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뒤집어 보여주는 우리 세계의 폭력성, ‘이갈리아의 딸들’
- 2019.10.01
- 박인아 기자
- 6663views
금일(1일) 개막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은 그간 ‘DAC Artist’ 프로그램을 통해 윤성호, 이경성, 이승희, 김은성, 여신동 등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지원해온 두산아트센터가 김수정 연출과 함께 선보이는 작품이다. 극단 신세계 대표인 김수정 연출은 그간 ‘광인일기’, ‘공주(孔主)들’, ‘파란나라’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도사린 폭력과 차별, 혐오를 다뤄온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지 남녀간 성차별을 뒤집어 비추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무대 위 뒤집힌 세상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이 시스템의 피해자가 남자만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여기서는 립스틱을 바르고 싶은 여자나 레즈비언도 비정상 취급을 당하며, 어릴 때부터 늘 거칠고 주도적인 ‘상여자다움'을 장려 받아온 딸들도 어딘지 어색하고 불행해 보인다. 결국 사회가 존재의 우열과 정상/비정상을 규정하는 한 폭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연은 보여준다.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극이지만,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165분간 지루할 틈 없이 경쾌한 속도로 이어진다. 집에선 폭군처럼 군림하다가 밖에선 상급자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는 여성들의 모습은 거꾸로 가부장제의 위계질서를 통렬히 풍자하고,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거나 “여자는 고쳐 쓸 수가 없어” 등 현실을 비튼 대사들도 실소를 자아내며, 인터미션에서 상영되는 광고 영상조차 섹시한 포즈로 립스틱 ‘이갈루즈’를 홍보하거나 다소곳한 모습으로 피임약 ‘센스보이’를 홍보하는 남성들의 모습으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각기 실제와 다른 성별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에너지도 무대를 가득 채운다. 성큼성큼 자유롭게 무대를 활보하면서도 무채색의 양복과 작업복만 입고 등장하는 여성들, 반대로 불편한 힐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조신한 몸가짐을 하려 애쓰는 남성들의 신체 동작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몸과 근육 하나하나에서 시작된 차별의 경험을 생생히 되짚어보게 한다.
김수정이 연출하고 배우 강지연, 권미나, 김명기, 김보경, 김선기, 김시영, 김정화, 김형준, 민현기, 박지아, 이강호, 이진경, 이창현, 조영규, 하동준, 하재성 등이 출연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은 오는 1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 예매 ☜
[ⓒ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