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창작자들을 매혹시킨 ‘고전의 힘’은?
- 2020.02.12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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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뮤지컬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인간 내면의 모순과 욕망 면밀히 비추는 무대
지난 7일 개막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1880년 발표한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원작 소설은 1860년대 제정 러시아의 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존속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신과 종교, 인간에 대한 대문호의 통찰을 담았다. 뮤지컬 작업에는 오세혁 연출과 김경주 작가, 이진욱 작곡가가 참여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원작의 서사를 밀도 있게 집약하고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악마를 등장시켜 각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히 표현한다. 가사의 의미를 음의 높낮이로 표현하는 ‘가사 그리기(tone painting)’ 기법으로 만들어진 음악이 분위기를 이끈다.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데, 무대 위에서도 온전히 배우의 힘으로 그 에너지를 뿜어내고 싶었다”는 오세혁 연출은 “초연은 서로의 말과 에너지가 전염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재연은 전염을 넘어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1700 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소설은 바쁜 현대인들이 선뜻 집어 읽기 힘든 책이다. 이를 100분간의 공연으로 압축한 뮤지컬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모순과 욕망을 비추며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색다른 언어로 건넨다. 오 연출은 “그 시기의 러시아는 지금의 한국만큼 체제가 급변하던 과도기였다. 급변의 시대에는 새로운 인간과 낡은 인간이 투쟁하게 된다. 그 혼돈 속에 비극이 생겨나고, 그 비극을 이겨내려는 아름다움도 생겨난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싸움과 비극이지만, 그 비극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5월 3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펼쳐진다. 김주호, 심재현, 최영우, 조풍래, 서승원, 이형훈, 유승현, 안재영, 김지온, 김준영, 박준휘, 안지환, 이휘종이 출연한다. ☞ 예매
‘비행’ 소재로 펼쳐지는 삶·꿈·예술에 대한 이야기
오는 3월 7일 개막하는 뮤지컬 ‘Via Air Mail’은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비행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20년대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한지안 작가는 당시 실제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가 쓴 ‘야간비행’에 주목했다. ‘야간비행’은 우편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가 비행사로서 겪은 경험과 감상을 녹여낸 자전적 소설이다. 한 작가는 이 소설 속 일부 캐릭터와 사건을 모티브로 삼되, 일종의 스핀오프 형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
1931년 ‘야간비행’을 발표한 생텍쥐페리는 1944년 정찰 비행 도중 실종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작가의 삶이 ‘야간비행’의 주인공 파비앙의 행적과 겹쳐 보였다는 한지안 작가는 소설 속 인물(파비앙, 리비에르) 외에 작곡가 로즈와 메일보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더해 뮤지컬 대본을 완성했다. 새로 탄생시킨 인물들을 통해 ‘상실을 견디는 예술의 힘’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고. 특히 작곡가 로즈가 만드는 음악은 무대 위 각기 다른 공간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90여년 전 쓰인 고전 소설에 주목한 배경에 대해 한 작가는 “고전은 ‘오래전에 쓰였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이야기’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적 기록을 무대 위에 살려내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음악이라는 언어로 관객들과 즐겁게 대화 나누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작가는 뮤지컬 ‘Via Air Mail’에 대해 “모험을 감행하는 그 옛날 비행의 시대와 알 수 없는 미래를 그리며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끝없이 비상하고 꿈꾸는 사람, 일상을 기꺼이 견디고 살아내는 사람 모두가 성장하고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는 작품이 되기를 바랐다. 각자의 항로를 날고 있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뮤지컬 ‘Via Air Mail’은 3월 7일부터 1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송원근, 나하나, 황만익, 김유정이 출연하며, 채한울 작곡가와 김동연 연출이 참여한다. ☞ 예매
“자신의 진짜 얼굴 찾는 공연이 되길”
3월 7일 첫 무대를 앞둔 뮤지컬 ‘데미안’은 남녀 배우가 고정 배역 없이 주인공 두 명을 번갈아 연기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원작 소설을 좋아했다는 오세혁 작가가 다미로 작곡가와 함께 3년간 준비한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가 1919년 발표한 ‘데미안’은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인 데미안을 통해 낡은 규범을 깨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청년 싱클레어의 치열한 성장기를 담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유명한 문장이 실린 책이다.
오세혁 작가는 이 소설을 무대화하며 개인의 정체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친구 데미안의 존재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찾게 되는 싱클레어의 성장 과정을 모든 배우가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고정 배역을 없앴다. 배우들은 모든 대사와 넘버를 숙지한 후 두 인물을 번갈아 가며 연기하게 된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을 겪으며 허무와 좌절에 빠져있던 젊은 세대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원작 소설이 2020년 한국에서는 어떤 무대로 재탄생할지 기대를 모은다. “소설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공연은 무대 위에서 여러 시공간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 이 동시적인 시공간에서 단 두 명의 배우가 펼치는 배우술의 향연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오 작가는 관객들에게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다양한 얼굴이 있지만 때때로 허용된 하나의 얼굴로 살아간다. 웃고 싶은데 웃지 못하고,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한다. 이 공연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그 얼굴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뮤지컬 ‘데미안’은 3월 7일부터 4월 26일부터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되며,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김유영),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이 출연한다. 연출은 이대웅이 맡았다. ☞ 예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과수원뮤지컬컴퍼니, 모티브히어로, 메이크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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