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콘서트 앞둔 배우 조정은 "이제는 무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 2019.11.05
- 강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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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닥터지바고’, ‘모래시계’, ‘엘리자벳’, ‘드라큘라’, ‘레미제라블’, '맨오브라만차' 등 제목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감을 자아내는 대형 뮤지컬의 주역으로 활약한 조정은은 올해로 데뷔 17년차이다. 단아하고 기품 있는 분위기, 섬세한 음색을 지닌 조정은은 뮤지컬 무대라는 한 길만을 걸어오며 그녀만의 독보적인 매력을 뽐냈다. 그렇지만 정작 조정은은 "그동안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작품들을 만나와서 늘 염려스럽고 긴장하며 무대에 올랐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이번에 그녀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두렵고 긴장되는 무대에 위에서 관객들과 오롯이 마주하기 때문이다. 첫 단독 콘서트 '마주하다'로 조정은은 자신의 지난 시간과 마주하고, 그 시간을 함께 채워주었던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한다. 이제는 무대에서 좀 더 즐기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조정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Q 지난해 뮤지컬 '닥터 지바고' 이후 오랜만입니다. 뮤지컬 무대가 아닌 첫 단독 콘서트로 돌아오셨는데요.
공연 끝나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어요. 오디션도 보러 다니고, 친한 배우들의 게스트 무대에도 서고요. 이렇게 시간이 한참 간 지 몰랐어요. 지금 콘서트 하기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한 시즌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만약 지금 30대면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Q 콘서트의 타이틀이 ‘마주하다’에요. 어떤 의미로 붙인 건지 궁금해요.
작품을 하다 보면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잘 한다고 하면 우쭐대기도 하고요. 잘 안 되면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어떤 작품들은 꺼내 보기 창피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또 ‘못하진 않았네’ 하는 작품도 있고요. 어릴 때는 정말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그 나이만큼 했구나' 싶어요. 내가 가진 게 그만큼이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구나 싶어요. 지금 와서 그때의 저를 다시 마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 나를 돌아보는 의미에서 ‘마주하다’라고 붙였어요.
Q 콘서트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팬들이 궁금해할 게스트와 셋 리스트도 확정됐나요?
콘서트 관련해서 지금 공개할 수 있는 건 춤은 안 춘다. (웃음)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멋있는 배우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제가 콘서트 게스트 전문이에요 (웃음) 게스트로 나가면 호스트가 아니니까 부담도 덜하고 재미있어요. 최근에는 김문정 음악감독님 콘서트도 갔었고요. 이번에 제가 호스트가 돼서 콘서트에 모실 분들을 떠올려 봤는데요. 참 어렵더라고요. 주변에서 처음 콘서트를 할 때 제일 범하기 쉬운 오류가 게스트 섭외라고 하더라고요. 이분도 생각나고 저분도 생각난다고요. 콘서트 전체 구성과 또 게스트 일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되더라고요. 저랑 친한, 함께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은 최대한 많은 분을 초대하고 싶어요.
셋 리스트는 뮤지컬 넘버들을 주로 부르겠지만 가요도 부를 거예요. 셋 리스트를 짜다 보니 제가 어디 가서 대표 넘버가 있다고 할 만한 작품들을 하지 않았더라고요. 드라마 안에 녹아 있는 넘버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사연이 많은 노래들이 많은데, 최대한 콘서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해요.
Q 지금껏 해왔던 작품들을 마주해본다면요.
음, 가장 마주하기 힘든 공연은 ‘맨오브라만차’에요. 저에게 있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가진 것의 간극을 알게 됐거든요. '미녀와 야수'는 이십 대의 풋풋함이 있어서 저에게 기회가 왔던 것 같고요. 저와 똑같다 하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저의 성격이 묻어나는 역할도 많이 했어요. ‘모래시계’ 혜린이나 저는 보기에는 여성스러울지 몰라도 여성스럽지 않거든요. 혜린의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고 행동하는 것이 비슷한 것 같아요. ‘엘리자벳’은 여왕 역할은 처음이라 낯설고 어색했는데 엘리자벳이 여왕의 모습보다는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모습이나, 외로움 등 부분적인 모습들이 저와 연결되는 것 같고요. 팬들은 제가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와 저라는 사람을 겹쳐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캐릭터가 제 모습은 아닌데 역할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제가 가진 것 이상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맞게 도달해 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애를 쓰는 만큼 되는 것도 있지만 안되는 것도 있더라고요. 이제는 어떤 공연이든 나에게 작품이 주어지는 게 참 감사한 일 같아요.
Q 콘서트를 통해서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어요. 이것 밖에 하고 싶은 것이 없었어요. 그러다 그 꿈이 어느 순간 제일 힘들게 하는 일이 됐고요. 꿈이라는 에너지로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게 소진됐을 때는 유학을 갔어요. 유학을 다녀와서는 ‘난 배우가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프로 배우가 내 길이 맞나?’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꿈을 꿨고, 꿈을 이뤘지만, 꿈이 현실이 됐을 때 거기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한계, 괴리감이 느껴질 때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계속 고민이 됐어요. 꿈을 끌고 계속 갔지만 무대에서 자유롭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괴로운 시간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드라큘라’를 하면서 ‘연기하는 게 참 재미있는 거구나’ 알게 됐어요. 내 생각으로 내 말로 연기하고 노래한다는 게 참 행복했어요. 예전에는 남들이 그려놓은 모습에 절 맞추려고 했는데 ‘드라큘라’는 내가 이 말을 하더라도 정확하게 알고 해야지 하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때 정말 치열하게 연습했어요. 이후부터는 남들이 그려 놓은 거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다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연기가 여전히 힘들고 어렵지만 재미있구나, 내가 배우가 맞구나 싶더라고요. 그 길을 따라 이제껏 왔어요.
관객들에게 꿈이 나는 아니라는 것. 꿈이 없어져도 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꿈이 없으면 나도 없다고 느꼈어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거지 꿈과 내가 동일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꿈이 망가진다고 해서 자신을 망가트릴 필요는 없고요. 콘서트에 오시는 분들도 다 꿈이 있고 그것이 소중하지만, 스스로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것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콘서트가 아주 화려하고 대단한 게 있지 않지만 편안하게 힐링하고 가면 좋겠어요.
유년 시절과 마주 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어요. 언니, 오빠가 있었지만 어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있으면 좋아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봤던 중전마마, 주모 같은 역할 놀이도 하고 회사에서 부장님께 결재하는 놀이도 하고요. 밥 짓는 냄새가 나면 애들이 놀다가도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심심하고 외로웠던 그때의 저와 놀아주고 싶어요.
Q 정은 씨는 다작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죠. 작품이 끝나면 긴 휴식기도 가지고요.
제가 여러 작품을 못 하는 이유는 참 단순해요. 하나를 해도 겨우 할 수 있거든요. 여러 개로 쪼개서 못해요.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하나에만 집중해서 해야 하거든요. 나눠서 하기에는 스스로 너무 벅차고요. 그래서 작품을 할 때마다 긴장이 돼요. 작품을 선택하기도 전에 이걸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고요.
이제는 그 시간을 좀 내 것으로 누리면서 무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마치고 나면 후회가 많았어요. 그때는 왜 그게 전부인 것처럼 그랬는지 다른 것들을 놓친 것 같아 아쉬움이 들거든요. 어려웠던 상황에만 빠져서 허우적거린 게 아쉽게 느껴지더라고요.
Q 이런 변화는 어떤 계기가 있나요?
나이 들어서 좋은 건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아요. 내 에너지를 쓸 만큼 쓰고, 그 외의 것에는 더 힘을 주지 않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제 꿈이 너무 중요했어요. 물론 여전히 꿈은 중요하지만 지금은 다른 거에 대한 소원도 생기더라고요. 이런 절 보면서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싶어요. 이제껏 온 에너지를 연기에만 집중했는데, 앞으로는 작품에만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니고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Q 정은 씨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어린 배우들이 롤모델로 종종 이야기하는 선배입니다. 이런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 배우마다 가지고 있는 게 달라요. 악기로 치면 나는 플롯인데 바이올린을 탐내면 안 되잖아요.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도 어릴 때는 이런 생각 못 했어요. 내가 가진 것보다 남들 가진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나의 좋은 걸 갖다 버리고요. 저는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보일 때 가장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자기의 좋은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콘서트에 오시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관객들은 항상 긴장되는 존재였어요. 관객들이 제 연기나 노래를 들을 때 '힘들지 않게 해야 해' 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이번에 콘서트를 통해서 관객들을 마주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내는 거예요. 이제는 관객들이 나를 긴장시키고 나를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주 보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나눌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라는 존재로 바뀌는 순간이 된 것 같아요. 저와 함께해주세요.
Q 지금껏 무대에서 불렀던 넘버로 나를 표현한다면, 그리고 스스로에 해주고 싶은 말은?
‘맨오브라만차’의 ‘둘시네아’ 란 곡인데요. 이 곡을 무대에서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 넘버에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이 넘버는 알돈자가 극 마지막 순간에 돈키호테에게 "깨어나"라고 하는 노래에요. 알돈자는 ‘맨오브라만차’에서 “내 이름은 둘시네아에요”라고 말하기 위해 그 긴 여정을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동안 조급해하지 않았다는 것. 떠밀려서 작품을 하지 않는 것. "그건 참 잘했어"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Q 콘서트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일단 콘서트를 잘 마치고요. 큰 일을 마쳤으니 그 다음에는 잘 쉬고요. 새로 들어갈 작품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내년에는 기회가 되면 연극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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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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