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만났으니 그저 좋지 아니한가, 최광일&이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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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일과 이명행. 언뜻 보기에 평범한 인상이지만, 작품마다 천만 가지 얼굴로 변하며 때로는 소박한 웃음을, 때로는 뜨거운 울음을 선사했던 두 배우가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만난다. 오는 26일 개막하는 연극 <불역쾌재>에서다.
 
<햇빛샤워><환도열차>의 장우재 연출이 선보이는 신작 <불역쾌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정치적 스캔들에 휩쓸려 파직된 두 대감 기지와 경숙의 유랑기를 그린다. 관록의 배우 이호재와 오영수가 기지와 경숙을 맡았고, 최광일은 두 대감을 호위하는 무사 회옹으로, 이명행은 왕으로 분한다. 최광일과 이명행은 극중 만나는 장면이 없다며 아쉬워했지만, 이렇게 한 작품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이들은 일흔이 넘도록 ‘머리와 심장이 굳지 않은’ 배우로서 무대에 서기를 희망하는, 결국 같은 꿈을 가진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그런 두 배우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그저 좋았다. 이들이 예고한 <불역쾌재> 공연의 ‘벅찬 끝’이 기다려진다.
 
Q <불역쾌재(不亦快哉)>라는 제목의 뜻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공연인가요.
이명행: 연출님께서 ‘어둠을 뒤집어서 밝음을 보는 작품’이라고 하셨어요.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삶과 죽음이 나뉘어져 있다는 사고방식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둘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같이 있는 것이고, 그러니 다 즐겁지 아니하냐, 라는. 그 깨달음과 함께 벅찬 느낌으로 끝나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Q 각각 회옹과 왕을 연기하시는데, 어떤 인물들인가요.
최광일: 회옹은 덕망과 학식이 높은 두 대감, 경숙과 기지의 여정을 함께 하는 인물이에요. 경숙과 기지는 회옹이 모셨던 스승의 친구분들이거든요. 처음에는 그분들을 통해 내 삶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실망하게 되요. 두 대감이 서로 싸우고 헐뜯는 모습, 일개 범부보다 못한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그러다 나중에 두 대감의 깊은 뜻을 알게 되죠. 그런데 지금 대본을 수정하는 중이라 이 부분은 안 나올 수도 있어요(웃음).
 
이명행: 왕이 세자였을 때, 강상칠우(江上七友)라는 일곱 명의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들이 한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사고가 나서 죽어요. 당시 선왕은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고, 왕은 자기 친구들이 죽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왕은 친구들을 구했어야 했다는 죄책감도 있고, 동시에 왕으로서의 자세나 이념을 신하들에게도 계속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려 하고, 경숙과 기지를 파직하면서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해답을 가져와보라고 하죠.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알겠지만, 죽음을 딛고 그 이면의 밝음을 향해 나가려는 인물이에요.
 
Q 기지는 이성적인 자연과학자를, 경숙은 예술가 혹은 인문학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왕과 희옹이 각각 대변하는 인간 유형이나 가치는 무엇일까요.  
최광일: 회옹과 왕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왕도 결국은 기지와 경숙에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인물이거든요. 잘 해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고민이 많은 사람인 거죠. 회옹도 마찬가지에요. 무사로서 옳은 일이라 믿고 전쟁터에서 사람들을 죽여왔는데, 뭐든 만성이 되면 옮고 그름을 모르게 되잖아요. 그래서 기지와 경숙에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묻기 위해 그들을 따라다니죠. 삶의 지향점을 묻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왕과 희옹은 똑같은 것 같아요.
 
이명행: 그러고 보니까 비슷하네요. 마지막에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도. 형이 다른 공연을 하고 있어서 연습에 좀 늦게 합류했는데, 처음 이와삼 단원들이랑 같이 작품 분석을 할 때 희옹은 멋모르는 백성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도 했었어요.
 
Q 아까 말씀하신 강상칠우에 대한 부분에서 이 작품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명행: 배우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대 사회나 정치 현실에 대한 풍자일 수도 있고. 물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분들의 자유죠. 그런데 어쨌든 우리들이 지향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되새김 보다는 포스트 세월호랄까, 세월호 이후에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할까에 대한 거에요. 지금은 진흙탕 속에 있지만 푸른 잔디밭을 향하는, 그 ‘향함’을 보여주는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연출님이 끝이 벅차면 좋겠다고 하신 것 같고.
 
Q 지금 연습하시면서 고민하시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최광일: 어느 작품을 하든 겪는 것이지만, 연출이 이 대본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내가 잘 표현하고 있는지가 고민이죠.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스스로 보지 못하니까. 다른 배우들도 다 똑같을 거에요.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명행:
연출님이 이호재 선생님이 참 좋은 배우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선생님은 공연의 끝을 보고 연기를 하신다고 하셨어요. 같은 맥락에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내가 이 공연을 끝까지 다 꿰뚫고 있는지가 고민이에요.
 
Q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계신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이명행: 우선 선생님들, 선배님들과 함께 연극을 한다는 게 너무 영광이죠. 아쉬운 건 광일이 형과 처음 연극을 같이 하게 됐는데 서로 만나는 장면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도 형한테 많이 배우죠. (윤)상화 형도 술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해주시고. 선생님들은 하시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요. 무대에서 연기하고 농담하시는 모습만 봐도 좋죠. 젊은 배우들은 극단 이와삼 단원들인데, 굉장히 활기가 있어요. 저랑 (유)성주 형이 딱 중간쯤인데 아무튼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Q 함께 연습하면서 알게 된 배우로서의 강점을 서로 얘기해 주신다면요.   
최광일: 명행 배우는 집요한 것 같아요. 나쁜 의미의 집요함이 아니라, 어떤 걸 행하기 위해서 계속 난도질해가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태도가 굉장한 강점 같아요. 원래 배우들이 다 그런 작업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남다른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명행 배우는 연출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뭐든 자기가 꼭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어해요. 장우재 연출은 좀 질문을 하기가 두려운 게, 뭔가를 조금 물어봤는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웃음). 그래서 안 물어보게 되던데 (이명행 배우는) 굴하지 않고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그런 투지가 남달라요. 그게 연기에도 많이 묻어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명행: 형님은 매력이죠, 매력. 매력덩어리에요. 우리 팀에서 여배우들을 대상으로 몇 번 인기투표를 했는데, 형님이 부동의 1등이에요. 술자리에서 키스하고 싶은 남자도 1등. 정말 형님은 어떤 테크닉이 좋다, 목소리가 어떻다를 떠나서 그냥 매력덩어리 같아요. 사실 회옹이라는 역할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인물이에요. 특징적인 뭔가를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라서 배우로서는 더 연기하기 어려운 인물인데, 형님이 연기하셔서 정말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인물이 되는 것 같아요.
 
최광일: 사실은 (인물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등장하는 장면마다 부각되는 게 아니라, 그냥 흘러가면서 봤는데 나중에 ‘아, 그런 인물이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쪽으로 좀 더 노력을 하려고 해요.  
 
이명행: 형님이 정말 재미있게 해요. 형님이 무대에 올라가면 그냥 웃겨요. 다른 장면에서는 심각해지는데, 형이 나올 때는 연습실의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다 편하고 즐겁게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 연출님이 너무 갔다, 좀 가라앉히라고 하시기도(웃음). 아무튼 매력 덩어리, 너무 매력 있어요.
 
최광일: 회옹이 정상은 아니에요(웃음).
 
Q 꾸준히 연극을 하고 계신데요, 연극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이명행: 매력남 1위로 뽑혔을 때?(웃음)
 
최광일: 그건 부담이죠. 오그라드는 일(웃음). 저희끼리 맥주 마시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와서 ‘잘 봤어요’하면 왜 그렇게 뿌듯한지 모르겠어요. 술집에서 만나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진심으로 ‘너무 잘 봤어요’하면 너무 고맙고 뿌듯하더라고요. 그럴 때 보람이 있죠.
 
이명행:
저도 같아요. 결국은 몇 분이든 관객들과 소통이 됐을 때 제일 뿌듯한 것 같아요. ‘당신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잘 봤어요’가 아니라 우리 작품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봐 주시고, 그래서 잘 봤다는 말씀을 하실 때가 제일 뿌듯하죠. 그리고 덧붙여서, 배우로서 이렇게 선생님들과 같이 작업하니까 참 좋아요. 선생님들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면 배우라는 직접 자체가 뿌듯한 느낌이 있어요. 저 나이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이 직업이라는 걸 느꼈을 때. 나도 저 나이까지 내 몸을 잘 건사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구나, 그것도 참 복된 일이구나, 싶고.
 
Q 두 분은 선생님들의 나이에 어떤 배우가 되어있고 싶으세요?
최광일: 굳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머리와 심장이 안 굳었으면 좋겠어요. 해가 지나고 또 다른 작품을 하면 그 작품에 맞는 생각을 해내야 하는 직업이 배우잖아요. 명행 배우가 선생님들이 무대에서 또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모습을 봤을 때 뿌듯하다고 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에요. 뿌듯함과 동시에 존경스러워요. 그 이유는 제가 말한 걸 그분들이 하고 계시기 때문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 경우에 이 정도 나이를 먹고도 생각이 간당간당할 때가 있어요. 연출이 어떤 디렉션을 줬는데 ‘이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거죠. 연출의 생각을 이해는 하는데 비겁해지는 거죠.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받았을 때 옆으로 슬쩍 밀어놓는 것처럼. 근데 그렇지 않고 나이가 지나도 다 받아들여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좋겠죠. 이 직업을 하는 한은. 선생님들이 일흔 일곱의 나이에 그렇게 하시는 걸 보면 어떨 땐 무섭기도 해요. 내가 아직 오십이 안 됐는데, 만약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됐을 때 어떤 일이 생겨서 이 직업을 못 하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명행: 형이 ‘굳지 않는 배우’라고 말씀하셔서 되게 와 닿았어요. 저도 같은 말을 하고 싶거든요. 형님이 했던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를 봤는데, 그 작품에서 형이 되게 좋았던 점이 이런 거에요. 연기를 하다 보면 배우마다 자기가 잘 하는 부분,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제 경우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라 ‘아 그럼 목소리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근데 형님은 어떤 특정한 장점이나 테크닉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대에 있는데 히키코모리인 거에요(웃음).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인상깊었어요.
 
근데 배우로서 자기 장점을 자꾸 보이는 것도 '굳음' 같아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안 낀다고 하잖아요. 자기의 테크닉만 자꾸 보여주는 것도 구르지 않는 돌이 되는 것이겠죠. 전 형님보다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까 앞으로 여러 연출님도 더 만나보고 싶고, 틀 안에서 굳는 게 아니라 자꾸 바뀌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꾸준히 무대에 서서 나아갈 수 있는 배우가 되기를 바라죠.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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