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도리안 그레이> 제작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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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최대 화제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프레스콜 현장은 사뭇 진지했다. 지난 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를 찾은 기자들은 <도리안 그레이>의 제작과정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고 배우와 스탭들은 진지한 자세로 깊이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대본과 작곡, 안무와 여운 짙은 커튼콜까지 <도리안 그레이>의 제작과정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했다.

 
“준수가 한다기에 무용을 늘렸어요.”

지난 7월 제작발표회 때부터 “김준수가 있기에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며 배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던 이지나 연출은 김준수의 역량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도록 안무 분량도 조정했다고 밝혔다.
 
“귀와 눈과 가슴이 감동받을 수 있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오감을 채워주는 총체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준수 군이 이 작품에 함께 한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무용을 강화해서 각색했습니다. 상당히 무용을 많이 넣어서 전형적인 뮤지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는데요, <도리안 그레이>는 전형적인 것을 따르기보다는 색다른 시도를 하는 편이 맞다고 판단했어요.” 
 
 “한 달 동안 치열하게 대본작업”

원작소설과 뮤지컬에 흐르는 ‘유미주의’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준수는 다시 학생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원작을 치열하게 공부했다고 털어놓았다. 두 달 남짓한 연습기간 중 절반을 대본과 인물분석에 투자했다.
 
“원작소설의 번역본이 여러 버전으로 있더라고요. 그걸 다 모아두고 조용신 작가님, 배우 분들과  함께 한달 동안 대본 작업을 했어요. 주어진 시간은 두 달도 안 남았는데 한 달을 책만 보면서 보낸 셈이죠. 중학교 때도 그렇게 공부 안했던 것 같은데(웃음) 대사를 하나 하나 발췌해가면 공부했죠. 그렇게 공부한 게 지금 연기하는데 너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만들고자 했어요. 하지만 너무 알기 쉽게만 풀어내면 작품의 깊이가 떨어져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 작품은 둘 사이의 적정선을 잘 찾아낸 것 같아요."
 
“왜 쇼팽이냐고요? 오스카 와일드가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니까요.”
 
작품에는 도리안 그레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비롯해 쇼팽의 곡들이 곳곳에 녹아 들어 있다. 김문정 작곡가는 주요 장면에 어떤 클래식 곡을 넣을지 고민이 많았다며 작곡과정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사실 쇼팽으로 낙찰되기까지도 과정이 많았어요. 원작에서 피아노를 즐겨 치는 도리안이 표현하고자 했던 곡이 슈만이 작곡한 ‘숲속의 정경’이라서 그 곡을 넣을까 했는데 들어보니 굉장히 난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출님과 의논해서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현대음악을 조사해보기도 했고요, 라흐마니노프의 곡으로 가닥을 잡은 적도 있어요. 각종 클래식 곡들을 찾다가 결국 '쇼팽'으로 귀결한 것은 원작소설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생전에 가장 즐겨 듣던 작곡가가 쇼팽이라고 해서 명분이 있다 생각했어요. 쇼팽을 고른 뒤에는 의논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듣는 곡으로 선택했고요.” 
 
"헨리의 사상은 니체의 초인에 가까운 개념이죠"

<도리안 그레이>의 인물들은 깊은 철학적 고민에 빠져 있다. 원작소설이 발표된 19세기 말 사회에는 엄격한 도덕주의가 팽배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쾌락주의가 대두됐다. 새롭게 떠오른 패러다임이 전통적 가치관과 갈등을 일으키던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껏 뮤지컬에서 보지 못했던 주제의식을 다루기 위해 스탭과 배우들은 깊은 토론을 거듭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탐미주의를 무대에서 다 표현할 수는 없어서 선택과 집중을 했고요. 오늘날 쾌락주의, 탐미주의라고 하면 ‘흥청망청’의 느낌이 떠오르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헨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사상은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있어요. 도덕이나 양심의 억압을 없애고 인간의 본성을 발현시킨 새로운 인간의 패러다임, 니체가 말했던 ‘초인’에 가까운 개념이죠.” (박은태) 

“제가 가장 많이 의논한 배우는 박은태예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이후로 어려운 작품일수록 함께 하고 싶은 배우가 됐거든요. 원작 소설에 담긴 많은 철학사상 중 무엇을 주제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 은태와 같이 찾아갔어요. 니체가 말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간'에 주목했는데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에 대한 인간들의 공포심, 신이나 종교, 양심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간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이지나 연출)
 
“준수 아이디어 덕분에 커튼콜도 살리고 명곡도 살리고."
 
<도리안 그레이>의 관객후기를 보면 커튼콜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리안 그레이>의 커튼콜은 단순한 인사 시간이 아닌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김준수의 의견에서 출발했다.
 
”비밀을 귀뜸하자면 커튼콜에서 부르는 곡은 원래 포함이 안 될 뻔했던 넘버예요. 너무 마음에 드는 곡이지만 러닝타임이 길어질까봐 빼려 했는데 준수 씨 아이디어 덕분에 살릴 수 있었어요. 준수 씨가 ‘그 곡 커튼콜에 넣어서 불러보면 어때요?'했을 때 연출님이랑 저랑 ’우리 이제 됐다’며 팔짝 팔짝 뛰면서 좋아했어요.“(김문정 작곡가)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 심오한 주제의식과 신선한 연출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오는 10월 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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