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한 구절만 100번 읽어...치열하게 음악 만들죠" 첫 콘서트 여는 ‘귀환’ 작곡가 박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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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사춘기’(2008)로 데뷔, ‘마마 돈 크라이’, ‘Trace U’, ‘최후진술’, ‘해적’을 비롯해 ‘신흥무관학교’, ‘귀환’ 등의 음악을 만들어온 박정아 작곡가가 첫 콘서트를 연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탄생시킨 소극장 뮤지컬부터 웅장하고 압도적인 사운드로 십 수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대극장 뮤지컬까지, 그녀의 음악은 언제나 극의 고유한 서사·색채와 꼭 맞물리며 그 매력을 십분 살려주는 것이었다. 관객들을 사로잡은 그 많은 음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지난 8일 그녀의 연습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Q 한 작품의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우선 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대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요. 대본 정독과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대본과 오선 노트를 두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곡을 쓰기 시작하는데, 바로 멜로디가 떠오르는 가사들이 있어요. 그런 넘버는 일단 쭉 쓰는 거죠.

그리고 드라마 구조상 너무 복잡해서 많은 계획과 테크닉이 필요하겠다 싶은 곡들은 따로 분류를 해요. 대본에서 요구되는 어떤 양식이 있잖아요. 그 양식에 맞출 수 있는 제 나름의 음악 계획을 쭉 짜면서 작업을 하죠. 대극장이 됐든 소극장이 됐든 오랜 시간 공연을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에, 관객이 지루함을 느끼는 부분이 없도록 멜로디적인 계산과 화성적인 계산, 구조적인 계산을 세우면서 곡을 써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수학적인 작업이죠.

Q 작곡할 때 많이 우신다고 들었어요.
좋게 얘기하면 감정이 많이 풍부한 거죠(웃음). 제가 작업했던 작품들이 다 슬퍼요. ‘귀환’ 이라든지 ‘신흥무관학교’라든지, 예전에 했던 ‘사춘기’라든지 슬프지 않은 작품이 없거든요. ‘사춘기’에서는 캐릭터 세 명이 자살하기도 하고, 제가 이제까지 했던 작품 중에 아무도 죽지 않은 작품이 없었어요. 일단 대본들이 다 너무 슬퍼요.
 
▲ ‘귀환’(2019)

곡을 쓸 때는 안 울어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곡을 쓸 때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되고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슬플 겨를이 없어요. 그 때는 수학하듯이 작업을 해요. 대부분 하루에 한 곡을 쓰기로 계획을 세워서 그걸 달성하고 나면 혼자 음악을 들어봐요. 그 때 장면 상상을 하면서 (감정이) 많이 북받쳐 올라와요. 인터뷰에서 제가 운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했는데(웃음) 제가 원래 눈물이 많아요.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울고. 성격 탓도 있는데, 일단 대본이 너무 슬퍼요.

Q 작곡하실 때 각 배우들의 목소리 특징도 고려하신다고요.
작품의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어떤 느낌으로 살려줄지, 제 노래를 어떻게 불러줄지가 너무 중요하거든요. 리듬에 강점이 있는 배우들이 있고 멜로디에 강점이 있는 배우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도 고려하고요.

예를 들어 ‘Trace U’의 경우엔 초연 때 우빈 역이 최재웅 배우였어요. 그래서 우빈의 캐릭터를 최재웅 배우와 비슷하게 그려보고 (최재웅의) 보이스 특징을 생각하며 작업을 했죠. ‘귀환’의 ‘태도’같은 넘버는 해성이 부르는 곡인데, 해성이 굉장히 강한 캐릭터에요. 여자 배우의 진성을 최대한 잘 써야 되는 곡이고, 파워풀한 음정을 쓸 수 있어야 하는 넘버여서 그 때는 (이)지숙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작업을 했고요.
 
▲ ‘Trace U’(2013)

Q ‘마마 돈 크라이’, ‘해적’, ‘알렉산더’ 등의 2인극부터 ‘신흥무관학교’, ‘귀환’ 등의 대극장 뮤지컬까지 두루 작업하셨어요. 소극장 2인극의 음악을 만들 때와 대극장 공연의 음악을 만들 때 접근방식이 어떻게 다른가요.
대극장이든 소극장이든 첫 번째 조건은 멜로디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구조적인 부분도 비슷해요. 다만 대극장 공연의 경우엔 하나의 테마를 갖고 한 방향으로 크게 크게 갈 수 있게 작업을 해요. 예를 들어 ‘신흥무관학교’는 작품 특성상 ‘죽어도 죽지 않는다’라는 가사와 멜로디를 어필해야 하기 때문에, 그 메인 테마에 맞춰서 나머지 작업을 하게 되죠.

반면 소극장 2인극의 경우엔 캐릭터의 느낌을 살려주는 디테일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오밀조밀한 재미를 많이 넣는다고 할까요, 굉장히 복합적으로 디테일을 생각하며 작업을 하죠.

Q 이제까지 만드신 음악 중 특히 작업이 어려웠던 작품과 넘버를 꼽는다면요.
‘마마 돈 크라이’의 ‘달콤한 꿈’ 같은 넘버는 5분만에 쓰기도 했는데, ‘최후진술’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나 ‘해적’의 ‘항해일지’같은 곡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일단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싶은 가사가 있으면 그 가사를 10장 정도 프린트해서 제 눈이 닿는 곳에는 다 악보를 가져다 놔요. 언제 멜로디가 떠오를지 모르거든요.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고 있어요.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대본을 보기도 하고, 며칠을 내가 그 캐릭터가 된 것처럼 24시간 집요하게 생각해요. 3일 그렇게 하고 나면 몸살이 나죠. ‘그래도 지구는 돈다’나 ‘항해일지도’ 3~4일은 걸렸던 것 같아요.
 
▲ ‘마마 돈 크라이’(2015)

‘항해일지’는 솔로 넘버인데,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대장정으로 펼치는 곡이에요. 음악적으로는 굉장히 넓게 펼쳐야 하는데 주인공은 열일곱 살이다 보니 고민되는 지점이 많아 오래 걸려 썼어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최후진술’의 넘버 4~5곡이 리프라이즈 된 곡이라서, 그걸 어떻게 잘 엮어내면서도 기억에 남는 멜로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오래 걸렸고요. ‘신흥무관학교’의 ‘물고기’라는 넘버도 어려웠어요. ‘500년간 흐르던 강물은’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드라마적으로 엄청난 상황을 그린 가사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그 구절만 한 100번 읽었던 것 같아요.

Q 작곡가님의 창작의 원천이랄까요, 그 많은 멜로디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 감상이 일종의 취미였기 때문에 그 때 기본적으로 가요, 팝, 록, 재즈까지 다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클래식 전공이라 작곡을 시작하면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고, 국악에도 관심이 있어서 국악 작업도 했고요. 많은 종류의 음악을 들었던 게 지금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뮤지컬 어법이 있지만, 음악은 감각이고 시대이기 때문에 그 어법 속에 지금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즐겨 듣는 음악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싫든 좋든 (음원)차트에 있는 음악들도 무조건 들어요. 일종의 직업병이죠.
 
Q 개인적으로 어떤 소재나 이야기에 끌리시나요.
딱히 그런 게 없어요. 저는 워낙 호기심도 많고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기 때문에, 작가들이 던져주는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거기 훅 빨려 들어가거든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기 보다는 누군가가 던져 주는 이야기와 가사에 음악을 입혀서 그 장면과 감정을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요. 그게 저한테는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방식 같아요.

Q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어렵겠지만, 혼자 곡을 쓸 때가 제일 어려워요. 이 곡이 좋은지 나쁜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과연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혼자서는 판단할 수가 없잖아요. 오직 대본에만 의지해서 온갖 상상을 하며 작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깜깜한 터널을 혼자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가 연습실에서 처음 배우들이 피아노 연주에 맞춰서 제 노래를 불러줄 때가 가장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도 좋지만, 제가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 노래에 담아내고자 했던 정서나 에너지를 배우들이 처음 구현해줄 때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것 같아요.
 
Q 한창 작업할 때는 24시간 작곡을 생각한다고 하셨잖아요. 삶의 다른 영역과는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시나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때는 1시간 단위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해서 처리하기도 해요. 사실은 주변 분들께 많이 혼나죠.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대본을 계속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는 경우도 많고요.

작업에 때와 장소를 가릴 수가 없기 때문에, 어디서든 제일 빨리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돼요. 전에는 대학로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 걸리는 곳에 살았는데, 지하철에 앉아 대본을 꺼내는 순간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려요. 거기서 작업을 하는 거죠. 내리는 역을 지나치는 게 문제지만(웃음). 우아하게 작업실에서 영감을 받으며 곡을 쓴다고 대답하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뮤지컬 작업은 너무 치열해요. 밸런스를 맞춘다고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실패인 부분이 많겠죠. 결론은 굉장히 힘들다는 거에요(웃음).
 
Q 이번 콘서트의 기획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콘서트에 참여하는 배우들과 음악팀, 스텝 분들이 다들 저랑 굉장히 오랫동안 작업한 분들이에요. 그 분들의 부추김과 실행력 덕분에 시작하게 됐어요(웃음). 제가 지금까지 뮤지컬을 열 작품 정도 했고 데뷔 한지도 10년이 지나다 보니 개인적으로 이제까지의 작업을 한 번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앞으로는 또 어떤 음악 작업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됐고요. 근데 너무 큰 일이라 엄두가 안 났는데,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 주신 분들이 계셔서 (콘서트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Q 어떤 공연이 될까요. 
콘서트인 만큼 음악적으로 듣는 재미를 많이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뮤지컬 넘버를 공연에서 듣던 버전으로 듣길 원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재미를 드려야 할지가 고민되더라고요. 원래 하던 배우가 부르는 게 좋을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조합의 배우들이 부르는 게 좋을지도 고민되고요. 결론이 안 나서, 반반씩 섞어서 시도하려고 해요.

그리고 일단은 곡 수가 굉장히 많아요. 한 회당 25곡이 넘어요. 최대한 다양한 곡을 넣으려고 하다 보니 곡 선정이 가장 어려웠어요. 총 4회차 공연을 하는데, 동일한 구성도 있지만 회차마다 다른 부분도 있어요. 배우들이 새로 곡을 익히느라 고생을 하고 있죠. 밴드는 거의 40곡 넘는 넘버를 소화해야 돼요(웃음).
 

▲ 유튜브 채널 '박정아's PREVIEW


Q 앞으로 해보고 싶으신 작업에는 어떤 게 있나요.  
이번에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채널(박정아's PREVIEW)을 개설했어요. 요즘 시기적인 부분(코로나)도 있지만, 작곡가로서 관객들과 음악적인 소통을 좀 더 하고 싶었거든요.
 

뮤지컬은 사실 최종적으로 무대에서 배우들에 의해 보여지지만, 그 뒤에서 음악팀이 하는 편곡 등의 작업도 뮤지컬 작업만의 특징이거든요. 그런 부분도 보여드리고 싶고, 새로 만드는 작품의 개발 과정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만들어졌지만 공연되지 못하는 작품들도 있잖아요. 실황 영상도 없고 온라인으로 넘버를 들을 수도 없는 작품이요. 저도 그렇지만 관객 분들도 그런 작품을 그리워하시는 것 같아서 그런 넘버를 배우들과 녹음해서 들려드리고 싶어요. 계획은 굉장히 많은데,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조금씩 시작하고 있어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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