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전시시점] ‘19금 화가? 비극 이겨낸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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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화면 캡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 ‘길’은 1900년대 프랑스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벨 에포크(Belle Epoque)’라 불리던 시기에 활약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며 황홀감에 도취되지요. 운명의 여인 아드리아나와 함께 물랭 루즈에 당도한 길은 한쪽 구석에서 외로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단신의 남성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는 누구일까요?

 

아드리아나 : "세상에! 피카소가 정말 존경하는 분인데...인사해야겠어요. "

길 : "방해하지 말죠."

아드리아나 : "같이 가요, 떨려요"

길 : "정말요?"

아드리아나 : "외로운 분이잖아요. 반가워할 거예요."

 

아드리아나가 보고 흥분한 남성은 바로 툴루즈 로트렉(1864-1901)입니다. 프랑스 백작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근친 결혼 때문에 평생 신체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지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툴루즈 로트렉전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이란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5월 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엔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 150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후기 인상파에 속하는 툴루즈 로트렉 작품의 매력은 화려한 색깔과 이해하기 쉬운 소재들입니다. 한 마디로 눈이 즐거운 전시랄 수 있죠. 비극적이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툴루즈 로트렉의 인생까지 이해한다면 마음도 즐거운 전시가 됩니다. 마치 19세기 파리에 온 듯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고요. 자, 그럼 화려하고 볼 거리 많은 벨 에포크기의 파리 문화에 한껏 취해볼까요? 이번 전시를 작가, 작품, 도슨트의 세 개의 관점에서 해체해 보겠습니다.
 

STEP 1 : 툴루즈 로트렉이 누구야? ‘금수저’ 출생이 불러온 비극을 예술로 승화한 인물
 

귀족 집안에서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툴루즈 로트렉의 집안이 그랬습니다. ‘알비’라는 프랑스 도시에서 유서 깊은 가문의 백작 아들로 요샛말로 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로트렉이지만 오히려 그 ‘금수저’의 운명이 그에게 커다란 저주를 드리웁니다. 근친 결혼이 가져온 유전 질환으로 취약한 골격, 난장이에 가까운 짧은 다리, 기형적인 얼굴을 갖게 된 거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까지 겪게 되면서 다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됩니다. 프랑스 최고의 귀족 가문에서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자라난 로트렉은 이 때부터 권력층의 위선과 독선을 간파하고 사회의 아웃사이더들로 향하는 시선을 터득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가정을 떠나고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주한 로트렉은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레옹 보나, 페르낭 코르몽 등의 스승으로부터 기술적인 표현 능력과 해부학적인 세부 묘사 능력을 배웠죠. 거리의 삶에 관심을 가진 후로 어머니와 살던 고급 주택을 벗어나 유흥과 향락이 있는 몽마르트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 중에서도 캬바레 ‘물랭 루즈(Moulin Rouge)’는 그의 단골집이었습니다. 물랭 루즈는 밤마다 댄서들이 관능적인 춤을 선보이고 술과 웃음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로트렉은 매일 이곳을 드나들며 댄서들과 친분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곳의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하면서 몽마르트의 유명인사로 거듭납니다. 이 때 그가 제작한 포스터는 물랭 루즈의 출연자들을 스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현대 광고 미술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르 리르'나 '라 르뷔 블랑슈' 등 잡지의 표지를 그리기도 하면서 그는 대중적인 예술의 최전선에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37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9점, 드로잉 4784점이라는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긴 툴루즈 로트렉에게 있어 예술은 가장 좋은 벗이자,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STEP 2 : 툴루즈 로트렉 전에서 꼭 봐야할 작품 5선
 

ⓒ Herakleidon Museum, Athens Greece

① 아리스티드 브뤼앙 포스터
 
챙이 넓은 펠트 모자와 망토, 빨간 목도리로 대변되는 시그니처 스타일로  유명했던 아리스티드 브뤼앙. 그는 유명한 샹송가수이자 툴루즈 로트렉의 좋은 친구로서 포스터를 의뢰하는 단골 손님이기도 했지요. 1892년 로트렉이 제작한 공연 포스터로 대성공을 거둔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1893년 몽마르트에 ‘미를리통’이란 이름의 카바레를 오픈할 때 로트렉에게 다시 한 번 포스터를 부탁합니다. 포스터에서 로트렉은 강렬한 검정색과 붉은 색 그리고 올리브색 선으로 그의 모습을 단순화했으며 브뤼앙의 전매특허인 검은 망또와 붉은색 스카프로 그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켰습니다.
 
ⓒ Herakleidon Museum, Athens Greece

에글랑틴 무용단
 
앞 세대의 화가들에게 모델은 기품 있고 정숙한 여인들이었다면, 로트렉에게는 밤 무대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여인들이 가장 중요한 모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인 아브릴은 툴루즈 로트렉이 즐겨 그린 모델이자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킨 진정한 벗이었습니다. 몸이 유연했던 제인 아브릴은 한 발을 지켜들고 앞뒤로 흔드는 게 장기였다고 합니다. 오죽 강렬하게 몸을 흔들었으면 그녀에게 ‘다이너마이트’란 별명이 붙었을까요. 그녀가 속한 에글랑틴 무용단을 알리는 포스터입니다. 위에 묘사된 네 명의 댄서 중 누가 제인 아브릴인지 감이 오나요? 발 사위가 심상치 않은 맨 왼쪽 인물입니다!
 
54호 선실의 여행객
 

로트렉이 첫 눈에 반해버린 여인. 툴루즈 로트렉은 1895년 르아브르에서 보르도로 향하던 증기유람선 '르 실리호'에서 먼 바다를 응시하던 한 여인을 보고 첫 눈에 반합니다. 로트렉은 그녀를 스케치 하다가 목적지인 보르도를 지나쳐버린 채 포르투갈 리스본에 가서야 하선할 수 있었습니다. 로트렉이 배 위에서 스케치한 그녀의 모습은, 1895년과 1896년 겨울 두 차례 ‘살롱 데 상트(Salon des Cent)’라는 전시회의 홍보 포스터에도 등장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배 위에서 스케치한 모습이 전시됩니다.
 
ⓒ Herakleidon Museum, Athens Greece

경마

귀족 가문에서 자라난 로트렉은 말에 대한 열정이 컸습니다. 로트렉의 아버지는 숙련된 기수였으며 말을 타고 독수리와 함께 사냥을 다니길 좋아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트렉은 그런 취미를 함께 즐기기에 적합한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1901년 사망 전인 1899년 봄 알코올 중독과 과대망상증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로트렉은 기억에 의존해 다양한 말 드로잉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생의 마지막에서 그가 그린 말에게서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 Herakleidon Museum, Athens Greece

물랭루즈 라굴뤼
 

1891년 여름, 파리 시내에 이 포스터가 붙었을 때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이 아름다운 포스터를 뜯어가려 하는 바람에 난리였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포스터 한 가운데서 캉캉춤을 추고 있는 건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라 굴뤼(La Goulue)이고 그 앞에 회갈색으로 표시된 남성은 ‘뼈 없는 댄서’로 불리던 발랭탱-르 데 조세였거든요. ‘물랭 루즈’라는 글자를 세 번 반복해 쓰고 후면의 인물은 그림자로 표시함으로써 전면의 인물을 강조하는 기법은 그래픽 아트에 있어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당대 발전한 석판화 기술로 오늘날 현대 상품 광고의 기술을 앞서서 성취한 것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우철 도슨트 (본인 제공)

‘툴루즈 로트렉전’ 전시장에 갔을 때 툴루즈 로트렉의 삶을 드라마나 영화처럼 재미있게 풀어 이야기 해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우철 도슨트입니다. 그에게 이번 전시의 매력과 관람팁 등을 물어보았습니다.
 
STEP 3. 정우철 도슨트 “로트렉은 19금 화가? 누구보다 솔직했던 인물!”

Q 툴루즈 로트렉 전만의 매력이 있다면요?
 
저 개인적으론 제일 매력있다고 여긴 게 전시장 인테리어였어요. 딱 전시장에 입장했을 때 내 눈 앞에 물랭 루즈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고 나 자신이 19세기 프랑스 파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그 시대 안에서 활동했던 로트렉을 만나보자고 말을 거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매력포인트가 물랭 루즈 구조물 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로트렉 사진이 관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생전에는 키가 작아서 사람들을 올려다봐야 했지만 이제 시대가 변하고 거장이 되면서 이제 내려다보는 거예요. 이런 것도 생각하고 전시를 보면 훨씬 재밌어요.
 
Q 이 전시 기획자분께서 완성도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요?
 
전시 작품이 아무래도 드로잉이 많다보니 기획자님께서도 다양한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베이’ 같은 외국 사이트를 다 뒤져서 국내에 없는 로트렉 관련 자료를 다 번역하고 전시 내용에 넣었어요. 그 때 구입한 원서들도 전시장 안에 있어요.
 
Q 작가 인생을 정리하다보니 ‘19금’ 내용이 많아서 도슨트 때 수위 조절이 힘들었다고요?
 
약간 애매한 면이 있었죠. 사실 다른 화가보다 솔직했던 화가거든요. 단지 다른 화가들은 그런 걸 숨겼을 뿐이죠. 그 시대 화가들 보면 문란했던 사람도 많아요. 로트렉은 숨긴 게 없었고 오히려 솔직했던 거죠. 다만 어린이 관객도 많아서 이런 내용은 뺐어요.
 
Q 전시를 즐기는 팁을 주신다면요?
 
물론 도슨트를 듣는 게 제일 좋아요.(웃음) 혹시 도슨트를 못 듣는다 가능한 분들은 전시장 가장 마지막 방에서 상영 중인 로트렉 인생을 담은 영상을 보고  작품을 보세요. 로트렉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러면 작품도 보이죠.
 
Q 어떻게 도슨트가 됐나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졸업 후엔 영상 회사에 들어갔어요. 회사에서 퇴사를 한 후에 우연히 전시장 스탭을 하게 됐어요. 일정 시간만 되면 사람들에게 전시를 설명해주는 도슨트의 모습을 보고 흥미롭고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이야기 걸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에 시나리오 쓰는 법도 배웠으니 도슨트 활동도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화가셨던 영향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다음 전시에 다시 스탭으로 지원하게 됐는데 우연히 제가 면접 보던 날 도슨트에 결원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주최측으로부터 도슨트를 해볼 수 있는지 제안을 받게 됐고 당연히 거기 응했죠. 지금까지 즐겁게 도슨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툴루즈 로트렉' 전 티켓예매
 
글: 주혜진 기자(kiwi@interpark.com)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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