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으로 보는 경성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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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과 서울 사이, 1910년부터 1946년까지 한반도의 중심에 존재했던 도시 경성. 분명 같은 공간이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서울’과는 사뭇 다른 정취를 자아내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곧 무대에서 펼쳐진다. 개막을 앞둔 뮤지컬 <노서아 가비>와 <팬레터>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 공연들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경성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러나 한때 생생히 살아 숨쉬었던 경성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공연을 통해 들여다보자.

 
경성 커피 문화의 시작, <노서아 가비>
오는 27일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에서 개막하는 <노서아 가비>는 한성이 경성으로 탈바꿈하기 전, 1989년 발생한 ‘고종 커피 독살 음모 사건’을 소재로 다룬 창작뮤지컬이다. 조금 앞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후 1909년 남대문역에 한국 최초의 ‘다방’이 입성하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경성의 커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연이다. ‘러시아 커피’라는 뜻의 제목을 내세운 이 뮤지컬은 커피 애호가였던 고종에게 매일 커피를 올리던 바리스타 따냐와 그녀의 연인 이반의 유쾌한 사기극을 그린다. 물론 따냐 등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지만,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라는 설정이 흥미를 끈다.
 
이 공연에서는 고종이 커피 애호가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분명한 것은 1980~1990년대부터 궁중에서 커피와 홍차가 음용되었으며, 그 문화가 아래로 내려와 1910~1920년 경성에서 본격적인 커피 문화가 싹을 틔웠다는 것이다. 1909년 남대문에 최초의 다방이 들어섰고, 1927년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최초의 다방 ‘카카듀’가 현재의 인사동 자리에 생겨나 문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이렇게 하나 둘 생겨난 다방은 경성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1933년 청진동에 다방 ‘제비’를 연 시인 이상은 이어서 소개할 뮤지컬 <팬레터>의 모티브가 된 ‘구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순수했던 경성 문인들의 이야기, <팬레터>
10월 8일 첫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팬레터>는 1930년대 이상, 김유정 등이 속했던 경성 문인들의 모임 ‘구인회’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든 이야기다. 1933년 결성된 구인회는 당시 주류였던 사회주의 문학에 대항해 오로지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단체였는데, 이상, 김유정, 이효석,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등이 멤버였다. 이들 중 이상과 김유정은 특히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둘 다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낸 데다 폐결핵을 앓았다는 공통점이 이들의 사이를 가깝게 만든 듯 하다. <팬레터>의 한재은 작가는 이들을 모델 삼아 1930년대 경성을 주름잡던 천재 작가 김해진과 작가 지망생 세훈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묘한 관계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지만, <팬레터>는 여러 모로 경성 문인들의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그려보게 하는 공연이 될 예정이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한 동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문인들의 모습, 19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신문사 등을 구현한 무대, 순수문학에 대한 작가와 평론가들의 열정적인 토론 등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물씬 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 김유정 등의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한재은 작가는 “모더니즘이 풍미했던 1920~1930년대 분위기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팬레터>는 10월 8일부터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경성을 배경으로 한 창작공연 연이어 탄생…그 이유는?  
영화계에서는 <아가씨><해어화><밀정><덕혜옹주> 등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올해에만 벌써 여러 편 개봉됐고, 공연계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경성을 배경으로 한 창작공연이 연이어 관객들을 만났다. 1926년 동반자살한 성악가 윤심덕과 작가 김우진의 이야기를 재조명한 뮤지컬 <사의 찬미>(2013~2015)를 비롯해 1931년 영등포 역에서 함께 선로에 뛰어든 두 여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콩칠팔새삼륙>(2012), 1935년 젊은 예술가들의 연애담을 그린 연극 <깃븐우리절믄날>(2008, 2012), 1934년 여름을 지나는 젊은 소설가 박태원의 하루를 그린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2010, 2012)등이다. 이밖에도 배우를 꿈꾸는 경성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이채>, 같은 시대 무용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레드슈즈> 등이 리딩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이렇듯 많은 창작자들이 일제 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팬레터><이채>의 대본을 쓴 한재은 작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녹록하지 않다 보니 과거 더 힘들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그런 이야기를 더 드라마틱하게 풀어낼 수 있는 시대가 일제강점기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이유는 경성이라는 공간이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듬뿍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한재은 작가는 “문자나 SNS로 즉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는 편지를 통해 감정을 교류하는 좀 더 순수하고 자유로운 감성이 있었고, 그런 감성을 (뮤지컬로)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의 공연들 중 문인,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공연이 특히 많은 것도 당시의 예술적 정취를 예술가들을 통해 극대화해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 세기를 뛰어넘어 여전히 많은 창작자들을 매혹시키는 공간, 경성을 배경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무대 위에 펼쳐질지 기대를 모은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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