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공연 속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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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존곤히 와 이야기한다…" 곱고 섬세한 언어로 마음을 가만가만 울리는 아름다운 시를 남겼던 백석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른다. 오는 11월 개막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해방 전후 ‘문단 최고의 미남’이자 ‘천재시인’으로 불렸던 시인 백석과 평생 그만을 사랑했던 기생 자야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의 고운 언어를 이 공연은 어떻게 담아낼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박해림 작가와 채한울 작곡가가 우란문화재단의 ‘시야플랫폼:작곡가와 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개발한 공연이다. 박해림 작가는 평소 산책 삼아 들르던 길상사에서 그 곳의 주인이었던 자야(김영한)의 사연을 듣고 이번 공연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뜨겁고 순수했던 시인의 사랑 이야기
자야는 스물 두 살이던 1936년 처음 백석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녀는 문예지에 수필을 발표하던 인텔리 기생이었고, 백석은 함흥 영생여고의 영어교사였다. 백석은 자야를 처음 만난 순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옆에 앉히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러나 기생 며느리를 원치 않았던 백석의 부모는 아들을 세 번이나 강제 결혼시켰다. 백석은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도피하자고 제안했으나, 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삶에 걸림돌이 될까 두려워 거절한다. 낙담한 백석은 혼자 만주로 떠났고, 그 사이 한반도에 3.8선이 생겨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후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던 자야가 1995년 시가 천억 원에 달하던 길상사(당시 요정 대원각)를 절에 희사하며 “천 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뮤지컬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는 스물 둘, 스물 여섯이었던 젊은 백석과 자야가 불같은 사랑을 나누던 때부터 백석이 만주로 떠나기 전까지의 기간을 무대로 담아냈다. “백석의 시 한 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자야의 드라마틱한 삶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녀를 백석의 시 안에서 살게 해 주고 싶었다”는 박해림 작가는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 ‘여우난곬족’을 비롯한 백석의 시와 20편을 공연 곳곳에 녹여냈다고. “시를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곡가와 함께 시어를 고르고 골랐다.”는 박해림 작가는 “공연을 보면서 백석의 시집을 감상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와 같은 시어가 어떤 뮤지컬 넘버로 탄생할지 기대를 모은다.
 
+ 공연 속 시인들
실존했던 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공연은 이전에도 있었다.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윤동주, 달을 쏘다><명동 로망스> 등이다. 이 공연들은 시인의 삶에 상상력을 더해 관객들에게 그들의 감성과 고뇌를 생생하게 전했다. 이렇게 여러 창작자들이 시인의 삶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박해림 작가는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나 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성격이 창작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기쁨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인들을 무대로 불러낸 그간의 창작 공연을 돌아보자.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2013)
<알리바이 연대기>의 김재엽 연출이 쓰고 연출한 연극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시인 김수영의 삶을 모티브로 현시대 예술가들의 고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극중 작가 ‘재엽’은 대본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들을 설득해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가는’ 공연을 함께 만들기 시작한다. 이들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면 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시를 읽기 시작하고, 관객들은 이 대책 없는 창작 과정을 고스란히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김수영이 생전 고민했던 예술과 사회의 문제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빈껍데기 아닌 삶이란, <명동 로망스>(2015~2016)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에 지친 9급 공무원 장선호는 재건축 허가서를 받기 위해 명동의 오래된 다방에 들렀다가 1956년 명동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시인 박인환과 수필가 전혜린, 화가 이중섭을 만난다. 세 예술가는 아직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고민만 한가득 안고 살고 있지만, 그 고민의 치열함은 그저 뭉텅뭉텅 시간을 흘려 보내던 장선호를 각성시킨다. 세 명의 예술가가 등장하기 때문에 박인환의 시가 큰 비중으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시키는 거 잘한다고? 그건 빈껍데기야”라고 말하는 박인환의 모습은 따끔하고 후련한 울림을 준다. 이 공연은 11월 5~6일 목포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11월 12일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진다.
 
시를 쓴다는 것은, <윤동주, 달을 쏘다>(2012, 2013, 2016)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일본 형무소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의 일들을 그린다. 윤동주의 시가 무대 전면에 써내려지는 영상 효과나 서울예술단의 장기인 역동적 안무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시를 쓴다는 것/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묻는 사람 하나 없어도/자꾸 되풀이되는 말”과 같은 절절한 가사와 음악이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시인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윤동주의 삶과 눈물을 생생하게 전한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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