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와일드혼 “’지킬앤하이드’에 조승우가 있다면 ‘드라큘라’엔 김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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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와일드혼은 가장 많은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작곡가다. 국내 뮤지컬 시장의 저변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지킬앤하이드’를 비롯해 ‘몬테 크리스토’, ‘더 라스트 키스’, ‘시라노’, ‘웃는 남자’ 등 일일이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은 뮤지컬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뮤지컬 문외한이라도, 프랭크 와일드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그가 만든 곡을 듣거나 불러보았을 것이다.

지난 11일 개막한 ‘드라큘라’ 역시 프랭크 와일드혼의 인장이 선명히 찍힌 작품이다. 이 뮤지컬은 시공을 초월한 드라큘라의 사랑을 귀에 금세 스미는 유려한 음악으로 담아내 개막 초반부터 연일 기립박수를 끌어내고 있다. 지난 13일, '드라큘라' 개막을 맞아 방한한 프랭크 와일드혼을 만나 이 작품과 뮤지컬 작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Q ‘드라큘라’는 브로드웨이 초연(2004) 이후 17년차, 한국 초연 7년차를 맞았다. 그간 이 작품이 어떻게 발전해왔다고 보는지.
모든 공연은 계속해서 새로 쓰여진다. ‘지킬앤하이드’의 경우 전세계에 3천개가 넘는 프로덕션이 있는데, 어느 하나 똑같은 공연이 없다. 나는 항상 프로듀서나 연출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드라큘라’는 더 독특한 경우다.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와 배우 김준수가 이 작품에 참여하기 전까지, ‘드라큘라’의 브로드웨이와 유럽 공연에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배우들이 드라큘라 역을 맡았다. 드라큘라가 400살 넘은 인물이니까 나이든 배우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다른 배역들도 그 나이대의 배우들이 맡았다.
 
근데 그 모든 게 한국에서 바뀌었다. 신 대표와 김준수가 드라큘라는 20대여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주면서 전체 캐릭터들의 연령대가 낮아졌고, 음악과 오케스트레이션도 거기 맞춰 젊어졌다. 드라큘라가 400년 넘게 살았다는 것보다 그가 젊은 시절 겪은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그게 프로덕션을 힙하게 만들었다.

내가 절대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신 대표가 (드라큘라 컨셉의) 준수의 사진을 보내줬을 때다. 아직도 내 핸드폰에 그 사진을 갖고 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이 공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 ‘트와일라잇’처럼 모든 캐릭터들이 젊어진 것이다. ‘드라큘라’의 한국 프로덕션이 다른 어느 나라의 공연보다 더 젊고 힙해졌고,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 공연을 참고해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한다. 한국 프로덕션이 내 ‘드라큘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준 것이다.

Q 음악이 젊어졌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원래는 클래식한 사운드가 더 많았다.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팝과 록음악의 요소를 가미했다. 여전히 클래식하고 슬프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있지만, 동시에 도발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한국 ‘드라큘라’만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아까 말했듯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부분을 따라하고 있다.
 
Q 한국 초연 멤버인 김준수와 류정한이 이번 시즌에 다시 드라큘라 역을 맡았고, 전동석이 새로 합류했다. 각 배우들의 강점을 꼽는다면.
어제 전동석의 공연을 봤는데 굉장히 훤칠하고 잘생겨서 영화배우 같았다. 무대에서 몸도 잘 쓰고 카리스마가 있다. 어떻게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지 아는 배우다. 또 기대되는 것은, 그가 매우 젊다는 것이다.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역을 맡아 많이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의 성장도 아주 기대된다.

토니(류정한)는 내 오랜 친구다. 또 내가 작곡한 뮤지컬 ‘시라노’의 프로듀서 겸 배우로서 함께 긴 작업을 거쳐온 좋은 파트너다. 나의 다른 작품에도 많이 출연했고,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훌륭한 배우이자 아티스트다. 연륜이 긴 만큼 무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가 이번에 ‘드라큘라’를 통해 다시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흥분된다. 

준수는 마술사 같은 배우다. 그는 굉장히 다른 느낌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선 나와 비슷하다. 나의 음악적 기반은 재즈와 흑인 음악이다. 휘트니 휴스턴, 나탈리 콜 같은 위대한 흑인 가수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근데 준수가 그런 소울, 아픔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섹시하다. ‘드라큘라’는 ‘천국의 계단’, ‘데스노트’, ‘엑스칼리버’에 이어 우리가 네 번째로 함께 한 작품인데, ‘지킬앤하이드’에 조승우가 있다면 ‘드라큘라’엔 김준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준수 덕분에 ‘드라큘라’가 전체적으로 젊어졌다.

며칠 전 ‘브로드웨이에 김준수 같은 배우가 누가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는데,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준수는 특별한 배우다. 아마 그의 음악적 배경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다가 이 분야에 뛰어든 것처럼, 김준수도 다른 분야에서 오지 않았나. 그런 공통점이 있어서 준수와 함께 하는 작업이 너무 좋고, 그를 위해 곡을 쓰는 게 즐겁다. 아마 또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될 거다(읏음).
 
▲ ‘드라큘라’ 공연(김준수)

Q 창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문학이나 역사, 뉴스에서 얻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을 보며 얻기도 한다. 내 삶의 철학은 ‘언제나 학생으로 살자’다. 학생처럼 열정을 갖고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어디서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젊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늘 학생이 되려고 하고, 모든 것에 열려 있으려고 한다. 그게 창작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일하면서 여행하는 모든 곳들도 영감의 원천이 된다. 특히 여기 아시아는 굉장히 특별한 곳이다. 알다시피 ‘데스노트’는 일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난 어렸을 때 일본 만화를 전혀 모르고 자랐는데, ‘데스노트’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된 거다. 올해 7월에는 또 다른 만화를 원작으로 내가 작곡한 뮤지컬이 도쿄에서 공연된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작품이다. 그런 식으로, 내가 뉴욕에서만 있었다면 얻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과 영감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얻는다.

Q ‘드라큘라’의 곡을 쓸 때는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드라큘라’는 쉬웠다. 우선 훌륭한 원작 소설이 있고, 영화로도 다양한 버전이 있지 않나. 그러니 영감을 얻을 거리가 정말 많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가사를 쓴 크리스토퍼 햄튼과 돈 블랙이다. 크리스토퍼 햄튼은 영화 ‘위험한 관계’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돈 블랙은 뮤지컬 ‘선셋대로’로 토니어워즈 최고뮤지컬상을 받은 작가다. 정말 훌륭한 작가들이고, 그분들이 쓴 가사 덕분에 곡을 쉽게 쓸 수 있었다.
 
▲ ‘드라큘라’ 공연(전동석)

Q 대학에서 음악이 아닌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던데.
나는 음악을 독학으로 배웠다. 뉴욕에서 자라 플로리다로 이사를 갔는데, 사실 학창시절에 가장 되고 싶었던 건 풋볼 선수였다. 그러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과 사랑에 빠졌다. 풋볼처럼, 피아노도 처음엔 여자들에게 멋있어 보이려고 시작했다(웃음). 그러다 모든 장르의 음악에 빠져들었고, 클래식, 재즈, 흑인 음악, 스페인 음악, 록, 팝 다 가리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곡을 쓰기 시작한 거다.

그러다 대학(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 갔는데, 십대 때부터 이미 훌륭한 뮤지션들과 작업을 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작업하는 음악가들이 내 스승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뮤지컬 음악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곡을 썼다(읏음). 그때 내가 프로 작곡가로서 처음 만든 뮤지컬이 ‘지킬앤하이드’다. ‘지킬앤하이드’의 가사를 쓴 레슬리 브리커스는 지금 89세인데, 내게는 아버지이자 챔피언, 선생님이자 멘토 같은 존재다. 그에게서 정말 많은 걸 배웠고, 나중에 그와 함께 ‘시라노’도 만들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내 인생은 온통 팝 뮤직이었다. 당시 내가 쓴 곡도 운 좋게 많이 팔렸다. 그러다가 90년대에 접어들어 내 인생이 생각지도 못했던 뮤지컬 쪽으로 펼쳐지게 된 거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싶은 기분이다(웃음).
 
Q 당신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 작곡가일 것이다. 한국 관객들이 당신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놀랍다(웃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케미스트리’가 아닐까? 누구랑 데이트할 때 케미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한국 관객과는 케미가 좋았던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그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다. 또 한국 관객들의 특징 하나는 마음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인데, 나 역시 그런 사람이라서 서로 잘 맞는 것 같다. 또 한국 배우들도 내가 쓴 곡을 잘 받아들여 표현해준다. 준수, 옥주현, 박효신 모두 그런 배우들이다.

곡을 쓸 때 미리 관객들의 반응을 생각하며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관객들이 내 작품을 많이 좋아해줘서 참 감사하다. ‘지킬앤하이드’와 ‘드라큘라’, ‘보니 앤 클라이드’, ‘마타하리’, ‘몬테 크리스토’ 등...너무 행복하다.

항상 얘기하지만, 지금은 아시아의 시대다. 며칠 전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만 봐도 그렇다. 영화 ‘기생충’이 상을 받지 않았나.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를 거다. 미국 영화산업은 정말 규모가 커서, 우리(미국인)는 정말 많은 영화를 본다. 그런데 그 많은 미국 영화뿐 아니라 비 영어권에서 온 모든 영화를 제치고 ‘기생충’이 상을 받은 거다. 한국인들은 마음껏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 한국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다. 나도 여기서 일하는 게 참 좋다(웃음).
 
Q 혹시 최근 한국의 다른 창작뮤지컬을 본 적이 있나. 
몇 편 봤다. 10년 전쯤 ‘영웅’을 봤는데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2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을 봤는데, 좋은 쪽으로 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느꼈다. 작곡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재능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새로운 세대가 탄생한 거다. 

‘지킬앤하이드’로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나는 브로드웨이에서 유일한 팝 출신 작곡가였다. 내 음악이 너무 팝 같다고 비판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팝 작곡가들이 브로드웨이서 활동하고 있고, 내 작품을 보며 성장한 작곡가들도 많다. 멋진 일이다.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마스터 클래스를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몇 년 전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더 하고 싶다.

Q 마스터 클래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늘 학생이 되라는 말을 한다. 절대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말이다. 배우기를 멈추면 늙어버린다. 음악이든 여행이든 음식이든, 당신이 열정을 품은 모든 것들을 계속 삶으로 끌어들이고 배워야 한다.

음악을 들을 때 장르를 가리지 말라는 얘기도 한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모든 형식,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듣다 보면 거기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된다. 뉴욕에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이 아니면 별로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스티븐 손드하임은 천재고, 그의 음악은 정말 훌륭하다. 나도 그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하지만 창작자라면 모든 음악에 다 열려 있어야 한다.
 

Q ‘까미유 끌로델’ 등 당신의 뮤지컬 중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시의 적절한 질문이다(웃음). ‘까미유 끌로델’이 다음달 워싱턴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공연될 예정이거든. 언젠가 한국에서도 공연되면 좋겠다. 특히 여성들에게, 또 최근 ‘미투’ 운동을 겪었던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까미유 끌로델은 여성이 예술을 꿈꿀 수조차 없었던 시대에 예술가가 되기 위해 투쟁했던 천재 예술가다.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뮤지컬을 통해 그녀를 기리고 싶었다. 
 

Q 이후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아주 많은 계획이 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공연할 신작을 세네 편 준비 중이다. 한국의 훌륭한 프로듀서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하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고, 앞으로 함께 할 것이 많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오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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