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뉴욕 에세이] 제2편 - 비행기 속 열 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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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기와 이어폰
음악을 듣지 않아도 이어폰을 한번 끼워봐. 때론 귀를 막으면 스스로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어. 난기류처럼 출렁이는 미움의 마음도, 귀를 조여 오는 압력 같은 낮은 자존감도, 비행기의 큰 소리를 닮은 스스로 만들어낸 소음도 마주할 수가 있어. 이 마주한 것들을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모두 곱게 타일러 보내야지 싶어.

2. 너라는 존재
기내식을 먹고도 잠이 오지 않아 글을 적어보려 했어. 글을 쓰려니 네 생각이 나더라. 너는 내가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어. 알 수 없는 단어만 끄적이다 다시 잠을 청했어.
 
3. 담요
어릴 적에, 아니다. 고백컨대 대학생 때 처음 외국에 나갔으니 어렸을 때가 아니지. 비행기를 타면 기내 담요를 숨겨 가져오는 걸 자랑삼았던 적이 있었어. 그러고 보니 타인의 시간이나 노력 혹은 마음도 가져오고는 그걸 자랑삼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 미성숙해. 뒤늦은 사죄를 보내고 싶어.

4. 비행
하늘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개미만 한데, 땅 속 개미들이 바라보는 인간은 하늘만 하겠지? 진정한 나는 얼마만한 존재일까? 어느 때엔 위에서 내려다보고 어느 때엔 아래서 올려다보는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가고 옴
뭐야. 가는 데엔 9시간인데 오는 데엔 11시간이네. 가는 길과 오는 길, 오르는 길과 내리는 길이 같을 거라 생각하면 큰일이겠다.

6. 혼자와 같이
‘혼자가 무서워 같이 갔는데 같이가 무거워 혼자서 왔다’ 어젯밤 적은 나의 일기. 이건 ‘나’라는 인간의 혼란이며 교만. 또한 뭔지는 모를 대단히 큰 것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의 신호탄.
 
7. 안전벨트와 계약서
이 두 가진 문제가 안될 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가 될 땐 문제의 중심이다. 이것을 실행함에 있어 중요한 건 ‘loose’. 살짝의 자유함에 완전한 속박이 있다. 어쩌면 너와 나처럼.

8. 시차
사람들이 올려 둔 시차 극복 방법이 다양하지만 거 참 쉽지가 않네.
사람 사이의 생각 차, 삶을 바라보는 시선 차, 세상을 마주하는 자세 차, 상대를 위한 배려 차
사람 사이의 시차 적응도 갈수록 쉽지가 않아.

9. 구명조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이 전혀 없을 땐 좌우를 살피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세요. 신이 내린 구명조끼와 산소호흡기가 분명 내려와 있을 테니까요.

10. 눈빛 교환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기내방송. 지겨울 것만 같던 비행도 아쉬운 맘이 든다. 뭐 좀 가져다 달라고 눈빛을 몇 번 교환했을 뿐인 승무원들과도 우정이란 게 생겼나 보다. 눈빛 교환. 너와 나의 시작. 여행의 출발. 어디 한번 내려볼까?

[카이의 뉴욕 에세이] 제1편 - 뉴욕 소네트 보기
[카이의 뉴욕 에세이] 제3편 - 맨하튼에서 당신을 생각하다 보기

글: 카이
사진: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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