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쉼보단 도전이 끌려요" 이충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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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연극 <날 보러와요>의 프레스콜 무대에 선 배우 이충주는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김형사 역을 맡아 용의자를 추궁하는 그의 대사에서는 뮤지컬 무대에서 뽐내던 풍부한 성량이 그대로 느껴졌고, 긴 분량의 독백에서도 리드미컬한 완급이 살아있었다. 범인이 손아귀에서 멀어져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김형사를 집중력 있게 이끌어가는 이충주는 분명 지구력이 넘치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일 년 내내 빽뺵한 공연 스케쥴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쉼보다 도전에 끌린다고 답했다.

 
Q. 1년 여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셨네요.
평소에 연극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어요. <날 보러와요>가 좋은 작품이란 건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었는데 같이 하게 돼서 요즘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연극 있으면 가리지 않고 해야겠단 확신이 생겼어요.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제가 연기적으로 목표 삼아야 할 지점이 보였어요. 연기자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죠.
 
Q. 시인지망생이자 엘리트인 김형사 역이에요. 성악과 졸업 전부터 뮤지컬을 시작하고, 또 연극무대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한 충주씨도 따져보면 공연계 엘리트 같아요. 배역이 몸에 잘 맞았을 것 같은데요?
전 김형사처럼 서울대 나온 사람도 아니고요,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걸 논리적, 체계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방식을 가지지도 못했거든요. 학창시절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늘 신기해 했어요.(웃음) 거기다 김형사는 시인 지망생이잖아요. 시를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캐릭터가 저랑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서 주변에서 참고할 만한 인물을 찾고 싶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더라고요.
 
Q. 그래서 결국 연기에 참고할 인물은 못 찾으셨나요?
답은 김광림 연출님이었어요. 연출님이 대본을 직접 쓰면서 자신을 많이 투영한 캐릭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김형사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마지막 씬에 용의자의 범행과정을 상상으로 풀어내는 긴 독백을 하잖아요. 작가님이 그 대사를 쓰면서 스스로 너무 무서우셨대요. “내가 이런 잔인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결국 그 대사도 당신의 머리 속에서 나온 얘기니까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연출님과 김형사가 많이 닮아 있겠구나 싶어서 연출님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많이 도움됐고요.
 
Q. 대사를 쓴 사람도 공포감을 느꼈다는데, 매 공연마다 그 대사에 몰입해서 내뱉는 배우는 더 힘들지 않나요?
힘들어요. 정말. 연출님이 해주신 말씀인데 김형사가 나중에 정신병에 걸리는 이유가 그거래요. 김형사가 범행과정을 상상하면서 자신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달아서라고요. 결국 자기도 그런 끔찍한 살인을 꿈꿀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그 독백을 하면서 신경 쓸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처음엔 일상적이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과정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나는 인물이 김형사라서 재밌어요.
 
Q. 공부 잘하는 김형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지만, 인물 분석과 배경지식 공부를 정말 치열하게 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연기의 동기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못 움직여요. <날 보러와요>는 구조가 복잡한 편이라 이 대사를 여기서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극 안에서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요.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이랑 맞물려 있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까 더 치밀하게 공부해야 했고요.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 하고 연기할 수 있는 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물어보고 이해하고 나서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죠.
 
저희 배우들은 이번에 지도까지 펴놓고 공부했어요. 오산과 태안 지역에서 몇 차 사건이 언제 일어났나와 같은 사건의 경과도 공부하고 실제 사건 현장의 끔찍한 사진까지 보면서 사건의 전후 관계를 파악했죠. 그걸 모르면 말할 수 없는 대사들이 많아서요.
 
Q. 작품분석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습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배우들끼리 주고 받는 대사 사이에서 이음새가 허술한 구간이 거의 없던데요. 많은 연습량이 비결이겠죠?
배우 한명이 잘해서 되는 공연이 절대로 아니거든요. 소극장 공연인데 9명이나 나오잖아요. 엄청 많은 편이죠. 축구선수들끼리 쉴 새 없이 공을 주고 받는 걸 ‘티키타카’라고 하잖아요. 배우들끼리도 이 ‘티키타카’를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워낙 대사량이 많아서 대사와 대사 사이가 느슨해지면 금방 지루해지니까 대사들을 밀도 있게 이어가려고 호흡 연습을 많이 했죠. 근데 아직도 다듬고 맞춰야 할 부분이 많아요.
 
Q. 출연배우 18명 모두 새 캐스팅이라서 더 유대감이 깊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전부 다 처음보는 대본이니까 다 같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누구 한 명이 잘해서 나머지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협업하는 느낌이랄까요. 다들 모여 앉아서 배역에 대해 토론하고 자기 배역이 아니어도 같이 고민해주고 도와주면서 관계가 더 끈끈해진 것 같아요.

 Q. 20년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연극이에요. 시대별로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메시지도 조금씩 변해 왔는데, 이번에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해 연기한 배우들은 이 작품의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해요.
"인간이 볼 수 있는 진실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가 이 작품이 저에게 던진 메시지예요. 진실이라고 믿었던 게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서서히 망가져 가는 인물들을 보면서 인간은 굉장히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은 사회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Q. 출연작 리스트를 훑어보니,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거의 쉰 기간이 없더라고요. 대체 언제 쉬세요?
소속사에서도 저한테 그런 질문해요. 대체 넌 언제 쉬냐고요.(웃음) 절 불러주는 데가 있고 그것이 또 제가 하고 싶은 공연이면 체력이 닿는 데까지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제가 방전이 되어 쉬고 싶으면 쉬겠죠. 근데 지금은 일부러 휴식기를 갖고 싶지는 않아요. 더 많은걸 끌어내 보고 싶어요. 지금은 더 배우고 싶고 더 도전해보고 싶고 부딪쳐 보고 싶고 여러 분야를 해보고 싶어요.
 
Q. 쉬는 기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걸 하고 싶어요?
여행이요. 그거밖에 없어요. 국내든 해외든 좋아요. 여행이라고 부를 만한 활동을 안 한지 오래됐거든요. 근데 선배들이 여행을 많이 해야한다고 조언해주더라고요. 어제 연출님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천해주셨어요. 거의 30일동안 걷기만 하는 건데 혼자서 꼭 갔다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혼자 거길 왜 가냐고 했죠 뭐. (웃음) 배우라는 직업이 작품과 작품 사이라던지 짬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시간 내서 여행하고 싶어요.
 
Q. 뮤지컬, 연극에 이어 새로운 도전이라면 방송활동도 예상해 볼 수 있을까요?
방송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지는 않아요. 제 뿌리는 무대에 있으니까요. 공연계에서 이제 겨우 7년차이고 익숙해진 부분들도 있는데, 거기 가면 또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어요. 그래도 뭔가 기회가 생긴다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웃음)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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