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함이 고종의 전부는 아니죠" 배우 박영수, 이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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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처음으로 두 명의 고종이 캐스팅됐다. 초연과 재연에서 인상적인 고종 역을 선보인 박영수와 함께 <마마돈크라이>로 데뷔한 신인 이창엽이 새롭게 합류한 것이다. 같은 배역을 맡았다는 이유에서도 있겠지만, 실제 만난 두 사람은 너무도 닮았다. 외모도 외모지만, 두 배우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정리하며 그 아우라가 무엇인지 실체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분위기는 연기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를 가진 두 사람이 가진 열정에서 뿜어져나오는 아우라였다. 30여 분간 진행된 페북 라이브에서는 미처 담지 못했던 두 고종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두 분이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같은 역을 맡게 됐는데요. 먼저 창엽 씨는 서울예술단과는 처음으로 작품활동을 하게 됐는데 어떠셨어요?

이창엽 : 일단은 공연 자체 규모에 놀랐고요. 거기에 제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어요. 서울예술단 색깔이나 색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어서,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영수 씨는 벌써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만 세 번째 고종 역을 맡으셨는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었나요?

박영수 : 이번 고종은 무대에서 추상화된 부분들을 조금 더 섬세하고, 실제 인물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초연 때는 고종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 했고, 재연 때는 고종의 상황에 대한 걸 찾으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사실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어요. 최근에 안중근 의사의 박물관도 가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고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더라고요. 고종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실제로는 어땠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제 연기가 커다란 공간에서도 생동감 있게 무대에서 표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요.
 
그럼 영수 씨가 생각하는 고종은 어떤 인물이에요?

박영수 : 대부분 고종의 유약한 면을 많이 얘기하시는데 저는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개인의 목숨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서요. 고종은 민씨 일가의 비리, 대원군이 해왔던 정책들을 보면서 많은 걸 간접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비록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좀 더 밝은 조선의 미래를 꿈꿔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실제로 신문물도 먼저 받아들이고 하는 모습들을 봐도 그렇고요. 고종에 관한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이창엽 : 저 역시도 고종의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우유부단'하다는 키워드에서는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고종은 눈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다 알고 있음에도 애써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해있던 인물이거든요. 그 안에서 점점 비뚤어져가는 고종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 같아요.

 
영수 씨는 고종에 대한 애정이 정말 남다르신 것 같은데, 그래서인가요. 지금 공연중인 <곤 투모로우>에서도 고종 역을 맡으셨어요. 부담되진 않으셨나요?

박영수 : 부담보다는 너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 가장 먼저 들었고요. 사실 처음에는 <곤 투모로우>에서의 고종이 이렇게 비중이 클 줄 몰랐어요. <잃어버린 얼굴 1895> 정도 비중일 줄 알았는데, 솔로 곡도 3곡이나 있고 비중이 크게 자리했더고요. 어제도 <곤 투모로우> 공연을 하고 왔는데, 한 배우가 같은 인물을 연기 한다는 게 참 이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 김선영 배우가 새롭게 명성황후로 합류했는데요. 같이 호흡해 보니깐 어떠세요?
 
박영수 : 김선영 선배님은 정말 내공이 대단하신 분 같아요. 상대 배우가 함께 연기하면 호흡이 느껴지잖아요. 연기를 하다보면 “저건 그 캐릭터 자체다”라는 호흡이 있거든요. 무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눈빛만 봐도 아는데, 선영 선배님은 정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창엽 : 저는 선배님께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사실 선배님께 무언가를 도와달라고 말씀하는게 혹시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싶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선뜻 조언을 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박영수 선배님도 마찬가지고요.
 
박영수 하면 ‘고종’과 함께 또 따라붙는 키워드가 바로 ‘성실함’이에요. 배우로서 성실함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나요?

박영수 : 부족하니깐요.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연기와 관련된 영상을 볼 수 있잖아요. 세계최고의 예술가들을 보면 저는 매우 나약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움직임, 연기, 신체, 호흡, 밸런스 이런 부분들이 그 분들에 비하면 너무 부족하거든요. 많이 모자라다 보니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배우로서 또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영수 : 저는 연극으로 배우활동을 시작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기회가 되면 연극 해보고 싶어요. 셰익스피어, 안톤 체홉 같은, 저 따위가 건들 수 없는 거장의 작품들이요.(웃음) 아무래도 창작을 하다 보면 제가 개입을 조금씩 하게 되는데 대사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고전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연기적인 걸로 끝까지 가보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창엽 씨도 배우가 되기 위해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고 들었어요. 공대를 다니다 그만뒀다고요?

이창엽 : 지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본 연극을 보고 ‘나도 하고싶다’ 이런 생각이 든 게 첫 번째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극단에 찾아 들어가서 3개월 정도 스텝으로 활동을 했는데 부모님께 걸리는 바람에 그만두게 됐죠. 부모님께서는 학교생활을 우선적으로 열심히 하고 나중에 대학을 가고 나서도 하고 싶으면 그때 연기를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결국 공대에 들어가게 됐는데 연기가 계속 하고 싶더라고요. 결국 과감하게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죠.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창엽 : 돈이 없다 보니 알바만 하면서 고시원 방에서 1년 반정도 살았어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새우잠을 잔다는 게 뭔 말인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계속 갇혀 있다 보니깐 우울증까지 오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러다 우연히 조그만 회사와 연이 닿아 계약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연기 쪽보다는 아이돌 쪽으로 나가기를 바라시더라고요. 뭔가 연기 쪽에서 성과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몰래 학원을 등록하면서 입시를 준비했는데 운 좋게 한예종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꿈을 꾸던 배우가 됐는데 어떠세요?

이창엽 : 너무 행복해서 이게 정말 꿈만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천 만 배우가 됐네’ 이런 의미의 꿈만 같다가 아니라, 그냥 누군가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특히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단지 주인공인가 조연 인가에 대한 의미는 아니었어요. 극 안에서 제가 살아서 숨쉴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가 없는 가에 대한 고민을 한 거였거든요.
 
그럼 두 분께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목표가 있나요?

박영수 : 저는 60대가 되면, 저 혼자서 모든 걸 다 맡아서 만든 공연을 올려보고 싶어요. 직접 작곡을 하고, 대본을 쓰고, 제가 연출을 하고, 제가 무대를 만들고. 큰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정말 5~10명 지인만 모시고서 라도 해보고 싶어요. 예술가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가에 대해 지켜봐야 하고, 그것을 예술적인 표현으로서 만들어내야 하는 거잖아요. 저 역시도 어떻게 예술가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직접 만든 작품으로 그걸 표현해 보고 싶어요.

이창엽 : 저는 연기가 제 속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솔직하게 제 얘기를 꺼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작품 밖에서도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야겠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배우가 바르게 말해야 하는 순간에는 멋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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