 부분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연기하려 했다. 그리고 10대 소년이기 때문에,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 변화를 육체적으로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가이 베넷(박은석), 하코트(이건희)

연극 ‘어나더 컨트리’ 제작진은 앞서 가이 베넷 역 연준석, 토미 저드 역 문유강을 비롯해 바클레이 역 이지현, 데비니쉬 역 배훈, 멘지스 역 이태빈, 파울러 역의 이주빈과 최정우, 델러헤이 역의 김의담, 샌더슨 역의 김기택과 황순종, 하코트 역 이건희, 워튼 역의 채진과 전변현 등 신인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며 이목을 끈 바 있다. 실력 있는 신예 배우들을 발굴하기 위한 시도다. 여기에 데비니쉬 역 강영석, 커닝햄 역 윤석원도 합류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김태한 연출은 “아직 무대 경험이 없거나 적은 배우들이 있어 많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낯설고 새로운 에너지로 표현될 수 있는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보시는 재미도 충분히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며 기대를 높였다.
 

▲ 토미 저드(이충주)


특히 토미 저드 역 문유강은 오디션에서 26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유망주다. 가이 베넷 역 연준석과 함께 안정된 연기와 남다른 존재감으로 시선을 끈 그는 "시청각자료도 많이 활용하며 당시 토미 저드의 모습, 자세를 공부했다. 관객 분들을 설득시킬 합당한 연기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토미 저드라는 인물 속에서 빈틈을 찾고 그 빈틈에서 사람 냄새가 나도록 하려고 했다. 그가 공산주의에 세뇌를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가까운 사상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며 그간의 많은 노력을 짐작하게 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8월 11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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