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탄생 100주년, 연극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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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낸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역사가 됩니다. 오늘날 역시 예술이 예술답게 존재하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오늘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과 함께 이 세상을 견뎌내고자 합니다." (이윤택)

삶이 곧 연극이고, 연극이 곧 삶이라 했던가. 10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프레스 콜이 지난 6일 열렸다. 이 날은 1956년 9월 6일 타계한 이중섭 화백의 기일을 맞아 특별히 추모행사가 마련되기도 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1991년 처음 선보인 창작극으로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희단거리패가 윤정섭 배우를 비롯한 단원들과 함께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일찌감치 지난 3월 콜롬비아 이베로 아메리카노 연극 페스티벌, 7월 밀양 연극제에서는 이미 공연을 펼쳐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식민시대와 조국분단 등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작품만을 위해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이중섭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일본 여인과의 결혼, 1.4 후퇴로 인한 남하, 정신병원에서의 죽음까지 예술가를 억압하는 시대에서 경제적인 빈곤과 고독 속에서도 꿋꿋이 예술혼을 이어가는 모습을 시간 순서에 따라 가감없이 그려내며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또한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 새, 나무 등을 형상화 한 오브제 소품들과 극 중에서 이중섭 역할을 맡은 배우가 그림을 온전히 무대에서 그려내는 모습들을 통해 이중섭의 미술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 대표는 이번 작품에 대해 이중섭의 삶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 연극제 초청을 받았음에도 항공료 지원이 되지 않아 연극제에 불참할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대극장 대관에 어려움을 겪어 서울 공연도 무산될 뻔 했다고.

“이중섭 선생님의 진한 삶만큼이나 저희 공연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콜롬비아를 갈 때도 항공료 지원이 안 돼 취소를 할 뻔 했다가 어렵게 싼 티켓을 구해 힘들게 다녀왔고요. 서울 공연도 잡으려고 했는데 대극장 대관이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어요. 밀양연극제에서 저희 공연을 보신 윤호진 선생님께서 지금 공연장을 바로 주선해 주셨어요. 진짜 하는구나 싶네요.” (김소희)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2014년 명동예술극장 공연 이후 2년 만에 연희단거리패가 준비한 작품. 합숙생활을 하는 극단 성격에 맞게 2년 전의 작품보다 동적인 부분을 살렸다. 이전에는 없던 길 모양의 세트를 무대 중앙에 설치해, 조금 더 실험적인 부분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이중섭을 그리는 방향도 좀 더 다른 방향으로 그리고자 했다.

“2014년 작품 같은 경우는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선발했습니다. 소속감이 다른 배우들이 모이다 보니 앙상블을 크게 기대할 수가 없었어요. 개인기 위주로 진행을 했었죠. 하지만 연희단거리패 공연으로 이전되고, 또 보고타 국제연극제에도 나가다 보니 서사중심보다는 전체적인 앙상블, 문학성에서 벗어난 연극 고유의 연극성을 강화했습니다. 또 합숙생활을 하는 배우들이다 보니, 움직임이나 이런 것들이 조직화되는 등 대폭 수정을 했어요. 그래서 명동예술극장에서 보신 게 더 대중적이고 좀 더 전통극 적 분위기였다면, 여기는 좀 더 민간극단 적, 실험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또 예전하고 지금하고 극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요. 예전에는 축제적인 분위기였죠. 이중섭이 많이 울었어요. 세상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우는 낭만적인 연극이었죠. 하지만 예술가의 삶은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중섭도 굶어 죽었어요. 화가가 굶어 죽어야 하는 이러한 세상 속에,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됐고, 윤정섭에게도 울지 말고 심도 있게 연기하라고 연출을 했죠. 지난 번 작품보다 조용하고 심화된 분위기로 연출했어요.” (이윤택)
 
이중섭을 연기하는 윤정섭은 이번 작품에서 넓은 감정의 폭을 보여준다. 소년시절의 천진난만한 예술에 대한 열정부터, 고독과 생활고에 찌들어 점점 피폐해지고 타락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연기를 펼친다.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직접 이중섭의 ‘황소’를 그림으로 그리는 등 화가로서의 삶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다. 윤정섭 역시 거장을 연기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저라는 사람이 이중섭 선생님을 연기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일단 그 분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안 어울리지 않나, 이걸 내가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부담이 많았습니다. 얼굴도 닮지 않았습니다.(웃음) 근데 어느 순간 제가 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연희단거리패 극단 소속 배우라 하는 구나 생각하니까 그런 부담이 사라지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외롭고 불안했죠. 그런데도 저의 불안함이 인물의 불안함과 만나서 잘 작용이 됐던 것 같아요” (윤정섭)
 
극중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살려주는 일등 공신은 음악이었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들려주는 동양 악기들의 연주, 그리고 한이 서린 판소리는 파란만장한 이중섭의 삶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피아노와 여러 가지 국악을 활용해, 최대한 배우들의 호흡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연출가의 구체적인 디렉션도 있었고요. 제가 음악감독으로 연희단거리패와 그동안 쌓아온 호흡을 바탕으로 연기에 방해되지 않고, 도움될 수 있는 방향성으로 준비를 했어요. 특히 배우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처음 이중섭이 쓰러지는 장면에서도 제가 퍼커션 흔들면서 같이 쓰러지는 등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김시율)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뭔가..” 라는 얘기를 하며 연출가 이윤택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힘들다는 것, 버려진다는 것”이라며 이중섭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렵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곤 이중섭은 사회적 요인으로 피해를 본 희생자라고 덧붙였다.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60년, 그의 삶을 그린 작품을 통해 이중섭도 하늘에서나마 힘들었던 삶을 위로 받진 않았을까?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이 가족을 만나 비로소 출상하게 된 9월 10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

글 : 이우진(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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