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중심에 있는 연극 ‘에쿠우스’ 서영주, 이석준 "다이사트의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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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년이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르게 되면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다. 소년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자라온 배경을 하나 둘 펼쳐놓는다. 의사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소년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에쿠우스'를 추적한다. 의사는 소년과 그의 부모와의 상담을 통해 소년이 한 행위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의사는 소년의 치료 과정 중 소년에게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정열을 느끼고 자신의 치료에 회의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44년 동안 공연되며 많은 배우들이 거쳐간 ‘에쿠우스’ 이야기다. 이번 시즌 '에쿠우스'는 무엇보다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새로운 발견이 눈에 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역대 최연소 알런으로 참여해 '에쿠우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서영주와 수많은 작품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석준이 있다. 이들은 전 시즌보다 더 풍부하고 역동적인 캐릭터로 변신해 작품이 주는 에너지를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하고 있다. 전작 '킬미나우'에서 부자지간으로 나왔던 서영주와 이석준은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날에도 여전히 서로를 아빠와 아들로 호칭하며 진한 애정을 과시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둘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Q 두 분이 전작 ‘킬미나우’ 이후 다시 만났어요. 함께 무대에 선 소감이 궁금합니다.
서영주: 정말 아빠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어요. 아빠를 만난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둘이 함께 한 첫 공연도 개막한 후 2주가 흐른 후라 너무 오랜만에 만났거든요. 아빠한테 너무 다가가고 싶은데 제가 알런이라서 그러지도 못하는 게 좀 아쉽긴 해요. 극중 다이사트가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 말 하면 더 다가가고 싶었고요. 더 다이사트에게 마음을 열게 되더라고요.

이석준: 지금껏 배우로 일하다 보니 어느 날 내 앞에 온 작품에 영주처럼 한 번 마음을 맞춰본 친구가 있다는 건 복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실제 무대에서 영주의 알런이 궁금했어요. 이번에 ‘에쿠우스’ 무대에서 노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 아들이 다 컸구나’. ‘세상에 나가도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Q 이석준 씨는 이전 배우들과는 달리 생각보다 젊은 다이사트여서 캐스팅 발표 보고 놀랐어요.
이석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빨리 ‘에쿠우스’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웃음) ‘에쿠우스’라면 애초부터 알런을 꿈꿔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도요. 언젠가 이 작품을 하게 된다면 다이사트를 하고 싶었어요. 나이가 잘 들어서 나이에 맞게 제 역할을 하고 싶었죠. 그게 ‘십 년 후쯤이나, 빨라도 한 오 년 후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내 앞에 거부할 수 없게 작품이 오는 것 같아요. 내가 계획해서 작품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저 작품이 너무 하고 싶고, 저건 ‘운명이야’ 하는 건데도 아직 못한 작품이 있는 것처럼요.
 
Q 실제로 만난 다이사트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이석준: 실제로 대본을 보니까 겁이 나더라고요. 워낙 유명하잖아요. 너무 오랫동안 대선배들이 거쳐갔고, 많은 관객들이 본 작품이기도 하고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좀 두려웠어요. 내 실력이 들통날까 봐서요.
 
처음에 대본을 읽고 생각한 건 내가 그동안 봤던 ‘에쿠우스’가 ‘잘 했다’, ‘못 했다’를 떠나서 ‘너무 알런한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구나’라는 거예요. 관객들도 알런만을 보게 되고요. 그래서 이번에 연출을 만나자마자 했던 말은 “미안하지만 이건 다이사트의 극”이라고 선언을 했죠. “’에쿠우스’는 다이사트가 포문을 열어서 저런 소년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을 탐구하는 다이사트에 대한 극”이라고요.
 
Q 그렇다면 어떤 다이사트를 그리고 싶었나요?
이석준: 다이사트가 능동적인 인물이길 바랐어요. 다이사트는 "소년이 왜 말의 눈을 찔렀을까”라고 질문을 던져요. 다이사트를 뉴스룸의 손석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다이사트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화제의 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을 다 만나요. 물리적으로 무대에 나와 있는 시간도 제일 많고요. 다이사트는 병원이든, 마구간이든, 신전이든, 알런의 집이든 어디든 다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이사트는 알런을 만나서 지금껏 당연하다고 믿었던 걸 부수는 작업을 해요. 부서지고 산산조각이 나서 알런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이 무의미하다는 순간에 도달해야 해요. 그러려면 제일 많이 감정이 흔들려야 하는데 그의 모습이 무대에서는 잘 안 보인다는 게 화가 났어요.
 
다이사트는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알런을 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보이길 원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2막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이사트가 하는 독백은 들을 필요가 없는 대사거든요. 다이사트가 말하는 철학적인 고찰, 심리학 용어들을 나열하는 것을 관객들은 이해하기조차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그게 어떤 상태에서 쏟아내는 감정인지 보이지가 않거든요. 저는 다이사트의 (감정의) 흔들림이 보이고, 어떤 상태에서 그 말들을 쏟아내는 건지 관객들이 이해하고 싶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많이 집중을 했어요. 그래서 연출님을 끊임없이 설득했고요.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동안 해왔던 '에쿠우스'와는 차이가 많이 나서 "너무 앞서 갔다"라는 의견도 받아드려 절충안을 찾았죠.

Q 다이사트는 처음에 판사한테 알런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석준: 17살의 소년이 말의 눈을 찌른다. 이건 소년이 저지르는 잘못 치고는 파격적인 일이었을 거예요. 아마 처음에는 이 아이를 알고 싶어 하는 거대한 호기심이었을 거예요.
 
Q 영주 씨는 지난 2015년 공연에서 최연소 알런으로 주목받았어요.
서영주: 다시 이렇게 알런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해요. ‘다시 알런을 하고 싶다’, ‘더 잘 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살았거든요. 그때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알런만을 바라봤어요. 누가 어떤 말을 하던지 ‘나는 나 알런만 생각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완벽한 이해는 아니지만 다이사트가 나에게 해주는 말, 엄마가 나한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아빠가 왜 이런 말을 해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런 걸 하나씩 생각하면서 하고 있어요.
  
Q 알런은 다이사트가 어떤 어른이었다고 생각해요?
서영주: 이상했어요. 나한테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 의사가 있었나. 판사도 그렇고 다들 나를 보고 “잘못을 저질렀으니, 감옥에 가야 돼”라며 거부했거든요. ‘나는 잘못 저지른 거 없어. 아무리 내가 이야기해도 안 들을 거잖아. 나는 잘못한 거 없어’라는 마음이었는데 다이사트는 달랐던 것 같아요.
 
다이사트는 “너는 잘못을 저질렀어”가 아니라 내 이름을 물어봐 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해줬어요.또 “뭐 하면서 지냈어?, 너네 엄마, 아빠가 이렇게 했다며 넌 그때 마음이 어땠어?”라고 하나하나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나 아빠한테는 “신을 믿어라, 텔레비전은 나쁜 거다”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알런이 원했던 아빠의 모습을 다이사트한테 찾은 것 같기도 해요. 다이사트가 물어보는 사소한 질문 하나하나에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됐던 것 같아요. 알런도 처음에는 다이사트가 신기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 뭐지” 하는 호기심, 물음표가 생기는 것 같아요. 물음표가 생기니까 그 사람과 더 말을 하고 싶고 더 다가가고 싶고, 물어보면 싫다고 빼지만 결국에는 다이사트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고요.
 
Q 다이사트는 알런의 순수한 정열을 부러워합니다.
이석준: 다이사트는 1막 엔딩에서 나오는 알런의 말에 대한 순수한 정열과 경외심을 보고 영적 전이가 강렬하게 왔어요. 정열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심이 점점 알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알런을 세상의 잣대로 치료하려던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린 것 같아요. 사회적인 범주, 세상을 살아가는 통념에 빗대어 알런은 치료할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순수한 정열을 본 다이사트는 괴로워하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약을 통해 이 아이를 멍청하게 만들어서 고치긴 했으나, 난 이 아이를 고쳤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요. 알런은 순수한 대상, 새로운 신을 찾았고 거기에 정열을 쏟았고, 거기서 충분히 행복했는데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끔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막았어요. 알런 주변의 말 한 마리 한 마리가 사실 아빠였고, 엄마였고, 질 메이슨이었고, 다이사트였고, 판사였고, 세상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이 아이는 그저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알런은 최후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Q 두 분도 알런처럼 무언가에 정말로 빠져본 경험이 있을까요?
이석준: 연기를 하고 난 다음부터는 온몸을 던져서 빠져 있는 건 유일한 게 연기에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많은걸 가르쳐 주려고 하셨는데, 모든 게 채 3주를 못 갔어요. 흥미를 못 느꼈어요.
 
솔직히 말하면 뮤지컬도 그랬어요. 어릴 때 제 친구 (이) 건명이는 차에 타면 그렇게 음악을 틀어 놔요. “이 노래 좋지 않아?” 하면서 혼자 노래를 그렇게 따라 불러요. 그럼 전 “넌 매번 음악을 듣니?“하고 묻죠. 그럼 건명이가 “넌 노래가 이렇게 좋은데 왜 안 듣니. 이거 들어 둬야 돼. 이게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올지 몰라” 하는데도 저는 거기에 관심이 없었어요.
 
뮤지컬 ‘렌트’가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에 같이 앙상블로 활동하던 친구들이 모여서 음악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다들 너무 좋아” 하는데 나는 들으면서 전혀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공연을 보고 좋다는 걸 알았어요.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그 상황을 보니까 좋다는 걸 알겠는 거예요. 나는 음악으로는 못 느끼는 거예요. 나중에 연극에 치중하고 난 다음에 알았어요. ‘나는 무대에서 하는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요. 뮤지컬은 연기가 음악적으로 풀리는 걸 좋아했을 뿐이지, 결국에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좋아하더라고요.

서영주: 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다른 것에서 감흥을 받는 건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다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누굴 만나든 무엇을 하든 온몸을 다 바쳐 하는 게 연기 말고는 없어요.

Q 온몸을 다바친 연기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서영주: 도전인 것 같아요. 놓치고 싶지 않아요. 특히 (‘킬미나우’의) 조이나 알런 같은 캐릭터를 만나면 표현하고 싶어요. 내가 작품에서 슬픔과 기쁨 등 여러 생각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내가 만든 물음표를 관객에게 건네주고 싶어요.
 
이석준: 저한테도 물음표에요. 모르겠다 뜻의 물음표라기보다는 연기는 질문해야 되는 직업이거든요. 항상 질문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무슨 작품이든 처음 대본을 들고 연습을 시작할 때 하는 건 대본에 나와 있는 모든 대사에 물음표를 다는 거예요. ‘왜 이렇게 행동하지?, 왜 이렇게 말하지?, 왜 이 시점에 이걸 하는 거지?’ 그래서 공연 올라갈 때 그 질문을 얼마나 지워 나갔느냐가 중요해요. 답을 찾기도 하고, 얼추 근접해 가기도 하고요. 질문을 지워가는 게 연기의 목적이에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작품을 너무 뻔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대의 명작이라고 말하는 작품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답이 계속 변해요. ‘에쿠우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범주도 계속 변하고 넓어지고 좁혀지는 과정을 거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질문을 해야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앞으로 질문을 계속 못 던지게 될까 봐 두려워요. 그리고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적을까도 두렵고요. 질문을 안 하고 편하게 갈 수도 있지만, 그 질문을 풀어가는 고통이 무대에 서는 설렘을 배가 시켜줘요. 그래서 질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서영주: 아빠, 새겨 듣겠습니다.
 
Q 영주 씨는 이십 대가 되면서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어요?
서영주: 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휴학했어요. 학교생활이 저랑 너무 맞지 않더라고요. 대학생이 되니까 혼자 일어나야 되고 시간에 딱 가서 그 수업을 듣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만 다니고요. 낭만이 없더라고요. (웃음) 대학로만 와도 여유가 있는데, 제가 바라던 게 깨져 버리니까 별로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석준: 새로운 즐거움을 가르쳐줘야겠어요. (웃음)

Q 의외의 재미를 주는 게 이번 시즌일 것 같은데, 아직 ‘에쿠우스’를 못 본 관객들이 있다면요.
서영주: 어려워도 재미있어요. 공연을 보기 전과 후가 다릅니다.
 
이석준: ‘죄와 벌’ 같은 책장에서 한 번 빼내기가 어려운 고전도 실제로 읽어보면 의외로 재미있어요.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아도 못 알아듣는 만큼 양의 재미가 있을 거예요. ‘에쿠우스’는 계속 변해갈 겁니다. 언젠가 새로운 프로덕션이 만들어지면 새로운 ‘에쿠우스’가 나올 텐데 지금을 보지 않으면 그 새로움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에쿠우스’가 그 변화의 중심에 딱 있거든요.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생각해야 할 화두가 작품 곳곳에 있어요. 어려울 것 같지만 공연장에 와서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화두들,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다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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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극단 실험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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