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토론,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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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개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톨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이 작품은 모두에게 사랑받을만한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안나가 남편과 아이가 있지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안나의 새로운 사랑이 주된 내용이지만 안나를 비롯해 카레닌, 브론스키, 키티, 레빈 등 등장인물을 통해 사랑, 운명, 행복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다른 배경과 색깔을 지닌 두 대담자의 시선으로 안나의 사랑과 선택에 관해 이야기해보았다.

<대담 참가자>

브론스키를 찾아서 (30대 후반)
결혼 5년 차, 아이가 한 명 있다.
 
안나를 응원해 (30대 중반)
미혼의 로맨티시스트, 언젠가 다가올 사랑을 꿈꾼다. 그런데 ASKY.(안생겨요)
 
■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어땠어?
브론스키를 찾아서: 초연 때도 봤지만 이번에 훨씬 몰입해서 봤어요. 그때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안나에게 이입하면서 보게 됐어요. 그러나 이번에 처음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안나의 사랑이나 선택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초연 때는 안나와 브론스키 외에도 키티, 레빈 등 다양한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어서 안나의 이야기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안나가 사랑에 빠지고 또 그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급작스럽게 느껴졌거든요. 이번에 다시 만나서 그녀의 삶과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안나를 응원해: 전 뮤지컬은 처음 봤고, 동명 제목의 영화로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그런가 급작스럽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기차역, 무도회장, 벼 베기 장면 등 영상을 활용한 화려한 무대가 뮤지컬만의 새로운 느낌을 주더라고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기차역에서 시작해서 기차역에서 마무리되는 작품의 구성이었어요. 안나와 브론스키가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나고 안나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면서 작품이 마무리되잖아요. 작품에 대해서 한 줄로 정리해보면 ‘안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이 결국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지만 결국에 그로 인해 안나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없고, 그래서 죽음이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맞아요. 기차역이 등장하는 오프닝과 마지막 장면이 참 강렬했어요. 역무원이 사회자로 나와 극을 이끌어 가는 것도 신선했고요. 저도 한 줄로 정리하자면 달리는 기차는 멈출 때까지 계속 달릴 수밖에 없잖아요. '스스로 삶을 선택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 안나는 스스로 그 기차를 멈췄다'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 안나의 사랑, 이해할 수 있을까
브론스키를 찾아서: 저는 안나의 사랑을 지지합니다!
 
안나를 응원해: 정녕 안나의 선택이 이끈 결말을 보시고도 사랑을 택하실 거예요? 저는 사랑에 목숨 걸지 않으렵니다! 저는 소중하거든요, 후훗.
 
브론스키를 찾아서: 설령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저는 해 보고 후회할래요. 전 결혼도 했고, 아기도 있는 입장이지만 이런 작품을 보면 꿈을 꾼다고 생각해요.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이렇게 해볼 수 있을까요? 아마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못 하니까 이 작품을 통해서 꿈꾸고 즐기는 것 같아요. 안나가 자유와 행복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고구마에 사이다를 마시는 것처럼 막힌 속을 뻥 뚫어 주는 것 같았어요. 안나의 당당한 모습이 좋았어요. 또 1막 후반부에 안나가 브론스키와 심상치 않음을 안 남편 카레닌에게 “나는 브론스키와 대화만 했을 뿐”이라고. “뭐가 문제죠”라고 이야기하는데, 남편의 입장에서는 안나가 얄미울 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정말 그때까지도 안나는 거리낄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요.
 
안나를 응원해: 안나는 그때는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걸까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아니죠. 점점 브론스키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애써 누르고 있었겠죠. 사랑하다 보면 옆에 장애물도 있고, 훼방꾼도 있어야 더 불타오르잖아요. 작품에서도 안나와 카레닌과의 설전 후 장면이 안나와 브론스키가 재회해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안나를 응원해: 카레닌이 오히려 둘의 사랑에 불을 지핀 거네요. 브론스키를 꿈꾸며 님은 안나가 남편과 자식이 있음에도 당당하게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이 이해되셨어요? 전 안나의 공개적 불륜을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일단 결혼을 했으면 상대에게 충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결혼을 했으면 상대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죠. 안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게 그녀를 파멸로 이끈 패착이었다고 봐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안나를 응원해 님 말처럼 결혼했으면 서로에게 성실하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전 안나의 마음에 구멍이 여기저기 났는데 남편 카레닌은 그걸 알아 채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안나를 그저 사교적인 자리 무도회에서 가장 빛나는 예쁜 꽃, 자기 아들의 엄마 정도로만 여겼던 것 같아요. 안나의 마음에 구멍이 난 게 전적으로 카레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멍이 점점 커질수록 안나는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안나를 응원해: 확실히 기혼자라서 부부 관계를 매우 디테일하게 보시네요. (웃음) 브론스키를 찾아서 님 말대로 남편의 책임도 있어요. 일 중독이고 아내에게 신경도 안 쓰고 안나가 바람을 피우니까 그때야 집착하고요. 그래서 저는 결혼과 사랑이 결코 잘 맞는 짝꿍이 아니라고 봐요. 안나의 비극적인 결말은 이것에서 비롯된 사건 같아요. 결혼 제도와 사랑의 양립 불가능.
 
저는 사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안나를 자기 욕망을 위해서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도, 애인도, 아이도 다 가지려고 하는 욕심쟁이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서는 오히려 안나는 순수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을 잘 모르고 사랑을 좇아간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느낀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욕망을 가진 여성한테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전 결혼제도에 비판적인 입장이에요.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일정 정도는 이해 관계 위에서 성립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사랑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죠.
 
브론스키를 찾아서: 맞아요. 사랑은 둘이서 물불 안 가리고 할 수 있다 쳐도, 결혼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안나가 사람들의 입방아 오를 내릴 때, 브론스키는 아무런 질타도 받지 않고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래 걱정에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당부는 하죠. 그런 면에서 안나에게 연인을 빼앗긴 키티가 안나를 위로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 키티와 레빈의 사랑
안나를 응원해: 저는 키티와 레빈의 사랑을 보면서 장동건이 나왔던 ‘패자부활전’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어요. 각자 애인에게 차인 사람들이 애인의 뒷조사를 하다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에요. '안나 카레니나'와 이 영화의 구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키티와 레빈이 어쨌든 처음 사랑에 실패해서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잖아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전 오히려 안나가 이해는 되지만, 키티의 사랑은 공감이 안 됐어요. 어떻게 보면 레빈은 헛다리를 짚은 거잖아요. 레빈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건 키티의 잘못은 아니지만 1년 후 둘이 다시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 별로 와닿지가 않더라고요. 처음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던 사람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안나를 응원해: 내가 힘들 때 누군가 계속해서 나를 마음에 품고 잊지 않았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감동적이에요. 전 키티와 레빈의 사랑을 응원해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거라지만 키티가 너무 급작스럽게 레빈에게 다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키티가 레빈이 귀족이지만 농촌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고자 하는 걸 충분히 이해했을까 싶기도 했어요.
 
안나를 응원해: 레빈과 키티가 다시 재회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시면 그 열쇠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레빈이 창문에 이니셜로 자신의 마음을 써서 키티에게 자기의 마음을 고백하잖아요. 키티도 거기에 같이 동참하면서 즐거워하고요. 거기서 레빈에게 심쿵 했어요. 키티가 아니라 키티 할머니라도 반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안나를 응원해 님 만약 현실에 브론스키 같은 남자가 나타나 사랑 고백을 한다고 생각해 봐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안나를 응원해: 아,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브론스키냐, 레빈이냐? 이러실 겁니까? (웃음) 비록 재회 장면이 환상적이긴 했지만 막상 만나보면 지루할 것 같기도 하네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거 봐요. 브론스키가 끌리잖아요.
 
안나를 응원해: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기차역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잠시 스쳤는데, 그 짧은 첫 만남이 얼마나 강렬했을까요? 거기서 브론스키가 아니고 레빈이 나타났다면, 안나가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안나를 응원해: 아무래도 사랑에 빠질 확률이 떨어지겠죠. tmi 긴 한데 전 이제 나쁜 남자는 사양하는 삶을 살려고요. (웃음) 전 브론스키가 진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요. 안나가 결혼한 걸 알면서도 접근했잖아요. 기차역으로 안나를 찾으려 가고 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에도 같이 타서 대뜸 카레닌에게 집에 초대해 달라고 인사도 하잖아요. 너무 대범해요. 이건 완전히 꾼이에요, 꾼!
 
브론스키를 찾아서: 전반적으로 2막에서 브론스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브론스키는 진짜 안나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안나와 브론스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거죠. 제가 안나였어도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 안나의 마지막 선택
브론스키를 찾아서: 안나의 마지막 선택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서 브론스키에게 갈 것이냐. 아니면 카레닌에게 돌아가느냐. 어디가 더 행복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그 두 가지의 길은 정답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안나가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의아한 것은요. 마지막 부분에 뒤늦게 브론스키가 극장으로 달려왔을 때, 전 안나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봤거든요. 그때 안나의 눈빛에서 일말의 희망, 기대 같은 것이 살짝 스쳤던 것 같기도 해요. 그때 브론스키가 했던 말이 안나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보면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한 일 중 제일 잘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여기 왔냐”라는 의미의 말을 했거든요. 여자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텐데, 그 순간 안나가 원하는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시 안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 채 극장을 뛰쳐나간 것 같아요.
 
안나를 응원해: 지금 시대는 여성도 과거에 비해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잖아요. 전 안나의 선택이 아쉬웠어요. 비록 카레닌과도 브론스키와도 사랑이 끝났지만 모든 사랑에는 끝이 있는 거잖아요. 사랑의 유효기간이 천 년, 만 년이면 좋겠지만 아니잖아요. 브론스키나 카레닌이 없어도 당당히 잘 살아가는 안나가 등장하는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가 다시 쓰였으면 좋겠네요.
 
브론스키를 찾아서: 정말 그런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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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리 /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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