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의 마지막 무대, 매 순간 살아있을 거에요” 전나영, 정선아
- 2019.11.01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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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이번 공연에서 아이다 역을 맡은 전나영과 암네리스 역 정선아를 만났다. 두 배우는 입을 모아 ‘아이다’가 꿈의 무대였다고 말한다. 웨스트엔드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레미제라블’의 판틴을 연기해 주목받았던 전나영은 2016년 ‘아이다’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고, 올해 다시 ‘아이다’에 도전해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역을 거머쥐었다. 이날 쇼케이스에서 그녀가 보여준 힘과 기품이 넘치는 무대는 본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선아는 ‘아이다’의 암네리스 역을 말할 때 단연 먼저 이야기해야 할 배우다. 2005년 ‘아이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 5년 뒤 암네리스 역에 발탁된 그녀는 탁월한 끼와 가창력으로 이 캐릭터의 매력을 십분 살려내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날의 인터뷰는 ‘아이다’를 향한 두 배우의 큰 사랑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마지막 공연이 될 ‘아이다’에 대해 이야기하다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던 정선아, 그리고 고대했던 ‘아이다’에 대한 설렘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전나영의 이야기.
Q 암네리스, 하면 정선아 배우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정선아 씨에게 아이다는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정선아: 제가 2005년에 아이다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지고 2010년 암네리스 역으로 오디션을 봤거든요. 한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가진 색깔과 에너지는 아이다보다 암네리스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 오디션에선 암네리스로 준비를 해서 붙었죠.
그 때 이후로 내가 가진 장점과 색깔은 아이다보다는 암네리스처럼 즐겁고 통통 튀는, 마음에는 상처를 가졌지만 점차 성숙해지는 캐릭터와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후에 ‘위키드’의 글린다를 할 수 있었고요. ‘아이다’가 아니었다면 ‘위키드’의 초록 마녀로 오디션을 봤을 수도 있어요. 내게 맞는 캐릭터를 알게 해준 것이 ‘아이다’의 암네리스였죠. 극중 성장해가는 암네리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게 정말 연기구나, 내게 잘 맞는 역을 맡았구나’ 싶었고, 오랜 시간 암네리스를 하면서 저 자신도 더 깊어지고 성숙해진다는 걸 느꼈어요. 돌이켜보면 ‘아이다’는 제 인생에 정말 선물 같은 작품이고,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에요.
Q 전나영 씨는 네덜란드에서 ‘아이다’를 처음 보셨다고요.
전나영: 네덜란드에서 열살 무렵 처음 본 뮤지컬이 ‘아이다’ 였어요. ‘Dance of the Robe’ 넘버가 아주 인상적이어서 혼자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2016년에 윤공주 언니가 나온 ‘아이다’를 봤죠. 그 때 이 작품이 얼마나 깊은 사랑이 담긴 공연인지 느꼈어요.
전나영: 전 많은 것 같아요(웃음). 책임감이 강하고, 지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렷이 알고 있고,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그 대상을 향해 간다는 점이요.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 자신을 해치는 면도 있어요. 제가 열정이나 야망이 커서 그 힘으로 20대에 계속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잖아요. 근데 서른이 되니까 그런 힘이 나와 제일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좀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만의 길로만 가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느끼게 돼요. 그래서 아이다의 부드러움을 좀 배우고 싶어요. 아이다처럼 사랑하고 부드러워지고 또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정선아: 저도 암네리스와 닮은 점이 상당히 많아요. 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주관이 강하고 멋대로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암네리스도 어떻게 보면 철없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암네리스는 사실 따뜻한 정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마지막에 암네리스가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무덤에 함께 가두게 하잖아요. 사실 정선아로서는 그 결정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웃음).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와 제일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에게 큰 충격을 받은 거잖아요. 너무 가슴 아프고 인간적으로 용서하기 힘들 것 같은데, 암네리스는 그런 결정을 내려요. 그들이 지은 죄를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거에요. 참 생각이 깊고 따뜻하죠. 저 역시 저를 잘 아는 사람은 제가 눈물도 많고 정도 많다는 걸 알아요. 겉으론 좀 정신 없어 보이지만(웃음). 그런 면이 암네리스와 닮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안에서 캐릭터를 잘 맞춰가는 것 같고요.
전나영: 아이다는 약한 여성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야성적인 면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동물의 왕국’의 사자처럼 자부심도 강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모든 동물들을 감싸주고 지켜주는 인물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어요 근데 너무 그런 감성적인 면으로만 갈 수는 없거든요. 저는 열정이 엄청 큰 사람이고 그런 면이 아이다와 닮았지만, 그걸로만 공연을 할 수는 없잖아요. 기술적인 부분이나 컨디션도 신경 써야 하고, 전체 그림도 보면서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잘 주고받는 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집중해야 하고요.
또 전 교포잖아요.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한국말 대사를 하는 거에요. 전에 했던 ‘노트르담 드 파리’와 ‘레미제라블’은 송쓰루 뮤지컬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연습 3개월 전에 한국에 와서 개인 레슨도 받고, 대사 연습도 정말 많이 했어요. 관객 분들이 ‘이 아이다는 교포인가?’라는 생각 없이 이번 공연을 즐기시면 좋겠어요.
Q 정선아 씨는 7년 만에 다시 ‘아이다’를 하게 됐는데, 전과 다르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정선아: 이전에는 ‘My Strongest Suit’ 같은 킬링 넘버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관객 분들께 깊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 그 장면에 엄청 집중했죠. 두 번째 ‘아이다’를 했을 때는 원캐스트였기 때문에 체력 관리에 엄청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 그 시간을 함께 했던 김호영 배우와 더 끈끈한 추억과 정이 쌓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그동안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암네리스의 진실한 마음을, 그리고 ‘아이다’라는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대돼요.
Q 두 분은 사랑 앞에서 어떤 스타일인가요?
전나영: 사랑은 아무것도 안 보이게 만들어요. 전 모든 걸 다 버리고 사랑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이에요. 완전 바보죠(웃음).
정선아: 젊음이 좋구나(웃음). 저도 전에는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사랑에 다 던지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못하겠어요. 사랑도 해야겠지만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예전엔 사랑을 하면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아 몰라’ 했는데 지금은 몸을 사려요. 부럽다, 나영아.
전나영: 근데 저는 너무 자주 그랬던 것 같아요. 할 때마다 ‘아, 이건 아닌데’ 싶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이제 언니를 좀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아요(웃음).
정선아: 아직 멀었어(웃음). 근데 많이들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누구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그런 경험이 당시엔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고 몸이 다 타버릴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또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성장하기도 하고, 결국 그런 경험이 무대 위에, 연기 속에 연륜으로 녹아 들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좀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웃음). 지금 너무 행복해요.
Q 두 분 다 배우로서의 경력이 좀 독특한 것 같아요. 전나영 씨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해왔고, 정선아 씨는 워낙 일찍 데뷔했고요. 배우라서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전나영: 매 순간? 지금 또 다시 느끼고 있어요. ‘아이다’는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작품이고, 아무 여유도 없어요. 근데 너무 행복해요. 다른 배우 분들께 받는 사랑도 너무 크고요. 그냥 평범한 삶과 사랑, 결혼생활에서 받는 정보다 여기서 느끼는 행복이 저한테는 더 큰 것 같아요. 또 이런 행복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제 조국에서 함께 작업한다는 게, 제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언어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죠. 저는 22살까지 아시안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학교에서 아시안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정선아: 그랬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어. 그래서 이 친구가 이 나이에 아이다를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 나이에 암네리스를 했는데, 나영이를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교포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속에 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에서 서로 처음 만났는데, 함께하는 연습 과정은 어떤가요.
전나영: 제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왜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공연을 하냐고요. 근데 정말 한국 배우 분들이 가진 열정과 재능은 웨스트엔드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선배님들께 엄청나게 많이 배우고 있고, 너무 즐거워요. 큰 영광이에요.
그리고 저는 언니(정선아)를 정말 너무 사랑해요.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전 아직 한국이 익숙하지 않은데, 언니처럼 밝고 활발하고 재미있는 사람과 함께 연습한다는 게 저에겐 정말 큰 의지가 돼요.
정선아: 나영이는 감성이 정말 풍부해요. 감정선이 너무 좋아서 보고 있으면 이 친구에게 배우는 게 참 많아요. 그리고 딱 아이다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누구든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어서 이 친구가 노래 한 소절만 해도 와 닿는 게 많아요. 나중에 무대에서 보시면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아실 거에요. 싱크로율 100%인 아이다여서 관객 분들이 정말 많이 사랑해주실 것 같아요. 그리고 나영이뿐 아니라 지금 같이 하는 배우들이 다 너무 좋아요. ‘아이다’는 아이다와 라다메스, 암네리스가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되는 작품이에요. 그 균형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잘 맞추고 있어서 너무 기대돼요.
Q 전나영 씨는 원래 연출과 극작을 전공했다고요. 뷔욕(Bjork)같은 아티스트를 꿈꿨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나중에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전나영: 사실 어릴 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등의 음악을 들으면서 따라했고, 청소년이 되면서부터는 뷔욕이나 토리 에이모스 같은 특이한 아티스트들을 좋아했어요. 저의 우상이었죠. 그러다 뷔욕처럼 좀 특이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내가 직접 나의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하는 작업이요. 일단 지금은 ‘아이다’를 잘 해내고 한국에서 좀 더 오래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판소리를 더 배우고 싶어요. 제가 네 살 때 ‘서편제’를 보고 반해서 판소리를 따라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거든요. 전 정말 판소리를 사랑하고, 특히 ‘심청가’를 너무 사랑해요. 심청에게 공감하는 면도 많고요. 언젠가 저만의 판소리 공연을 만들어서 세계 투어를 하면서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 게 꿈이에요.
Q 정선아 씨는 그동안 중국에 계셨죠.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들엔 뭐가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정선아: 제가 새로운 걸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중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중국 음악도 좋고, 중국어가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중국에 가봤어요. 사람들은 제가 일 때문에 간 줄 아는데 전 그냥 학교 다녔어요. 한국에서도 공연 사이에 가끔씩 여행을 가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다른 나라에 있는 건 오랜만이어서 인생 2막을 시작한 기분이 들었어요. 좋은 사람도 너무 많이 만났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큰 경험을 했죠. 또 쉬는 기간이 생기면 다시 가고 싶어요.
연극도 나중에 좋은 작품이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클로저’ 같은 연극이요. 예전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슨 무슨 작품을 하고 싶은지 쭉 읊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정말 좋은 배우들과 같이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에요. 좋은 배우와 함께 할 때 되게 큰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얼마 전 대학교 동기인 이규형 오빠가 하는 ‘시라노’를 봤는데, 너무 와 닿아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창피하기도 했어요. 나도 저렇게 깊이 있고 디테일한 연기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배우로서 규형 오빠의 팬이 됐고, 큰 자극을 받았어요.
Q 끝으로 이번 ‘아이다’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전나영: ‘아이다’라는 작품에 담긴 사랑을 마지막으로 다 같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아이다’는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그걸 위해서 저를 바치고 싶어요.
정선아: 아직 첫 공연도 안 했는데 눈물이 나네요. 쇼케이스에서 다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를 부른 것 같아요. ‘아이다’는 정말 우리의 뜨거운 가슴과 사랑을 담은 작품이에요. 무대 위에서 매 순간 살아있을 테니 한 순간도 놓치지 마시고 마음으로 함께 즐겨 주신다면 더 바랄게 없어요. 제가 박수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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