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시 속의 위로와 아름다움 전하고 싶었다" 뮤지컬 신작 ‘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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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문재를 가졌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조선 중기의 대표적 여성 시인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뮤지컬 무대에서 재탄생했다. 지난 23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만난 뮤지컬 신작 ‘난설’은 허난설헌(허초희)이 남긴 시어를 그대로 담아낸 가사와 음악, 수묵화처럼 여백의 미를 살려 단출하게 구성한 무대가 어우러진 소박한 공연이었다. 특히 아름다운 음악으로 여운을 남겼던 이날의 공연 후 제작진과 배우들이 남긴 이야기를 전한다.

“허난설헌의 시에서 위로 받아…시의 아름다움 전하고 싶었다”
옥경선 작가와 다미로 작곡가가 함께 만든 뮤지컬 ‘난설’은 허난설헌의 남동생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되기 전날 밤 누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마침 그와 허난설헌에게 시를 가르쳤던 스승 이달이 허균을 찾아오고,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극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허난설헌과 이달의 첫 만남을 비롯해 시에 대한 허난설헌의 깊은 열정과 빼어난 재능, 올곧은 성품이 엿보이는 일화들이 이어지고, ‘견흥(遣興)’, ‘상봉행(相逢行)’ 등 그녀의 시를 가사로 담아낸 음악이 함께 어우러졌다.
 
허난설헌은 여성에게 비교적 관대했던 집안 환경과 오빠 허봉의 독려 속에서 8세 때부터 시를 쓰며 재능을 드러냈으나,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한 후 가부장적인 결혼 생활 속에서 거듭된 유산과 친정의 몰락 등으로 괴로워하다 27세에 숨을 거뒀다. 우연히 그녀의 시를 접하고 그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는 옥경선 작가는 그러나 허난설헌의 시에서 오히려 큰 위로를 받았다고.

“(허난설헌의) 삶은 힘들었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해주는 느낌이었다. 매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처럼 담아낸 시들이어서 큰 위로를 받았다”는 옥경선 작가는 그 시의 아름다움을 공연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한 허난설헌과 허균, 이달이 시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힘과 위안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자 했다고. ‘견흥’과 ‘상봉행’을 비롯해 ‘가객사(賈客詞)’, ‘죽지사(竹枝詞)’, ‘유선사(遊仙詞)’와 허난설헌집의 유일한 산문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의 문장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한글말 풀이를 함께 담은 가사가 이같은 작가의 뜻이 담긴 결과물이다.
 
“무대·음악 수묵화처럼 그려내고자 했다” 
음악과 무대도 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으로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인상에 노미네이트됐던 이기쁨 연출은 “전체적으로 수묵화같은 느낌을 많이 내고 싶었고, 인물들이 시처럼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화선지처럼 하얀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 자체로 시나 그림처럼 보여지기를 바랐다고. 배우들이 노래하는 장면에서 한자 시어가 바닥 위에 쓰여지는 영상 장치도 이런 연출 의도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그간 뮤지컬 ‘어린왕자’, ‘리틀잭’, ‘달과 6펜스’ 등의 음악을 만들었던 다미로 음악감독은 이번 작품의 음악을 만들 때 처음부터 국악 편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전했다. "시적인 부분을 살리고 싶어 아주 풍성한 음악보다는 수묵화같이 라이트한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기존에 하던 방식을 과감히 내려놓고 간단한 피아노 반주 위에 장구와 국악 현악기 등으로 음악을 채우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소명 갖고 임했다…진짜 시인의 세계 만나보시길” 
이번 공연에서는 정인지와 하현지가 허난설헌으로, 유현석과 백기범이 허균으로, 안재영과 유승현이 이달로 분한다. 정인지는 실존했던 여성 인물을 타이틀롤로 내세운 이번 작품에 대해 “(공연계에) 단지 '여자'가 아닌 그냥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이번 작품도 만족스럽게 하고 있다”며 극중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허난설헌의 결혼생활과 관련해 “그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뮤지컬 속에서 허초희가 자신의 시를 읊을 때만큼은 정말 그 행복했던 시절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현지는 "소명을 가지고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며 “꿈 많았지만 그것을 접고 살았던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탁월한 재능을 가진 진짜 시인을 그렸으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말에 따라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다른 배우들도 허난설헌의 시와 그 안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잘 전달하는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일반적인 작품과는 좀 다른 고민을 하게 된 작품”이었다는 안재영은 “이달은 허균에게 허초희의 이야기를 해주고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인물이다. 저로 인해 관객 분들이 허난설헌을 기억하게 하는 구조의 극이기 때문에 이달보다는 허난설헌의 삶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내 손짓과 대사 하나 하나에 의해 허난설헌이 잘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안재영은 “(허난설헌이) 여성으로서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가졌던 한계에 대한 고민도 했다. 요즘 시대에도 누구나 저마다 (환경에 따른)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요즘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관객 분들이 허난설헌의 시를 접했을 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이번 작품이 가진 의미를 짚었다.
 

이어 유승현은 이 극의 은유적 가사와 시구들에 대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해석을 해봤다. 듣는 이에게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가사가 되도록 내가 먼저 해석을 내려 드리기보다 어떻게 중립을 잘 지킬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그간의 신중한 고민을 들려줬고, 백기범은 “직설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한번 머금는 말들이 많다.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릴 수 있는 대사가 많다”는 것을 이 작품의 매력으로 꼽았다.


극중 허균에게 가장 의미를 가진 곡으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꼽은 유현석은 “허균이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 시이자, 허난설헌을 관통하는 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 뮤지컬 '난설'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보기 ◀

뮤지컬 '난설'은 8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콘텐츠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영상 : 이우진 기자(wowo0@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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