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햄릿? 셰익스피어가 뭐길래, <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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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햄릿이다. 제 아무리 세익스피어라도 그렇지.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무어라고 한국에서 이리도 많은 햄릿이 올려지는 것일까. 올 9월까지 스무 개 넘는 햄릿이 공연되었다. 로미오앤줄리엣도 있고, 멕베스, 한 여름밤의 꿈, 오델로도 있는데 왜 햄릿일까.
 
이런 범인(凡人)의 생각을 알았을까. 김은성 작가가 재해석한 연극 <함익>에서는 초반부터 배우들이 햄릿의 대사들을 원문으로 낭독하고, 그들끼리 ‘우리나라에선 세익스피어는 안올렸으면 좋겠어요, 안 어울려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함익> 속 극중극 형태로 연극학과 학생들이 햄릿을 준비하는 과정에선 누구나 햄릿을 하고 싶어하고, 학생들간 토론하는 장면에서는 햄릿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텍스트의 확장성, 햄릿에 대한 오마쥬가 드러난다. 또 지도교수인 함익이 제자인 연우에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 대사 해보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대사에선 400년간 무대에서 수도없이 불려져 온 그 명대사의 힘, 권위를 보여준다. 하지만 연우는 말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어있는가 살아있는가 그것이 문제”라고. 그것이 <함익>이 햄릿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함익>은 햄릿이 재벌 2세 여교수라는 다소 생뚱맞고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현대사회에서도 햄릿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고전의 힘은 동시대성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재벌2세 함익(최나라)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와 상류층 사교모임을 하며 화려한 삶을 사는 듯 하지만, 내면은 어둡다. 그녀는 자살한 엄마가 사실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 믿으며 20년간 고독한 복수심에 마음이 병들어 있다. 힘들 때면 내면의 분신(이지연)을 불러내어 대화를 하는데 이 분신이자 이중 자아는 그녀의 스트레스가 단단히 압축될 때 나타나 함께 울고 웃어주며 공감하고 마음을 쓸어준다. 그러던 중 함익은 아버지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하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그녀 앞에 복학생 연우(윤나무)가 나타난다. <햄릿>에서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함익의 고독한 내면에 조금씩 들어와 그녀를 흔들기 시작한다. 
 
고전 <햄릿>을 2016년의 한국이야기로 바꾼 <함익>은 처음부터 몰입도 높게 흘러간다.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와 풍자가 곳곳에 녹아있고 유머도 넘실댄다. 함익, 오필형과 같은 이름은 허비행콕 ‘허병국’, 팻 매스니 ‘박만식’, 마일스 데이비스 ‘마대수’, 미카 ‘김믹하’처럼 들려 웃음이 나온다. 함익이 흠모하는(?) 제자 연우에게 햄릿을 시키기 위해 원래 햄릿 역 학생을 드라마에 출연시켜준다며 빼버리고, 연우와 사이가 좋아 보이는 오필리어 역의 여학생을 질투해 오필리어의 대사를 대폭 잘라버리는 장면 등은 아침드라마 같기도 하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여교수가 흠모하는 제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학생을 질투해 여학생이 벗어놓은 코트의 주머니에 깨진 유리조각을 넣어두는 장면도 떠오른다. 차갑고 고독한 함익의 마음에 들어온 복학생 연우 역의 윤나무는 연극을 사랑하는 열정적이고 순수한 청년이었다가 연상녀에게 어떤 연민과 호기심(또는 동경)을 품은 남녀 사이의 긴장감을 (관객에게까지 전달해)주는 남성의 모습까지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함익> 개막 몇일 전 김은성 작가의 또다른 신작 <썬샤인의 전사들> 인터뷰차 만났던 그는 <함익>에 대해 “그래요, 제가 햄릿을 가지고 한번 개떡을 만들어봤어요”(웃음)라고 했지만, 이런 개떡이라면 삼시세끼 개떡만 먹어도 좋겠다.
 
글: 김선경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uncanny@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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