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으로 <햄릿> 비틀었다, 서울시극단 신작 <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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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을 갖고 되바라진 반역을 한번 해봤다.”
 
희곡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햄릿’이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것도 여자라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시대와 성별을 뒤바꾼 이 발칙한 상상 아래 만들어진 연극 <함익>의 연습 장면이 일부 공개됐다.  지난 8일 서울시극단이 개최한 제작발표회에서다. <함익> 극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이날 “이 연극은 <햄릿>에서 출발했지만, <햄릿>을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되바라진 반역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원작과는 사뭇 다른 공연이 펼쳐질 것을 예고했다.
 
<햄릿>을 모티브로 했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아낸 <함익>은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재벌 2세 여성 함익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마하그룹의 외동딸 함익은 영국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그룹 산하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여성이지만, 자살한 생모가 아버지와 새엄마에게 살해됐다는 의심을 품고 20년 가까이 복수를 상상하며 살아왔다.
 
김은성 작가는 작품 구상 단계에서 햄릿을 재벌가 남성이나 조직폭력배로 그려보기도 했다고. 햄릿이라는 인물이 왕족으로 태어난 ‘금수저’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부와 권력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작품을 그려보니 낡은 플롯처럼 느껴져 구상을 뒤집었다고.
 
“원작 중 햄릿이 대본에 나오지 않는 부분에서 뭘 하고 있었을지 상상해봤다. 골방에 혼자 앉아 고민하는, 섬세한 심리를 가진 인물이 그려지더라. 그가 가진 그런 여성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성적인 거대한 복수의 드라마를 밀어내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하게 됐다.”
 
그 결과 “마음에 병이 든 여성이 마음이 건강한 한 청년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상한 러브스토리”가 탄생했다는 것이 김 작가의 설명이다. 20년 동안 복수를 꿈꾸면서도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짓눌려 인형처럼 생동감 없이 살아온 함익은 연극을 사랑하는 열혈 청년 연우를 만나면서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닌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는 작가의 생각이 담긴 설정이다.
 
이날 배우들은 함익과 연우과 처음 만나는 6장에서부터 9장까지의 장면을 시연했다. 딱딱한 말투와 표정 없는 얼굴, 오직 본드를 마신 후 환각상태에서만 자신의 분신 ‘익’을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함익은 자신의 수업을 청강하겠다며 찾아온 연우를 은근히 신경쓰기 시작한다. 재벌 2세 여성이 본드를 분다는 설정은 다소 의아했지만, 과연 이들의 만남이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지 궁금해졌다.
 
함익을 맡은 배우 최나라는 “함익은 마음의 병으로 인해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 연극은 ‘고독을 품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함익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지닌 비극성을 가진 인물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처럼 <함익>이 오늘날 한국의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될지 기대를 모은다.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광보 연출이 이끄는 이번 공연에는 이지연이 함익의 분신 ‘익’을, <카포네 트릴로지>의 윤나무가 연우를 맡아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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