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현 “‘웃는 남자’가 제 인생작이래요...도움 준 옥주현 선배에게 감사해"
- 2020.02.05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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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의무 때문에 잠시 무대를 떠나있던 규현은 최근 새해를 맞아 다시 뮤지컬로 돌아왔다. 그가 선택한 복귀작은 ‘웃는 남자’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에서 규현은 입이 기괴하게 찢어진 그윈플렌을 연기한다. 소집해제 후 몇 번의 출연 제의를 고사한 끝에 신중히 고른 작품이라고. 3년 반 만에 무대에 오른 그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난 4일 만나 물었다.
Q 소집해제 후 첫 뮤지컬로 ‘웃는 남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복무요원 시절에 초연을 봤어요. 재미있어서 두 번 봤어요. 그 때 관계자 분께서 다음에 같이 하자고 했을 땐 그냥 웃어 넘겼는데, 계속 생각이 나면서 나중에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사실 작년에도 몇 편 출연 제안을 받은 게 있는데, 이 작품으로 컴백을 하고 싶었어요.
Q ‘모차르트!’ 이후 3년 반 만에 서는 뮤지컬 무대에요.
감이 떨어졌을 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그동안 연기도 계속 안 했으니까. 그래서 상견례를 할 때 배우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작품을 많이 하긴 했지만, 연차만 쌓였을 뿐이지 오랫동안 (뮤지컬을) 안 해서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니까 많이 도와달라고. 최대한 연습을 많이 참여하려고 했고, 하다 보니 다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Q 그윈플렌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나요.
1막에선 (다른 인물들과) 같이 화음을 맞추는 장면들이 많아서 감미롭게 풀려고 했어요. 같이 호흡하면서 좋은 화음을 만드는 데 신경을 썼고, 2막부터는 그윈플렌이 솔로로 풀어가는 부분이 많으니까 좀 더 힘있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또 가능한 선에서 즐거운 장면을 많이 만들려고 했어요. 계속해서 (감정선을) 어둡게 가져가면 보시는 분들이 힘드실 수 있으니까, 전체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웃기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조사아나 여공작과 그윈플렌이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재미있는 걸 많이 하려고 해요. 더 엉성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하죠. 귀족들을 대할 때는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제스쳐를 연구했고요.
Q 이석훈, 박강현, 수호 씨와 함께 그윈플렌을 맡았는데, 규현 씨의 그윈플렌만이 가진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다른 배우들과 비슷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시는 분들은 넷이 되게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보고 해맑던 그윈플렌이 상처 속에서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이 더 와 닿는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런 모습을 더 보여드리려고 해요. 그 격차를 좀 더 크게 표현하려고요.
Q 특히 좋아하는 넘버나 장면을 꼽는다면요.
넘버는 ‘그 눈을 떠’요. 상원 의원들에게 제발 좀 나누고 살자고 말하는 노래인데, 요즘 시대도 정말 각박하잖아요.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너무 좋아요.
그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렇지 않습니까?” 하며 열변을 토할 때도 기분이 좋아요. 내가 이들을 설득시킨 것 같아서. 뒤에 반전이 있으니까 간극도 더 크게 느껴지고요. 앙상블 분들께도 그 장면에서 저를 더 욕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렇게 상대 배우 분들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서 터뜨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Q 주변 지인들의 관람평은 어땠나요.
많이 울었다고들 하세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성공했구나 싶죠. 사실 저는 연예인 초대를 많이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엔 오랜만의 공연이라 회사 동료 몇몇을 초대하려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미 수호가 다 초대를 해서 봤대요. 심지어 친분 없는 연예인들한테까지 (초대장을) 돌렸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전 수호가 모르는 분들 위주로 초대하려고요(웃음).
Q 찢어진 입이 그윈플렌이 외형상 가진 특징인데, 분장 때문에 힘든 점은 없나요?
분장이 거슬리기보다 오히려 되게 도움이 돼요. 정말 내가 그 사람으로 변신한 것 같아서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입술은 좀 불편하긴 해요. 여성분들이 립스틱을 많이 쓰잖아요. 립스틱을 바르면 립밥도 못 바르고 음식 먹을 때 다 묻으니까 되게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치도 못하겠더라고요.
가발은 따로 안 쓰고 싶어서 계속 머리를 기르는 중이에요. ‘모차르트!’ 때도 가발 없이 그냥 제 머리로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 6~7달동안 계속 머리를 길렀는데, 결국 가발을 쓰게 돼서 허무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다들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느 한 분을 꼽으면 나중에 ‘너 누구 얘기했더라?’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서(웃음).
가장 많이 뭉쳐 다니면서 도움 받은 사람은 아무래도 그윈플렌들이죠. 강현이는 그 전에도 워낙 잘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실제 만나보니까 되게 싹싹하고 좋은 아이인데, 무대에서는 완전 싹 돌변해서 너무 멋있어요. 동생이지만 제가 정말 많이 배우죠. 석훈 형은 원래 가수로서도 좋아했는데, 이번에 연기나 노래 표현에 있어서도 또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하고 배워요.
수호는 많이 안 도와줬어요(웃음). (엑소)리더이고 멋있는 아이인데, 저한테만 오면 애기가 되어버려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봤으니까 보면 그냥 사랑스러워요. 그동안 자주 못 봤는데 뮤지컬로 자주 봐서 진짜 좋았어요.
공연 전에 무대 구석에 있는 천막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 때 기도를 해요.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하는 분들, ‘웃는 남자’와 뮤지컬과 예술의전당을 사랑하는 분들,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이 이 귀한 3시간이 지난 후에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를 갖고 나가시면 좋겠다고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관객 분들께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공연을 하면서 제가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관객 분들, 몇 번씩 회전문을 도는 제 팬들이 만족하는 거잖아요. 이번 공연이 제 인생작이라고, 제가 했던 뮤지컬 통틀어서 제일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끝까지 실수없이 잘 해서 그걸 잘 유지하고 싶어요. 아쉬움 없이 끝내는 게 목표에요.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발성도, 대사 톤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죠. 그 때 왕용범 연출님이 앙상블 분들께 저를 욕해 달라고 부탁해서, 20분동안 욕을 먹은 적이 있어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터뜨려보라고 하신 거에요.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음악적 표현 등을 많이 배웠어요. 옥주현 선배님이 제 시츠프로브 영상을 보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요. 그래서 선배님을 만나서 공연 끝난 후에 목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발성할 때 어느 (구강) 부위를 사용해야 하는지,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네 시간 가까이 배웠어요. 전에는 인사만 하고 공연만 몇 번 본 사이였는데, 너무 열성적으로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큰 도움이 됐어요.
Q 또 그동안 고마웠던 선배들은 누가 있나요.
(엄)기준이 형과 작품을 많이 했어요. 처음 같이 공연을 했을 땐 절 별로 신경 안 쓰셨어요. 하다가 말겠지, 생각하신 것 같아요. 두 번째 같이 공연할 때 ‘너 뮤지컬 계속 할 거니?’ 하셔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때부턴 애정을 갖고 저에게 무대와 연기에 대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베르테르’를 할 때 기준, (조)승우 형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하면서 제가 즐겁거든요. 또 출연을 결정할 때 후회하지 않을 만한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음악도 어떤지 보고요. 제 장점이 연기보다는 넘버 소화력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제 팬들의 통장 상황이 괜찮은 한 계속 하고 싶어요. 그것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제 인기가 엄청 많아서 표가 다 매진되면 모르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그게 아니어서 공연을 보려면 바로 예매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럼 제 팬들은 돈을 자꾸 쓰셔야 되니까 그게 너무 죄송해요. 인기가 더 많아져서 예매하기 힘들어져야 하는데(웃음).
Q 방송에서 보는 규현 씨의 모습은 늘 밝지만, 아이돌로서 가진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길을 다닐 때 고개를 못 들고 다녀요. 연예계 생활을 15년 하면서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눈이 마주치면 저를 알아보시는 경우가 있으니까. 여름에 바다에 간 적도 없고요. 그렇게 오픈된 장소에 갈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는데, 그 반대로 얻는 것도 너무 많아요. 사람도 있고, 금전적인 것도 있고요.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제가 공연할 때 국내든 해외든 가급적 팬들과 눈을 많이 맞추려고 하거든요. 저 분은 매체를 통해서만 나를 아셨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실 수 있을까, 많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너무 감사한 직업 같아요.
Q 규현 씨의 자기관리 방법이 있다면요.
퇴근길에 팬 분들이 주신 편지를 다 받아서 읽는데, 팬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시는 게 제 스케줄이더라고요. 소집해제 이후 명절을 빼고는 계속 일만 하고 있거든요. 근데 저는 이렇게 미친듯이 일을 하는 게 익숙해서 힘든 건지 잘 모르겠어요. 회사의 강요로 하는 게 아니라 다 제가 선택한 거니까 투정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목 관리를 위해 최대한 말을 안 하려고 하고, 가습기도 더 들여놓고 하죠.
Q 바쁜 일상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편한 사람들과 맛집 가서 한잔 할 때 충전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엔 그런 시간을 많이 못 가졌지만. 종종 비는 날이 생기면 ‘그날은 마셔도 돼’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해요.
요즘 왜 살아가는 것인가를 많이 생각했어요. 왜 이렇게 아둥바둥 열심히 살고 있을까. 아직 결론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무대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게 되게 감동스러워요. 커튼콜 때 박수와 함성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돋아요. 또 팬 분들이 제가 자신의 사는 이유라고 사는 말씀해주시면 내가 누군가에게 사는 의미가 되었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죠.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SM엔터테인먼트,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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