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반쪽 얼굴을 찾아서”…‘캐릭터 프리’ 시도한 ‘데미안’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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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갈수록 사회와 집단이 원하는 하나의 얼굴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일생을 살아가며 한 번 정도는 자신이 원하는 얼굴로 크게 숨을 쉬고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뮤지컬 신작 ‘데미안’의 대본을 쓴 오세혁 작가의 말이다. 헤르만 헤세가 남긴 유명 고전의 뮤지컬화, 고정 배역을 없앤 ‘캐릭터 프리’ 캐스팅 등으로 이목을 끈 이 공연이 지난 7일 막을 올렸다. 11일 진행된 ‘데미안’ 프레스콜에서는 작품의 주요 장면과 함께 제작진 및 출연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날 프레스콜에서는 서곡 ‘레퀴엠’을 시작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전쟁터에서 데미안을 떠올리는 싱클레어의 넘버 ‘폐허’를 비롯해 ‘두 개의 세계’, ‘카인’, ‘아브락사스’ 등의 노래와 해당 장면이 펼쳐졌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친구 데미안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극에는 데미안과 싱클레어 역을 맡은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하며, 데미안 역 배우는 싱클레어를 괴롭히는 동급생 크로머와 싱클레어의 스승 피스토리우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도 함께 연기한다.
 
뮤지컬 ‘데미안’은 오세혁 작가가 다미로 작곡가와 함께 3년 전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지점에서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발견했다는 오세혁 작가는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얼굴’을 꼽았다.

이 극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전쟁터 장면에서 시작해 과거로 되돌아간다. 전쟁터에 혼자 남은 싱클레어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데미안의 얼굴을 떠올리고, 뒤이어 펼쳐지는 과거의 이야기는 ‘고대의 돌’처럼 단단한 얼굴을 가진 데미안의 발자취를 따라 싱클레어 역시 자신만의 세계를 찾고 성장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벗고 자신만의 얼굴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오 작가의 생각이다.

배우들이 성별 및 배역의 구분 없이 두 인물을 번갈아 연기하는 것도 같은 뜻에서 비롯됐다. “배우들이 모든 인물을 연기해봐야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오 작가는 캐스팅에 대해 “많은 배우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배우들을 오랫동안 생각했고, 직접 찾아가 (출연을)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뮤지컬 ‘쓰릴미’, ‘아랑가’, ‘어린 왕자’등의 이대웅이 맡았다. 이대웅 연출은 이번 공연의 캐스팅을 ‘젠더 프리’를 넘어선 ‘캐스팅 프리’라 명명하며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키워드로 심리학자 칼 융을 언급했다.

이 연출은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쓸 때 칼 융을 만났다. 아마 한 사람의 내면에 남성적 자아인 아니무스와 여성적 자아인 아니마가 모두 존재한다는 융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면의 여러 자아를 차례로 통합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기 위해 배우들이 모든 인물을 두루 연기하게 했다는 것.

또한 이 연출은 무대와 관련해 “작품의 부제가 '폐허 속에 빛나는 별'이라서 무대를 구상할 때 ‘폐허’라는 단어에서 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조사하다가 철골 구조의 건물 안에 여러 잔해가 널린 건물의 사진을 봤는데, 그 사진이 무대의 모티브가 됐다”고 전했다.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 등 출연진도 작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극중 등장하는 두 인물을 모두 연기하는 것은 배우들에게도 이례적인 경험이다. 그만큼 연습 과정이 어려웠지만, 더 넓은 시야로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배우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유승현은 “이 작품을 하면서 같은 논제를 두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데미안을 연기할 때와 싱클레어를 연기할 때 각기 느껴지는 것들이 다르다”고 전했고, 김바다 역시 “좀더 다방면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싱클레어가 나와 비슷한 인물인 것 같아 더 애정이 갔는데, 연습을 할수록 데미안이 가진 모습도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됐다”는 전성민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끄집어 내고 나에 대해 많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각별한 소감을 밝혔다.

정인지는 “사실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이고 데미안이 싱클레어이기도 한 성장과정을 우리 모두가 겪지 않나. 그래서 두 배역을 모두 연기할 때 작품이 더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고, 연습 때도 그런 부분을 염두하고 상대를 바라보려 했다”고 말했고, 김현진은 “싱클레어를 연기할 때는 그가 이 드라마 속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보여드리는 데 집중한다면, 데미안을 연기할 할 때는 그가 싱클레어라는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이 드라마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최근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김현진은 “가벼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이 비치된 상태에서 연습을 진행했고, 극장에서도 소독 및 열화상 카메라 설치 등 감염 방지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상황이 빨리 안정화되어 모든 국민들이 편안하게 문화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뮤지컬 ‘데미안’은 4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모티브히어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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