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튀는 무대가 될 것” ‘라스트 세션’ 신구·남명렬·이석준·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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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노장 신구를 선두로 배우 남명렬, 이석준, 이상윤이 한 작품에서 만난다. 내달 10일 국내 초연을 앞둔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다. 단 두 명의 배우가 이끄는 이 연극은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프로이트,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이자 영문학자였던 C.S. 루이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신과 인간,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그린다.

프로이트 역 신구, 남명렬과 루이스 역 이석준, 이상윤은 공교롭게도 각자 맡은 인물처럼 무신론자, 유신론자로 나뉜다. 그래서일까, 지난 1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던 네 배우는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화두로 즉석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깊은 분석과 탐구, 그리고 저마다 삶에서 켜켜이 쌓아온 철학과 통찰이 만나 무대에서 빚어질 환상적인 호흡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
두 거장의 만남 그린 ‘라스트 세션’

신구: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지금도 두 인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있다. 책을 보고 자료를 봐도 아직 얼떨떨하다. 노력하고 있다. 단어 하나만으로도 몇 시간을 얘기할 수 있는 주제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보시는 분들께 어떻게 명쾌하게 전달할지가 고민이다.

이석준: 2시간 안에 이 두 사람의 대화와 사상을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두세 마디의 대사가 책 한 권만큼의 깊이를 갖고 있다. 우리가 가장 고민한 건 그것들을 어떻게 쉬운 말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였다. 서로 책 한권 분량에 가까운 대화를 나눴다. 직접 만날 수는 없으니 그 분들이 남긴 책과 사진 등을 보며 이해하는 수밖에 없는데, 최대한 현실에서 ‘이런 얘기를 던질 법한 인물이 아닐까’를 그려나가고 있다. 마지막까지 최대한 근접해보고 싶다.
 
▲ 신구

남명렬: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결뿐 아니라 당대 최고 지성인들이 자기 신념에 대해 자존심을 걸고 나누는 논쟁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수많은 논쟁을 하지 않나. 그것이 무대 위에서 좀 더 심도 있게 이뤄진다. 겉에서 뿐 아니라 그 배면에서 이뤄지는 심리 싸움을 읽어내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상윤: 선배님들이 ‘왜 하필 첫 연극으로 이걸 했냐’고 하시더라(웃음). 처음엔 어려웠는데,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앞과 뒤가 통하며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고, 겉에 보이는 논쟁 뒤에 숨은 심리전이 있다. 빠져든다. 알수록 재미있고 빠져드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같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프로이트와 루이스
두 학자를 무대로 소환한 까닭은

이석준: 두 인물은 실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각자의 행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둘 다 방대한 양의 편지를 남겼고, 편지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려 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회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학문을 굉장히 오랫동안 공부했던 사람이고, 그걸 토대로 프로이트에 반론하는 책을 써냈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 안에서 ‘소크라테스 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무신론자를 모아놓고 매번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하더라.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들이 만났다면 얼마나 격렬히 논쟁을 벌였을까 싶다. 그런 상상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쓴 것 같다.

그렇게 쓰인 작품을 연습해보니 일단 너무 재미있다. 지적유희라고 할까, 두 사람의 거목이 만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논쟁을 벌인다. 서로의 입장과 서로 가진 물음표를 끝없이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스포츠 경기라고 보시면 된다. 단 한번도 펀치를 날리지 않지만, 굉장히 근접한 거리에서 위협적인 칼을 들고 있다.

이상윤: 연습하면서 실제로 두 인물이 만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대체 어떻게 대화를 했을까 싶고. 만약 루이스를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이 프로이트에게 딱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 남명렬

무신론자 신구·남명렬 VS 유신론자 이석준·이상윤
“각자 신념과 맞는 캐릭터 맡아…치열한 무대 될 것”

이석준: 내 경우는 무신론이었다가 유신론으로 돌아선 계기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계기 등이 루이스와 굉장히 비슷했다. 평소 루이스의 책을 많이 읽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루이스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다가가기가 어렵더라. TMI가 너무 많은 거지. 

남명렬: 나는 석준 씨와 정반대의 경험을 갖고 있다. 과거엔 신앙이 있었지만 (종교가) 내가 가진 의문을 풀어주지 않아 프로이트처럼 무신론자가 됐다. 신앙을 갖지 않은 신구 선생님과 나의 프로이트, 반대로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두 분(이석준, 이상윤)의 루이스. 각자 자기 신념과 맞는 조합이라 아주 불꽃이 튀지 않을까.
 
이상윤: 대본을 읽으며 프로이트에 동의하는 분들이 이해가 안 되더라. 누가 봐도 루이스가 맞는데?(웃음) 단지 루이스의 말은 좀 어렵다. 서양의 사고방식이나 기독교적 세계관에 어느 정도 익숙한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좀 낯설 수도 있다.

남명렬: 루이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증명해야 하니까. 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안 된다. 그래서 루이스의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허약한 거지.
 
이상윤: 증명을 해야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일동 웃음). 신의 존재는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 신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줬다는 게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선택에 의미가 없지 않나.

이석준: 과학적이라는 말도 별로다(웃음).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거든. 나머지는 다 추론일 뿐이다.

남명렬: 지금 여러분이 쓰는 전자기기는…(일동 웃음) 거기 들어간 마이크로칩도 눈에는 안 보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우리 대본에도 나오지만, 갈릴레오 시대에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의 과학의 수준에서는 증명할 수 없었던 것들이 그 이후 많이 증명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신이 존재하는 증거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렇게 신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대사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실제로 무대에 서게 되면 정말 첨예한 생각들을 주고받게 될 것이다. 자기 신념과 다른 걸 연기하면 가짜가 되는데, 지금은 다행히 각자 가진 신념과 배역이 같다. 나중에 무대에 올라가면 자기의 생각을 관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정말 불꽃 튀는 연기를 할 것 같다.

신구: 난 신앙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낯설다. 그래서 프로이트 이 양반이 얘기하는 게 귀에 쏙쏙 들어온다.(일동 웃음) 
 
▲ 이석준

코로나, 남북관계…지금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지적 충족감 느낄 수 있는 작품”

이석준: 극중 배경이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이다. 두 인물이 신에 대해 치열하게 얘기하다가도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에 순간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념에 대해 옳다 그르다 서로 잘난 척 하며 얘기하지만, 작은 병균 하나에 온 국민의 삶이 흔들리지 않나. 이 작품도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으면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남명렬: 신에 대한 논쟁을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보면,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고 바르게 이끌어주느냐, 아니면 신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삶을 더 잘 이끌어 주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인 거다. 이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벌어질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볍고 날라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좀 더 무겁고 깊이 있는 얘기에 대한 욕구도 큰 것 같다. 대학로 역시 그렇다. 연극 한 편을 보고 뭔가를 채워나가는 충족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다. 거기 걸맞은 연극이 되지 않을까.
 
▲ 이상윤

이석준: 개인적으로도 이런 식으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올라오기를 바랐다. 그동안의 작품들이 가벼웠다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좀 적지 않았나, 싶은 거다. 펜싱 경기 같은 말싸움을 즐기러 오시면 좋겠다.

신구: 오시는 분들께 즐겁고 지적인 부분이 충족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매우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말들, 또 촌철살인 같은 대사가 곳곳에 있어서 즐겁게 보실 것 같다.

타 장르에서 느낄 수 없는 연극의 매력
“첫날부터 대본 외운 신구 모습에 충격 받아”

이석준: 첫 (대본) 리딩하는 날 나랑 상윤이는 대본을 보면서 열심히 읽는데, 누가 자꾸 나를 보는 것 같더라. 신구 선생님이 대본을 다 외우시고 날 보면서 연기를 하고 계시더라. 충격 먹어서 그날부터 잠이 안 왔다(웃음).

남명렬: 선생님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우린 기가 죽는다(웃음).

신구: 나도 대본 보고 있었다(웃음). 그건 별 거 아니다. 이제 어지간히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도 쇠퇴한 것 같고 순발력도 떨어져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이상윤: 선생님은 심지어 상대방 대사도 외우신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신구 선생님이다. 신구 선생님의 선구안을 믿었다(웃음).
 

연극의 매력은 ‘배움’ 같다. 연습 기간이 너무 궁금하고 이 기간을 가져보고 싶어서 연극을 선택했다. 방송(드라마)할 때 리딩을 하긴 하지만 서로 인사하며 점검하는 정도지, 나머지는 각자 준비하고 현장에서 맞춰보는 거다. 물론 그것도 어려운 작업이지만, 같은 걸 계속 반복했을 때 나오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것부터 시작했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한 게 많은 것 같아서 (연극을) 하게 됐다.
 

엊그제 선생님이 연극과 타 장르의 차이점에 대해 ‘관객의 반응이 바로 온다는 것’을 꼽으시더라. 아직 그것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궁금하다. 그것까지 좋다면 (연극이) 정말 훨씬 더 매력적일 것 같다.
 

이석준: (이상윤이) 진짜 빨리 습득한다. 왜 스마트한 배우라고 하는지 알겠더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텍스트의 빈 부분을 가져와서 얘기하기도 하고, 연습하는데 날마다 다른 사람이 온다. 너무 잘한다. 1년에 한 번씩 꼭 연극을 했으면 좋겠다.
 

남명렬: 무대 위에서 관객의 피드백이 있다고 해서 공연 자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근데 공연이 끝나고 내가 잘 했다고 느낄 때, 또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의 성취감은 다른 장르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거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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