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서 달라진 것? 이제는 조바심 없이 즐겁게 연기하고 싶어요” ‘차미’ 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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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성원이 뮤지컬 ‘차미’에 출연 중이다. 그간 ‘사춘기 콘서트’(2019), 음악극 ‘태일’(2018) 등으로 간간이 무대에 섰지만, 장기 공연은 2014년 뮤지컬 ‘사춘기’ 이후 5년 만이다. 5년간 그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8’에서 주인공 덕선의 동생 노을이로 분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고, 드라마 ‘마녀보감’ 촬영 중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하차해 투병하며 휴지기를 갖기도 했다. 그러니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Trace U’, ‘사춘기’, 연극 ‘썸걸즈’ 등 예전 그가 섰던 무대를 기억하는 많은 관객들에게는 그의 이번 복귀가 각별히 반가울 수밖에 없다.

B급 유머를 장착한 뮤지컬 ‘차미’에서 최성원은 주인공 차미의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청년 김고대로 분한다. 그는 매끄러운 노래와 연기, 적시에 천연스레 뱉어내는 코믹한 애드립으로 극에 감칠맛을 더하며 그동안 쌓은 연륜을 톡톡히 빛내고 있었다. 병에서 회복될 즈음, 가장 처음으로 한 생각이 ‘연기하고 싶다’였다는 천생 배우 최성원. 그를 만나 공연과 지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Q 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 반가웠습니다. 요즘 공연하시는 소감이 어떤가요.
음악극 ‘태일’을 짧게 하긴 했는데, 이렇게 장기 공연을 하는 건 5년 만이더라고요. 오랜만에 하는 거니까 당연히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들도 있고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작품이 워낙 밝고 유쾌한 힐링극인데다 다른 배우들의 에너지도 좋아서 많은 힐링을 받고 있어요. 사고의 전환도 되고요. 공연을 한 회 한 회 할 때마다 하길 정말 잘 했다 싶어요.

Q 최성원 씨가 생각하는 김고대는 어떤 인물인가요. 평면적인 캐릭터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고요.
김고대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죠. 아날로그 감성에 갇혀 있고, 고전 소설을 좋아하고, SNS에도 아예 관심이 없고요. 차미호가 강렬히 인싸를 열망하는 아싸라면, 김고대는 오히려 혼자임을 즐기는 자발적 아웃사이더에요. 편의점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걸 보면 똘똘하고 현실적인 수완도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단지 4차원적인 똘끼가 좀 있는.
 
▲ 뮤지컬 ‘차미’ 공연
 
근데 이 인물을 표현하는 건 참 어려웠어요. 진혁이나 차미가 에너제틱한 호흡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면서 웃음을 주는 캐릭터라면, 고대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호흡으로 관객들에게 쉴 타임을 주고, 또 미호의 변화를 돕고 이끌어줘야 해요. 근데 그런 인물이 시덥잖게 가벼운 행동을 하면 진실성이나 신뢰감이 사라질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병맛 코미디라는 극의 컨셉에 맞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재미를 줘야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에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선을 넘으면 오버가 되고, 선을 넘지 않으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인물이니까.

그래서 제가 찾은 해결책은 정말 맛있는 가니시가 되자는 거였어요. 피자를 먹을 때 맛있게 곁들여 먹는 피클처럼. 해시태그(#)를 ‘우물 정’으로 읽는 등 이미 대본에 있는 것들을 재미있게 잘 살리면서 듬직한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자고 정리를 했는데 쉽지는 않아요.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사랑해주고 재연 삼연까지 가려면 고대도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돼야 하니까, 지금도 그 방법을 계속 찾아가고 있어요.
 
Q 연습이나 공연 때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한 번은 공연 중에 (서)경수가 빨간 펜을 떨어뜨렸는데 그게 TV 뒤로 쏙 들어가버린 거에요. 근데 그 펜으로 진혁이 책에 이름을 써야 되잖아요. 순간 ‘이거 어떻게 풀어야 되지?’ 하는데 경수가 (새끼 손가락을 입으로 물면서) “혈서다! 여기 이 책 안에 빨간 펜으로, 아니 빨간 피로 이름을 쓰면 저주가 걸리는 거지~!” 하는 거에요. 관객 분들이 다 뒤집어졌죠. 진짜 너무 웃겼어요.

그리고 경수가 땀이 많은 친구라, 저희가 공연을 좀 추울 때 시작했잖아요. 처음엔 (티셔츠가) V넥처럼 땀으로 젖다가 이제 점점 그 영역이 넓어져서 투 톤이 되고 있어요(웃음). 최근엔 면접관 씬에서 펭수 흉내를 냈는데, 저랑 같이 붙는 장면이 아니어서 망정이지 저랑 붙었으면 웃음을 못 참았을 것 같아요.

(문)성일이랑은 첫 공연을 늦게 했어요. 개막하고 3주쯤 지나서 같이 공연을 했는데, 성일이가 워낙 쫑알쫑알 말이 많은 스타일이라 공연 중에도 말이 많아진 거에요. 고대가 해시태그를 우물 정으로 읽는 장면에서 성일이는 “샵이다 이놈아~”하면서 갑자기 샵(그룹) 노래를 불러요(웃음). 성일이랑은 예전에 ‘블랙메리포핀스’도 같이 하고 편한 사이라, 나오는 대로 다 주고받으면서 했던 그 회차가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강)영석이는 ‘차미’의 초기 개발단계부터 참여한 ‘오진혁 장인’이다 보니 그 친구의 호흡이 작품에 많이 들어가 있어요. 자기가 뱉어 놓고 모른 척 하는 뻔뻔스러움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차미와 미호 역 배우들도 각기 다 개성이 다르고 아이디어가 많아서 너무 재미있어요. 공연 자체가 워낙 재미있는 극이라 오늘은 어디까지 해볼까? 하는 재미가 있어요.

(고대 역) 순종이랑 지환이도 대단해요. 제가 지금 고대와 나이 차가 딱 10년 나는데, 그나마 그동안 일상과 인생에서 경험한 게 있어서 이렇게 풀어낼 수 있지, 순종이나 지환이 나이였다면 그렇게 잘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Q 공연 중 나오는 랩도 잘 하시던데, 랩 연습은 어땠나요?
제 랩을 듣고 좋다고 하시는 분들은 고인 물이더라고요(웃음). 20대 중후반 친구들은 올드하다는 평을 많이 내리고요. 지환이 공연을 보러 가시면 ‘이게 요즘 신세대 랩이구나’ 하실 거에요. 최근 제 공연을 보러 온 20대 친구가 “일부러 캐릭터 때문에 랩을 (고지식하게) 하는 거죠?” 하는 거에요. 최대한 세련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원래 랩을 좀 좋아하기도 했고, 처음 공연에 랩이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여유롭게 ‘랩 디자인을 저희가 좀 해도 되죠?’ 했는데 막상 악보를 받고는 멘붕에 빠져서 4~5일 정도는 아무 것도 못 했어요. 그래도 결국엔 다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관객 분들이 그 장면을 많이 좋아해 주세요. 사실 우리보다 진혁이들의 분량이 더 많아서 힘들 거에요. 경수는 첫 마디 들어가기도 전에 말도 안되는 (애드립을) 넣으면서 속사포처럼 랩을 하는데 너무 웃겨요.
 
Q ‘차미’는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극중 특히 공감됐던 부분을 꼽는다면요.
우리 공연이 병맛 코드의 코믹극이긴 하지만, 결국 안에 담고 있는 단단한 메시지는 나답게 사는건 무엇인지에 대한 거에요. 완벽한 해답은 제시해줄 수 없어도 참고서 역할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바로 ‘스크래치’라는 넘버의 가사에 나와요. “부딪혀 상처 내 긁어내 봐/안 하던 짓들을 해 봐/넌 놀라고 두렵고 실망하겠지만/그 틈으로 너의 색이 고개를 내밀 거야”라는.

저도 늘 그런 부분이 힘들고 고민됐던 것 같아요. 난 왜 이렇게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지? 왜 그냥 저질러보지 못하지? 싶을 때가 많았어요. 한 번은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자, 그림을 그려보자, 하고 펜과 연습장을 샀는데, 30분 동안 선 하나도 못 그리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새로운 걸 조금씩 해보면서 배운 것들이 많아요. 켈리그라피도 해보고, 도덕경도 읽어 보고 하다가 작년 가을에는 종교를 가져보고 싶어서 명동성당에 가봤는데, 그 공간에서 오는 어떤 성스러움이 있더라고요. 마침 (임)철수도 비슷한 시기에 성당을 찾아서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명동성당 가서 미사도 드리고 밥도 먹고 청계천까지 산책도 하면서 힐링을 했어요. 전에는 제가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굳이 이런 인터뷰에서 자기 신앙에 대해 얘기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제가 겪어보니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또 늘어난 거죠. “부딪혀 상처내 긁어내 봐”라는 말이 참 명언 같아요.

‘스크래치’의 가사랑은 조금 다른 결이지만, 요즘 또 조금 달라진 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자는 마음이 드는 거에요. 굳이 억지로 새로운 걸 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며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Q 조심스럽지만 지난 일들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의 노을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급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드라마(마녀도감)에서 하차하고 활동을 중단하셨죠. 힘든 순간이 많았을 텐데, 어떤 생각들을 하셨나요.
성인 세 명 중에 한 사람이 암 환자인 거 아세요? 의외로 흔한 얘기인데 직접 겪기 전엔 나와 상관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죠. 가장 크게 느낀 건 나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당연히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언젠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으면서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굉장히 무서웠어요. 만약 다시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런 생각도 지금은 많이 흐릿해졌어요. 어느 정도 극복하고 생존하고 나니까…사람이 금방 또 무뎌지잖아요. 요즘은 오히려 그 때 가졌던 감사함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더 괴로워요. 별 것 아닌 일로 예민해지고 불평불만을 하다가 문득 그 때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던 게, 살아서 연기라는 것만 다시 할 수 있어도 전혀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게 불과 4년 전인데 내가 지금 또 이러고 있네? 건방져 졌구나, 제자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또 스트레스를 받는 거에요(웃음). 치료 과정도 괴로웠지만 살아 남으니 또 이런 괴로움이 있더라고요. 신앙의 힘으로 잘 다스려 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Q 삶이 흘러가는 대로 맡겨보자, 라는 마음을 가진 것도 그런 과정 속에서 갖게 된 변화인가요.
네. 계속해서 내가 깎여 나가고 내려놓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보자, (삶이) 이끌어주는 대로 가보자는 생각이 든 거죠.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는 본능적인 충동이 있으면 이끌리는 대로 해보고, 부딪히고 싶으면 부딪혀보자. 어차피 타고난 기질이 있어서 쉽게 변하지는 않아요. 계획하고 걱정하고, 무언가를 하려면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시도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도 예전에는 계획이 틀어지면 ‘왜 이렇게 됐지?’하고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아, 생각대로 안 되는 순간이 또 찾아왔네. 그럼 이걸 어떻게 슬기롭게 넘겨볼까’ 하는 여유가 조금은 생겨난 것 같아요.

Q 일과 연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을 것 같아요. 최성원 씨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부터 가장 처음 든 생각이 ‘연기하고 싶다’였어요. 난 연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 하겠구나, 해야겠구나 하면서 꿈을 더 공고히 다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는 늘 더 잘하고 싶고, 탐구하고 싶고, 갈증을 느끼는 대상이죠. 다른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Q 연기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평소에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나 미드를 추천 받아도 하루에 3시간 이상은 못 봐요. 운동을 좋아하지만, 주짓수나 복싱 같은 것도 몇 달 몰입해서 하다가 지나면 좀 시들해지더라고요. 하다못해 미용실에 파마를 하러 가도 오래 걸리는 건 지루해서 못 해요.

근데 제가 태어나서 마음 먹고 가장 오래 해온 게 연기에요. 스무 살 때 연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그때의 마음이 16년째 지속되고 있는 거에요. 왜 난 이제껏 이걸 한번도 지겨워 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저도 처음 생각해보는데 잘 모르겠네요. 연기도 한 장르만 오래 하면 좀 지루해 지기는 해요. 그래서 공연을 하다가 매체에 도전했고, 드라마를 하다 보니 다시 공연이 하고 싶어 졌고요. 근데 공연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어쨌든 다 연기잖아요. 연기를 하면서 ‘아, 이래서 힘들구나, 이래서 선배들이 꿈을 접었구나’하고 피부로 느낀 적은 있지만, 그래서 나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근데 아프고 나서 좀 달라진 건 있어요. 예전엔 일 욕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일을 좀 쉬게 되면 ‘왜 다음 일이 없지? 뒤쳐지는 건 아닐까? 잉여 인간이 된 게 아닐까? 내가 못나고 능력이 없나 보다’하면서 나를 갉아먹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얘기하며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들이 마음의 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게 나를 아프게 만든 것 같아요.

요즘은 안 그래요. 또 아픈 것보단 잉여 인간이 되는 게 훨씬 낫잖아요(웃음). 좀 쉬어도 되고, 놀아도 괜찮고, 조바심을 내고 싶지 않아요. 적절히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획이 틀어져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건 그것대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꼭 끝까지 연기를 할 거야! 이건 내 필생의 일이야!’ 하고 힘주어 생각하면 지칠 수 있으니 좀 여유를 가져야 오래오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Q 앞으로 또 ‘스크래치’ 내고 싶으신 건 뭐가 있나요?
일단 가장 큰 건 여행이에요. 전 원래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서울에도 돼지국밥집이 있고 밀면집이 있는데 왜 꼭 부산에 가야 되지? 바다 보러 가도 15분쯤 있으면 들어오고 싶지 않나? 이런 스타일이었어요(웃음). 여권에 출국심사 도장이 딱 두 개 찍혀 있는데, 그것도 다 일로 나간 거였어요. 피곤해지는게 싫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좀 피곤해도 귀찮아도 여행지에서만 느끼고 충전할 수 있는 감성이 따로 있더라고요.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좀 잠잠해지면 제주도든 어디든 한달 살기도 해보고 싶고, 해외도 나가보고 싶어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페이지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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