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뉴욕 에세이] 제3편 - 맨하튼에서 당신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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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욕이란 이름
이름만으로도 벅찬 ‘뉴욕’. 내가 여기 서 있는 건 어쩌면 조각조각이 합쳐진 나라는 완성된 퍼즐일 거야. 뉴욕. 지금 너의 존재가 나를 벅차게 해주고 있는 거, 혹시 아니?

2. 스트랜드 서점에서
가끔씩은 책보단 서점의 향기가 좋다.
가끔씩은 그녀의 의미보단 그저 살결이나 의미 없는 숨소리가 참 좋다.

3. 공항 게이트 앞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큰 몸짓은 버선발로 달려나가 꼭 안아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문 열고 두리번거릴 때면 나 그렇게 달려가 꼬옥 안아줘야지.
 
4. 거리의 음악
노래와 시가 참 좋다. 거리의 노래란 한계가 없는 큰 울림. 거리의 시란 절제된 공기의 언어. 그런 노래와 시를 읊고 싶다.

5. 호텔에서 책을 읽다
어떤 글을 읽고 미칠 듯 슬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특히 호텔 방의 적막 속에서. 그건 영화나 연극 같은 형태가 주는 감정과 움직임이나 속도 자체가 다르다. 잡거나 가로막을 수 없다. 그 칼날 같은 움직임에 베이면 쉽사리 낫지도 않아 매일같이 피가 고인다.
 
6. 이동 버스에서의 단상
하나. 복잡함을 느낄 때 단순해지려는 노력이 가능해졌다. 엄청난 성장의 증거다.
둘. 당신이 말한 단어 속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 갇혀있다. 긍정적 혹은 부정적 단어 모두. 그래서 때론 일부러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길 바랄 때도 있다. 이해할까 봐 두렵다.
셋. 사랑은 행복한 감정뿐 아니라, 자괴, 불안, 분노, 열등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포함한다. 그래서 그것은 시작함으로 끝나고 끝남으로 시작된다.
 
7. 브라이언트 파크에 앉아
하나. 낯선 장소에서 읽는 낯선 책의 향기는 비할 수 없이 향긋하다.
둘. 하늘의 해와 달도 떨어지거늘 하물며 나의 작은 인생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신은 세상 모든 미물에게 오를 때와 떨어질 때를 분명하게 구분하셨다. 어떤 때엔 스스로가 뜨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자각할 수 없는 게 나을 수 있겠지만 가장 현명한 건 그 두 때를 잘 구분하며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예비하고 걸어가는 것이리라.
 
8.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
꽃이 좋다. 연약함이 좋다. 매일 피지 않아서 좋다. 향기가 나서 좋고 나지 않아서도 좋다. 만개가 좋지만 꽃봉오리가 펴지기 직전의 희망이 좋다. 떨어지는 꽃은 더 좋다. 그들의 어우러짐이 좋다. 그냥 너라서 좋다.

9. 옐로 택시를 보다가.
나이가 들수록 원색이 좋아진다고 하잖아.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거든? 원색은 주저함 없이 자신을 나타내잖아. 지난 시절 내가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 순전히 밝히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닐까 싶어. 그때 왜 더 사랑을 말하지 못했을까. 그때 왜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고 그때 왜 내 곁에 있어달라고 갈구하지 못했을까. 더 나이가 차기 전에 원색이 되어 보아야지.
 
10. 나태주 시인의 책을 읽고 끄적임
나태주.
당신은 내가 침대로 가기 전 이불이 되어 덮어주었다
꿈속에서 누군가를 눈물로 부르기 전에 달콤함을 미리 선물해주었고
한겨울 방바닥의 한기를 꽃으로 덮어주었다
나태주.
만약 당신의 이름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 꼭 그의 품에 안겨 사랑을 얘기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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