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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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창작산실 심의의원이었던 연극평론가 김미도, 박원순 서울시시장,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블랙리스트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9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서울문화재단 주관으로 예술계 검열과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시국선언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부산영화제 보이콧한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감독, 시국선언에 동참한 연극평론가이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인 김미도, 소설가 한창훈,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진가 노순택, 국립국악원 검열 당사자인 신현식 앙상블 시나위대표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토론회 패널로 참가했다.   

토론회는 세가지 주제로 진행되었다. 최근 문화예술계 시국선언, 항의 공연 등 예술가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이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번째 이런 사태의 발단이 된 블랙리스트와 검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세번째 서울시는 예술가 블랙리스트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이다.
 
(사진) 2014년 올해의 작가상 선정, 동시대 한국사회 현실을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으로 기록하는 사진작가 노순택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노랫말 중 ‘미싱은 잘도 도네’가 ‘미신은 잘도 도네’로 들리더라. 뜬금없는 상상이 현실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노순택 사진작가) 

사회 이동연 한예종 교수  최근 예술가들이 시국선언 어떻게 보는가

김미도 연극평론가  검열로 인해 괴롭고 힘든 시기를 일년 반 정도 보내고 있다. 창작산실 심의 논란으로 연극 검열 논란이 붉어졌는데 이때 심의 의원이었다. 검열의 만행을 직접 겪었다. 심사결과가 두 달 이상 발표되지 않고 지연된 상태서 재심사를 요구하는 등 강압에 시달렸다. 문예위가 박근형 연출을 찾아가 포기 각서를 받아내는 기막힌 일들을 겪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사태가 있었다. 연극계는 뜨겁게 투쟁했다. 올해 들어 검열 문제 이슈가 좀 사그라졌을 때도 권리장전 공연릴레이를 5개월에 거쳐 진행했다. 일년 넘도록 연극계가 지속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사회 - 시국선언의 현장의 사진을 찍고 계시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시국선언하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노순택 사진작가 –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노랫말 중 ‘미싱은 잘도 도네’가 ‘미신은 잘도 도네’로 들리더라. 뜬금없는 상상이 현실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유명한 예술가가 ‘사회가 썩어야 예술이 잘된다’는 말을 했다.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어떤 사회가 정체되고 부당함이 만연해 있을 때 그것을 깨는 돌파구의 역할을 문화 예술이 해야 한다고 본다. 당연히 가만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번 사태의 핵심 영역이 문화예술이라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사회 - 문학계도 시국선언에 많이 참여하는데.

한창훈 소설가 – 지난 토요일 집회에서 행진을 하면서 생각했다. ‘데모 좀 그만 하고 살고 싶다’고. 20대에 데모하면서 50대에도 데모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무슨 업보 같다.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넌 뭐했니?’ 하면 ‘데모하다 왔어요’ 할거 같다. 40년 넘게 작가들은 늘 감시를 당해왔다. 한 선생님이 말하길 이걸(블랙리스트) 만든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조악하게 만든 것도 문제라고 하더라. 나처럼 투덜거리면서 이런 사태가 되지 않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서 다들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 – 시국선언, 당연하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현식 시나위대표 – 예술가들이 모여 연대감을 이루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 우리 자화상을 보면 특히 국악계는 사제간의 관계가 얽혀있어 스스로 자기검열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생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의식을 갖고 연대감을 갖고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연대감이 혁명의 시작이다. 어떤 특정인물에 의해 시대가 변하는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꿈과 희망에 근거한 어떤 이야기들을 갖고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지난해 국립국악원 검열사태를 겪은 앙상블 시나위 신현식 대표   

19살에 데모하다가 감옥 가고 그랬는데 지금 나이 60이 넘어서 촛불 시위 참여하려니 (게다가 시장 직책을 갖고..) 참 씁쓸한 심정이다. 비판과 사회에 대한 저항이 예술의 본질 (박원순 시장)

박원순 시장 – 한창훈 작가님 말대로 19살에 데모하다가 감옥 가고 그랬는데 지금 나이 60이 넘어서 촛불 시위 참여하려니 (게다가 시장 직책을 갖고..) 참 씁쓸한 심정이다. 블랙리스트는 소수에 대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모두가 다 블랙리스트면 그건 의미가 없지 않나. 예술인은 시대의 변화에 누구보다 예민한 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비판과 사회에 대한 저항, 이게 예술의 본질이다. 아무리 좋은 정부라도 예술가들이 반대하고 저항해야 꽃을 피울 수 있다. 우리 사회 많은 문제가 반대와 비판 속에 발전 할 수 있지 탄압하고 억압하면 그 사회는 (경제 포함)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예술가들의 활동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사회 –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이들을 지원하지 말라는 의혹이 처음엔 의혹이었지만 하나둘씩 보도되면서 사실 확인되고 있다.

신현식 – 작년 국립국악원 검열사태가 있었다. 11월 공연을 2주 앞두고 전화 한 통이 왔다. 내용인즉슨 우리는 박근형 연출과 콜라보하여 국악과 연극 융합을 모색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연극적 요소를 빼라고 했다. 이유는 자연음향을 써야 하니 연극 요소가 들어가면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혹은 배우들 소리가 안들린다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콜라보 하는지 작업실 와서 보라 했더니 한번도 오지 않고 계속 연극적 요소를 빼라고만 했다. 그럼 공연 안하겠다 했더니 .국악원 측에서 연출을 배제했으면 좋겠다 했다. 그런 사태를 겪으면서 결국 공연은 자진 취소됐다. 그 후국립국악원에 예정된 11-12월 공연이 전부 취소 됐다. 치욕스럽게도 소정의 사례비를 주겠다 하더라. 회의감이 크게 밀려왔다. 취소된 자리에는 국악원 내부 공연으로 모두 대체했다. 제도권에 속해있지 않은 공연 하는 사람들이 큰 상처를 받은 일이었다.
 
(사진)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이전까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했다)  

예술인은 시대 변화에 예민한 촉 가진 사람들, 사회 비판 저항이 예술적 덕목. 그것을 탄압하면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사회전체, 경제까지도 쇠퇴할 수 밖에 없어 (박원순 시장)

사회
– 올해 부산영화제가 열리긴 했으나 파행을 겪었다. 전 집행위원장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열의 뜨거운 감자였는데

연상호 – <부산행> 이전에 애니메이션 했는데, 이 산업이 무척 작다. 투자가 잘 안된다. 지원을 받으면 작업을 하고 못 받으면 작업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서 지원받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 나름 인지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번도 지원을 못 받았다. 누구누구 지지선언 등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공공연히 얘기가 돌았다. 함께 일하는 스탭들이 손가락만 빨고 있으니 내가 이러려고 애니메이션 감독 했나 자괴감 들었다. 근데 나중에 리스트 보니 내가 없더라 (일동 웃음) 블랙리스트는 다른 문제. 작성됐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이슈다. 바로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검열의 문제. 영화는 ‘제한상영가’라는 게 있는데 어른도 보지만 (18세 이상) 성인들도 보면 안되는게 제한상영이다. 쉽게 얘기해 이 등급을 받으면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자가당착>이라는 영화가 이 등급을 받았다. 보통은 포르노, 스너프에 가까운 영화들이 제한상영을 받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에 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인물이 나온다. 영진위가 이 영화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행정소송을 계속해서 부당하다는 결론이 났다. 포르노 합법화를 두지 않기 위해 제한상영이 있는 건데, 이게 제한상영을 받은 건 정치적 검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나라를 민주국가라 볼 수 있는가 싶다.

부산영화제는 보복이다. 눈에 보인다. 지난해 영화 <다이빙벨>을 부산시장이 안 틀었으면 좋겠다했는데, 틀었다.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도 줄줄이 바꼈다.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하는 활동을 했다. 이번에 <부산행>이 부산영화제 보이콧했다. 안타까운 것은 부산시장은 부산영화제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다. 부산영화제와 같은 국제적인 영화제를 다시 재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이랑 정부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자기들이 나서서 그렇게 보여주나. 부산영화제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슴이 아프다.

박원순 – 연상호 감독님 블랙리스트에 없어요?(웃음) 서울시도 관계 있다. 서울시에 사는 영화인들(70% 정도)이 시네마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셔서, 없는 돈에 투자하기 위해 투자 심사를 했다. 근데 심사와 조사 결과 정부사업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정작 문체부는 전혀 생각이 없다. 그래서 시청이 다시 신청하는 단계다.
대한항공부지에 호텔 짓겠다 하여 절대 안된다 하고 있는데, 대한항공 회장이 찾아와 K익스피리언스를 만들겠다 했다. 이게 차은택과 연결되어 있는 거 같더라. 이런 일들이 국정농단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과 서울연극영화제를 지원하기 위해 아르코 극장을 대관하려 하는데 안 빌려주더라 그때도 참 이상하다, 했는데 박장렬 회장이 블랙리스트에 있었다. 이런 일들 전반적으로 청와대에서 해왔던 것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 만든다고 도지사들 불렀는데 나는 부르지도 않더라.
영화배우 정우성씨도 모 인터뷰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고 하더라.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사건도 그렇다. 검찰의 공안적 상상력이다. 모두가 공분할 일이다. 
 
‘박 대통령이 아무래도 아빠를 미워하나봐’하고 블랙리스트 기사를 아들에게 보냈더니 답이 왔다. ‘헐, 그래도 그분이 좋아하는 것 보다 낫지 않나요?’(노순택  사진작가)

김미도 - 배우 오현경이 데뷔 60년을 맞아 기념공연으로 대표작인 ‘봄날’을 하고 싶어했는데 계속 공공극장 대관이 안되고 연출을 바꾸라는 압력이 있어 공연이 무산 됐다. (이 작품의 연출가 이성열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 지원에서 배제 됐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언더스터디’라는 공연으로 하기로 했다.

노순택 – 블랙리스트가 보도되고 기사 링크를 아들에게 보냈었다. ‘박 대통령이 아무래도 아빠를 미워하나봐’ 그렇게 보냈더니 답이 왔다. ‘헐, 그래도 그분이 좋아하는 것 보다 낫지 않나요?’
검열을 하고 난리법석을 떤 것은 예술의 송곳이 날카롭고 아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히틀러가 예술가들은 강압하고 책을 불태우며 분서갱유를 했던 이유도 예술가를 압박하는게 권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 문화예술이 얼마나 만만하면 이러나 싶기도 하다.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호 받는 이유는 문화예술의 공공의 힘 때문이 아닐까.
블랙리스트는 영어인데 한국말로 해석하면 ‘돈 주면 안되는 애들 이름’ 인거다. 그들(정부)이 보기에 문화예술인들은 돈에 너무 굶주려 있고 돈줄을 풀거나 조이는 방식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행각하는 것 같다.

연상호 - 정부의 문화계 길들이기가 일정 부분 성공한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독립영화인들이 그렇다. 독립영화인은 어떤 정부냐에 상관없이 사회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를테면 상업영화와 달리 지원에 의존하는데 지원줄이 끊어지고 배급사 선정사업에도 문제 있어. 예술영화전용관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에서 영화, 독립영화 지원에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노순택 –노숙 6일째 맡고 있는 '노숙택'으로 말씀드리면 (노순택 작가는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하고 광화문 광장에 문화예술인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고 있다) 검열의 사슬에 묶인 한 명의 예술가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광화문 광장은 추모의 광장이자, 시민사회가 넘지 못하는 경계선이다. 광화문 광장이 서울시 관할인데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에서 서울시의 연대를 부탁드린다. 광장이 보다 광장일 수 있도록 지켜주는 행정연대가 필요하다. 여기서(광화문 광장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으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토론을 할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본디 예술은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다. 심각하게 침해되어 있는 이 상황에서 그 역할을 다시 찾으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과 1박2일 같이 하는 캠핑을 계획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응원 부탁드리고 싶다.

박원순 – 블랙리스트의 존재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못 받았던 작품을 서울시가 알아보고 지원하는 일들이 지금 단계에서 필요하지 않나 싶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분들이 진정 창조적인 열정을 갖고 예술가의 본질적 활동을 하는 분들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창조경제 하면 잘 할 거다. 서울시는 여전히 부끄럽고 잘 하지 못함을 고백한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중앙정부의 지원 받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서울시가 받아들이고 그 사업을 지원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글: 김선경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uncanny@interpark.com)
사진 제공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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