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무엇도 시작할 기회조차 없었어" 연극 <블랙버드>의 날 선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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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우나가 50대의 레이를 찾아온다. 이들은 우나가 열두 살 때 성관계를 가진 사이. 고통스런 삶을 살아온 우나와 미성년자 성적 학대 혐의로 복역을 마친 레이. 15년만에 만난 이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 다른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본다.
 
2005년 영국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영국 웨스트엔드, 미국 브로드웨이를 포함하여 호주 , 스웨덴, 노르웨이, 스페인,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각지에서 공연됐다. 2006년 영국 비평가상 베스트 희곡상 수상, 2007년 영국의 토니상이라 불리는 로렌스 올리비에상 베스트 희곡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 상반기에 리바이벌된 브로드웨이 공연에는 유명배우 제프 다니엘스와 미셸 윌리엄스가 주연을, 뮤지컬 ‘위키드’로 유명한 조 만텔로가 연출을 맡아 강력한 무대를 선보였고 토니상 베스트 리바이벌 희곡상 부문, 남.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지난 28일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연습실에서는 런쓰루가 진행됐다. 메시지나 연출 기법, 대사의 문학적 완성도를 차치하고서라도 당장이라도 서로를 물어 뜯을 것만 같은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가 돋보였다. 종종 번뜩이는 눈빛으로 윽박지르는 옥자연의 날 선 연기는 극에 탄력을 불어넣었고, 관록의 배우 조재현은 안정감 있게 맞받아쳤다. 15년만에 만난 우나와 레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참을 기다렸어요. 피~터."
"나가서 얘기하자. 제발."

과거를 숨기고 '피터'로 이름을 바꿔 새 직장에 다니는 레이. 그의 회사로 우나가 찾아왔다. 자신의 과거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레이와 그를 서서히 조여드는 우나. 우나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무슨 말을 내뱉을까.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까. 레이는 온갖 불안한 상상에 초조해진다.
 
"원하는 게 뭐야? 난 너한테 할 말이 없어. 넌 나한테 귀신같은 존재야"
"나 귀신 맞아요. 진짜 귀신처럼 느껴져. 사람들이 날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내 얘길 떠들어 대니까!"

따가운 시선을 홀로 받아내며 15년을 고통스럽게 보낸 우나는 서서히 그 설움을 털어놓는다.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레이를 쉽사리 놓아줄 생각이 없다.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당신 또 그럴거야. 호적에 또 빨간 줄 그을거라고."
애써 새 삶을 되찾았다며 레이는 자신을 내버려 놓아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 뿐. 우나는 레이가 과거를 청산했다는 말도, 자신의 잘못을 이해해주는 고마운 여자와 살고 있다는 얘기도 믿지 않는다.
 
"내가 왜 그 시간으로 매일을 살아야 해? 나에게도 최소한의 살아갈 권리가 있어"
"난 당신보다 훨씬 많은 걸 잃었어. 뭘 시작할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난 아직도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우나는 감옥에 들어갔던 레이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살아야 했다. 모두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 속에서 살아온 15년. 친구도 가족도 잃어버린 우나는 레이가 주장하는 '살아갈 권리'를 인정할 수가 없다. 자신을 모텔에 버리고 갔던 이유는 무엇인지,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우나는 레이의 기억들을 끌어내 조각맞추기 시작한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김윤희(www.alstud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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