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빈·전성우·강영석, 세 형제의 비밀스런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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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지난 월요일 저녁, <블랙메리포핀스>의 세 형제 김도빈, 전성우, 강영석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대학로 연습실도, 공연장도 아닌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이들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바로 평일 저녁의 달콤한 만남, 비밀스러운 형제들과 팬들의 시간을 위해서였다.

7시에 시작된 이날 행사는 비밀스런 기억을 둘러싼 네 남매의 이야기, <블랙메리포핀스>에 어울리는 '비밀스런 형제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 코너는 '형제들의 OOO'. 작품과 세 배우에 관련된 키워드 중 사전에 준비한 해시태그 (바카디, 기억, 한스와 헤르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작품 속에서 한스가 아픔을 잊기 위해 마셨던 ‘바카디’. 세 명의 배우들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강영석: 농구하는 걸 좋아해요. 뛰고 땀 흘리면 다른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농구할 때는 보통 센터나 4번, 3번을 맡습니다.

전성우: 좋은 사람들과 술을 먹습니다. (웃음) 뭔가를 꾸준히 한 게 처음인데, 요즘은 운동을 하고 있어요. 운동을 하러 가려면 왕복 2시간이 걸리는데, 힘든 이동 거리가 있지만 돌아오는 길은 뿌듯하고 스트레스 해소도 돼요.
사회자: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위는요?  (김도빈: 남자라면 가슴이죠!)
전성우: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운동하지 않아도 나오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어깨와 등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김도빈: 저는 스트레스를 받는 편은 아니지만, 보통 UFC 시청하는 걸 좋아해요. 미국에 가서 직관하는 게 꿈이었는데 마침 서울예술단 공연으로 뉴욕을 가요. 12일이 공연 쉬는 날인데, 딱 그 날 뉴욕에서 처음으로 UFC 경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러 가기로 했어요!
 
다음으로 등장한 키워드는 작품 속 네 남매가 잃어버렸던 것이자,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이었다. 세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잊고 싶은 기억을 물어보자 다들 사뭇 진지한 답변을 내놓았다.
 
#잊을 수 없는 기억

강영석: 태어나서 처음 공연했던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대학교에서 뮤지컬 <아이 러브 유(I love you)>를 올렸는데, 연습이나 공연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당시에 연출님이 학교에 1년 동안 계셨던 스테르 마이어라는 네덜란드 연출님이셔서 소통하기가 힘들기도 했고, 처음 하는 공연이라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전성우: 저도 제 인생의 첫 공연에 대한 기억도 생각해보고 이런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밝은 분위기에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는데, 제가 (분위기) 다운로더라 어떻게 하면 업 시킬 수 있을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제 뇌리에 남은 기억들은 슬픈 기억이 많은 것 같고…그런 얘기를 하는 것보단, 여러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 (웃음)

김도빈: 공연을 하다보면, 커튼콜 때 관객분들의 박수를 받고 환호성을 들으면 항상 감사하죠. 그중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커튼콜과 박수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가족극의 지방공연 때였어요.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 젊은 관객들까지 다양하게 있었는데 박수가 너무 따뜻했어요. 엄청나게 큰 박수, 환호가 아니었는데도 따뜻함이 확 느껴졌어요. 공연하면서 참 뿌듯한 날이라고 느꼈었죠.
 
#잊고 싶은 기억

김도빈: <블랙메리포핀스>를 위해 오신 분들이니까,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2013년에 저는 큰일이 없었는데 저랑 더블이었던 최성원 배우가 일이 많았어요. ‘Overture’ 장면에서 옆으로 슬라이딩하는데, 갑자기 우당탕 하는 거예요. 데크 끝까지만 가면 되는데 밀려서 객석 밑으로 떨어졌더라고요. 그리고 한 번은 요나스가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데 마이크가 의자에 걸린 거예요. 벌떡 일어났는데 의자가 몸에 매달린 상태가. (웃음) 그래서 한스 형이 떼준 적이 있었어요.

전성우: 형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질문을 까먹었어요 (웃음) 지금도 배우라는 일을 하면서 고민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지금보다 더 어린 생각으로 접근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너무 제 위주로 생각해서 전체에게 피해를 주고, 방향이 잘못되는 상황을 제가 주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죠. 그 때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런 기억을 없애고 싶은데, 사실 그 기억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왜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도 있어요.
 
#만약 극 중 상황이 본인에게 닥친다면 나는 기억을 지울 것인가, 남겨둘 것인가

강영석: 이 질문에 대해서 연출님과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저라면 지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헤르만을 연기하다 보니 지우지 않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스의 마지막 대사 중에 “행복해지기 위해 기꺼이 불행과 동행하겠습니다.”라는 대사도 있고, 연출님도 “그 불행 안에 안나, 한스, 요나스, 메리가 있는데 기억을 지워버리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요나스에서 한스로 돌아온 김도빈, 두 캐릭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김도빈: 큰 차이가 있죠. 우선 두 사람 다 아픈 사람들인데, 요나스는 아픈 기억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면서 그 고통이 겉으로 드러나는 공황장애가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캐릭터에요. 연출님이 요나스를 설명할 때 항상 말씀하시던 게 “길에 쫄딱 맞은 강아지가, 주인을 찾지 못해 길에서 빙빙 도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반면 한스는 기억이 완전히 지워졌지만, 칼이 본인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연구일지라는 물증도 받게 되면서 범인을 찾으려는 편집증적인 성격이 드러나요. 아이들을 잘 구슬려서 정답을 알아내려는 집착에 빠져있는 인물이죠.

연기 측면에서는 요나스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대사 없이 공황장애라는 병을 표현하고, 끊임없이 울어야 하니까요.
 
#2013년에 이어 또다시 맡게 된 ‘헤르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전성우: 제가 처음 초연을 만들었을 때는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헤르만이라는 인물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특정 상황에 헤르만이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이유만 생각하고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굉장히 치기 어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굉장히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시간도 많이 흘렀고, 화자의 입장에서 극을 끌어가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접근하면 작품 전체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은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어린 시절과 현재, 그리고 최면 속과 밖과의 경계 등 전체적인 것을 입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코너는 ‘형제들의 비밀 상자’. 이번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의 질문을 상자 속에 담았다. 배우들이 무작위로 질문을 뽑아 하나하나 답을 달았다.
 
#본인이 맡은 캐릭터와 본인의 비슷한 점, 그리고 다른 점

전성우: 어떤 역할을 하면 알게 모르게 닮아가는 점이 생기더라고요. 한 번 해서 그런 건지, 그 이후로 바뀐 건지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저를 떠날 것 같으면, 제가 먼저 떠나요. 그런 두려움이 조금 생기더라고요. 다른 점은 전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인데, 헤르만은 감성적인 면이 조금. 그래서 저는 헤르만이 더 끌리고 만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 극단적인 캐릭터를 많이 선택하는 것 같아요.

사회자: 상처가 있거나 마음이 아픈 캐릭터를 많이 맡으시는 편이죠.

전성우: 마음이 아프다, 무게가 있다 해서 선택하게 된 건 아닌데,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와 닿으면 끌리는 것 같아요. ‘무조건 불행하지 않아야만 행복한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참 극단적인 행동을 많이 하는, 특히 죽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보시는 분들은 힘들다는 얘기를 하시는데, 저 스스로는 연기를 하면서 굉장히 힐링을 받거든요. 이기적이고 개인적일 수는 있지만 ‘이 아이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마음을 오롯이 이해하고 행동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반전 매력은?

강영석: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반전이어야 하는 거죠? 음…엉뚱함? 그리고 보조개? (웃음)
 
# 작품 특성상 감정 소모가 심할 것 같은데, 평소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방법이 있나요?

김도빈: 유명한 배우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할에 푹 빠져서 실제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잖아요. 반면에 저는 감정 소모가 심한 극을 밖에까지 끌어오면 정말 많이 힘들어요. 그래서 집중할 때는 집중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더 빠져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저는 그래도 행복하고 싶어요.
 
#서로의 첫인상은?

강영석: 도빈 형은 이번 공연 연습실에서 처음 뵀는데, 형을 만나기 전에는 <쓰릴미> 영상을 많이 찾아봐서 엄청 남자답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그런데 처음 뵌 날에도 오늘처럼 점프슈트를 입으신 데다가 눈웃음도 많이 짓는 편이라 놀랐어요. 계속 만나보니까 정말 다정하고, 동네 형 같은 느낌이에요.

성우 형은 처음에 낯을 가릴 것 같았어요. 저도 낯을 가리는 편이긴 한데, 막내이니까 좀 더 말을 걸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친해지니까 형도 엄청 따뜻한 사람이더라고요.
 
전성우: 제가 낯가림이 좀 심한 편이라, 처음에는 다들 어렵게 느껴져요. 도빈 형도 처음엔 어려웠는데, 웃기 전과 웃고 나서의 갭이 커서. (웃음) 연습할 때 가장 놀랐던 건 형이 굉장히 수긍이 빨라요. 이게 형의 매력인 것 같아요. “여기서 이런 거 아냐?”, “아 형, 여기 이렇게 바뀌었어요.”, “아, 그래~” 하고 바로 수긍해요.

영석이도 처음엔 어려웠는데, 친해지면서 두 달 동안 보는 사람마다 방탈출 (*방에 갇혀 추리하여 탈출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놀이)을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요. 갇히고 싶은지 (웃음) 당돌함도 있고 거침없는 면도 있는 친구예요.
 
김도빈: 음, 성우는 딱 봐도 진중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 진중함 속에 장난기도 있고, 센스도 있어요. 영석이는 우선 나이차가 있다 보니 (9살 차이) 처음엔 아이로 봤죠. 그런데 요즘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친구들을 보면 당당하고 자기 할 거 잘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릴 때 좀 더 마음껏 해볼 걸, 그런 생각도 했어요.
 
재치와 웃음이 가득했던 김도빈과 차분한 목소리로 속마음을 보여준 전성우, 톡톡 튀는 당돌한 막내 강영석. 제각각의 매력을 품은 세 사람과 알찬 진행으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쉬움을 달래며 세 형제의 끝인사로 끝을 맺었다.
 
김도빈: 공연 보러 많이 와주시고, 저는 공연이 27일부터예요. 걱정이 많이 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잘 해보겠습니다.

전성우: 제가 말이 좀 더 빨랐으면 더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 느려서 죄송하고 (웃음) 주어진 시간에 말을 한다고 했는데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마련되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남은 기간 지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모습, 더 발전된 모습으로 관객분들 맞이할 테니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고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영석: 이야기를 막 던진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은 기억을 지워 주셨으면 좋겠고 (웃음) 저도 3개월 동안 열심히 해서 더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김윤희 (www.alstud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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