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렌트’ 데뷔 때는 좀 튀는 옷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내 옷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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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개막해 공연 중인 뮤지컬 ‘렌트’는 올해 한국 초연 20주년을 맞이해 그 의미가 특별하다. 극 중 콜린 역으로 나오는 최재림에게도 ‘렌트’는 각별한 작품이다. 지금의 최재림을 있게 한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성악을 베이스로 한 단단한 발성과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최재림은 2009년 ‘렌트’의 주역을 맡으며 혜성처럼 등장해 그동안 ‘아이다’ ‘시티오브엔젤’ ‘킹키부츠’ ‘마틸다’ ‘넥스트 투 노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애드거 앨런 포’ ‘노트르 담 드 파리’ 등에서 활약했으며, 지난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최근에는 MBC 음악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 ‘방패’로 출연해 출중한 노래 실력을 선사했다. ‘렌트’ 무대 위 최재림은 한없이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많은 작품을 경험하고 성장한 뒤에 다시 찾은 데뷔작은 어떤 느낌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이었던 11년 전 무대는 운동장같이 크고 커다란 것이었다면, 이번 ‘렌트’는 따뜻한 내 방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Q 데뷔작이었던 ‘렌트’ 다시 만난 소감이 궁금해요.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옷을 먼지 털어서 입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몸에 살이 하나도 안 찌고 옷이 잘 맞아요. ‘어 나 관리 잘했네’하는 그런 기분도 느끼고요. 그와 동시에 그때 입었을 때는 옷이 좀 튀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진짜 내 옷 같아요. 콜린으로 무대에 있는데도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너무 즐기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 만큼 굉장히 편하고, 좋아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지금 와서 뭐가 달라진 걸까’. ‘뭐가 달라졌기에 이렇게 느끼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처음 배우를 시작했을 때는 스스로를 증명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되고 내 걸 따내야 되고 이런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나만 잘하기보다는 같이 잘하고 싶고,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도 가고 싶어요. 제 자신을 많이 내려놓고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느끼기에 예전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번 ‘렌트’ 연습 때 보니 이제 저도 ‘나이가 있다’ 하는 배우 축에 들어갔더라고요. 동생 배우들이 조언을 구하는 순간들도 많아졌고요. 선배로서 책임감이 많이 생기는 연습이었어요. 그래서 무대에서 서로가 더 힘이 날수 있게 끌어주려는 노력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이번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나요?
‘렌트’라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힘, 로저와 미미의 서로 지지 않은 타오르는 사랑을 해 나가는 모습. 그리고 또 콜린과 엔젤의 변함없는 사랑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어요. 그런데 작품 자체가 저에게 다가오는 무게가 달라졌어요. 25살에 처음 이 작품을 만났는데, 지금은 36살이 됐으니까요. 최재림이란 사람도 어른이 됐고요. 어른이 된 만큼 작품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 좀 다르더라고요. 데뷔 때는 그저 신나고 에너지가 폭발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 인물들의 아픔과 그걸 이겨내려는 의지가 보였어요.

한 사회 구성원으로 봤을 때 로저, 마크, 미미 등 얘네들은 참 이기적인 면이 있죠. ‘그런데 왜 얘네가 이렇게 왜 자기만 생각하는 걸까’ 따져보니 이 친구들이 살날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내일이라도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친구들이에요. 그 와중에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겨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원하는 것,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을 향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또 한 편으로는 로저랑 마크가 잘못한 것 같아요. 친구(베니)가 공짜로 건물도 내주고 살게 해줬는데 돈 내라고 한다고 오히려 화를 내는 로저와 마크를 보면서 베니 입장에서는 ‘이런 적반하장도 없겠다’ 싶더라고요. 이번에 베니의 입장이 너무나 이해가 많이 됐어요. (웃음)
 
Q 콜린이라는 캐릭터를 접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신경 쓴 점이 있다면요.
콜린은 엔젤과의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 큰 두려움을 가졌을 것 같아요. 콜린도 사실 오늘 아니면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고, 얼마 남지 않는 삶에서 나와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 좋은 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잖아요. 콜린에게 그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면, 남은 삶을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이런 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콜린이 강도를 당하는 순간 엔젤을 만나는데 25살 때는 콜린이 엔젤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는 식의 좀 단순한 접근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콜린의 입장에서 엔젤이 정말 매력적인 사람인 것을 알고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에게 마음이 가는 걸 많이 자제하려고 했어요. 엔젤은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엔젤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엔젤이 진실되게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 돈 안 내도 돼 아무것도 필요 없어. 천 번의 키스만 해주면 돼” 같은 진실 담은 농담을 들으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낯설고 두렵지만 ‘한 발 내디뎌볼까?’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Q 콜린은 사랑하는 엔젤을 먼저 떠나보냅니다. 어떤 것에 집중해서 표현하려고 했나요?
슬픔 그 자체에 잠식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슬픈 순간을 내 곁을 떠난 엔젤을 위해서 헌정하는 순간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남은 사람한테는 큰 슬픔이잖아요. 그 슬픈 이유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에 슬프다고 생각해요. 죽음 자체는 안타깝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그 사람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떠난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했건 아니었든 간에 뭔가 그 사람과의 추억이 내 안에 남아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이별했을 때 슬픔이 찾아오고 추억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엔젤과 함께했던 추억이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슬프지만, 엔젤을 위한 순간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Q 두 명의 엔젤이 상대 역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각각 어떤 느낌인가요.
(김)호영이 형은 장미꽃이고요. (김)지휘 형은 수국화 같아요. 둘 다 예쁜 꽃인데 성격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호영이 형은 사람 자체가 너무나 에너지가 넘치고 화려한 사람이고요. 지휘 형은 그거보다는 좀 차분한 사람이고요. 똑같은 엔젤을 만들기 위해서 연습한 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과 제일 자연스럽게 엔젤과 만나는 지점이 각자 표출되는 것 같아요. 똑같은 넘버를 부르고 춤을 추고 똑같이 죽는데 두 엔젤이 달라요. 콜린을 대하는 사랑의 방식도 조금씩 다르고요.

Q 콜린이 엔젤을 만나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처럼 재림 씨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분들을 꼽는다면?
저를 뽑아주셨던 박칼린 선생님, 그리고 함께 ‘에어포트 베이비’를 했던 전수양 작가님은 배우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나 방향 등에서 대해서 많이 조언해 주시고요. 그리고 대학교 은사님인 이상녕 교수님은 저를 무조전 믿어주셨어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성악 전공 학생이 클래식 말고 가요나 다른 음악 장르를 부르면 안 좋은 시선이 있었어요. 교수님은 제가 뮤지컬 한다고 했을 때 지지를 많이 해주셨어요. “네 부르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진짜 노래를 잘하는 거다. 넌 잘하고 있다”고요. 그게 뮤지컬을 할 수 있었던 씨앗이 됐죠.
 
Q 재림 씨는 무대 밖에서 어떤 걸로 에너지를 채우나요?
사람이 살면서 의식주를 제외하고도 정서적인 것들이 충족이 되어야 하잖아요. 저는 이런 정서적인 것들이 항상 채워져 있어요. 살면서 뭔가 '나는 혼자다', '애정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안 해봤어요. 부모님은 항상 지지해주고, 힘이 되주는 친구가 옆에 있고, 제 노래를 따라 부르는 5살 조카도 있고요. (웃음) 이런 것들이 저를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배우가 어떻게 보면 시끄러운 직업이잖아요. 늘 주변에 사람도 많고, 무대에는 음악소리도 크고요. 극 에서는 감정기복도 심하고요. 그래서 일을 끝내고 조용한 곳(집)으로 가요. 집이 가장 이상적인 공간인 것 같아요.

Q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들 해봤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제가 개성 강한 캐릭터들 많이 해봤는데요. 병약한 역할을 못해 봤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런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더 나이가 들어서는 진짜 나이가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넥스트 투 노멀’에서 아빠 역할도 해보고 싶고, ‘에어포트 베이비’에서 딜리아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노트르 담 드 파리’의 프롤로도요.

Q ‘렌트’를 보러 올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이 작품은 에이즈, 마약 등 각자의 상황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노력과 열정을 그리고 있어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대와 질병의 이름은 다르지만 요즘 우리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지점도 있고요.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요. ‘렌트’의 정신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극 중 엔젤이 ‘천 번의 키스만 해줘요’라든지 로저가 ‘더 늦기 전에 난 한 곡을 쓰겠어’ 같은 가사들을 보면 목적은 다르지만 내가 이루고자 하는 걸 위해서 등장인물 모두가 열정을 쏟으며 애쓰고 있거든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렌트’ 정신인 것 같아요.
 
요즘 서로 교류하기가 조심스럽고 힘들잖아요.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이 혼자서 모든 걸 하다 보면 지칠 수 있어요. ‘렌트’를 보게 된다면 이렇게 힘든 시기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면 되겠구나,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구나’하는 다시 시작하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들이 그런 마음을 얻고 가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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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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