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젊음의 행진>, 10년차 '상남이' 배우 전역산

  • like8
  • like8
  • share
우리나라 공연시장에서 창작뮤지컬 한 편이 10년 째 공연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스테디셀러 공연에 같은 캐릭터로 10년째 출연하는 배우는 정말 흔치 않다. 전역산은 그런 의미에서 남다른 배우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이 공연되는 10년 동안 무대에는 (한 시즌을 빼고) 늘 ‘상남이’ 전역산이 있었다. <젊음의 행진>을 거쳐간 130명의 배우 중 최다 출연 횟수를 자랑하며 ‘행진의 공무원’이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다. 맡는 배역마다 대사 비중과는 관계없이 늘 주목받는 배우 전역산에게 맛깔스런 연기의 비결을 물었다.

 
어른이 된 만화 캐릭터 오영심과 왕경태의 추억여행 뮤지컬 <젊음의 행진>이 10주년을 맞이했네요. 초연부터 출연해서 벌써 9번째 시즌인데 기분이 어때요?
10주년인건 모르고 있었어요. 세월이 되게 빠르네요. 근데 이렇게 10년 넘게 하는 작품은 드물지 않아요? 얼마전에 <젊음의 행진>쇼케이스 할 때 농담삼아 이런 얘기했어요. <명성황후>에 이태원이 있다면 <젊음의 행진>에는 늘 전역산이 있다고요.(웃음)
 
<젊음의 행진>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요?
매니아 층도 좋아하지만 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 분들도 많이 사랑해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연령층에게 구애 받지 않고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젊음의 행진> 공연장에는 뮤지컬을 처음 보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이 회전문 관객이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직장인들끼리 문화회식 왔다가 가족들 데리고 또 오고 하는 식이죠.
 
보이시한 매력을 가진 여고 퀸카 ‘상남’이란 캐릭터는 이 작품의 씬스틸러잖아요. 작품이 롱런하는 데에 상남이가 끼친 공을 점수로 매긴다면요?
70점? 아니 80점은 줘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연말에 배우들 제일 바쁠 땐데 다른 작품 안하고 계속 의리 지켰는데 80점은 줘야지. 항상 회장님(송승환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의 분부로 인하여 다른 작품 안 하고 열심히 했어요.(웃음)

지난 시즌들의 공연 영상을 보니 상남이는 의상도 머리도 포인트 동작도 조금씩 바뀌어 왔더라고요. 어떻게 바뀌어 왔나요?
의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초연 때 의상은 씨에이치수박(뮤지컬 <빨래> 제작사) 최세연 대표님이 제작해줬던 거였어요. 그게 너무 잘 어울려서 진짜 오래 입었어요. 이게 결국 찢어져서 재킷을 여밀 수가 없어서 안에 민소매 티셔츠 하나 받쳐 입고 공연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비슷하게 다시 제작하긴 했는데 제가 좀 리폼했어요. 제가 또 엉덩이가 예쁘잖아요? (웃음) 재킷이 엉덩이를 덮길래 엉덩이 좀 보여주고 싶어서 밑단을 잘랐죠. 근데 너무 잘라서 허리에 채워야 할 벨트를 명치부근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에요. 옷이 잘못 나온 거지.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될 걸 제가 스탭들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해서 그냥 컨셉을 바꿨어요. ‘상남이는 다리가 너무 길어서 허리가 이렇게 위에 있다!’ 공연 중에 양손을 허리에 얹을 때도 이렇게 겨드랑이 쪽에 손을 댔더니 관객들이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의상을 벌써 7~8년째 입고 있네요. 이제 이 스트라이프 재킷은 상남이의 트레이드 마크예요.
 
▲ 너무 오래 입다보니 찢어진 스트라이프 재킷을 풀어 헤치고 공연하는 전역산(오른쪽에서 두번째)
 
▲ 2008년 공연 당시 전역산. 이 때는 붉은 아이섀도로 메이크업에 포인트를 줬다.
 

상남이 등장씬에 환호하는 관객이 많아요. 머리를 휙 휘날릴 때 반짝이 가루가 공기중에 퍼지잖아요. 꼭 만화 같았어요.
아 그 장면요? 머리카락 속에 펄 넣어놓는 거에요. 분장팀에 있는 미용용 펄인데 그날의 모발 상태가 성공적인 반짝이 헤드뱅잉을 결정짓는 변수가 돼요. 두피의 온도, 모발의 기름기 같은 거요. 머리가 너무 기름지면 반짝이가 안 떨어지고요, 샴푸가 잘돼서 너무 찰랑거리면 걸어나오다가 펄이 다 떨어져요. 헤어에센스 양도 잘 조절해야 하고, 등장할 때도 목을 빳빳이 고정시키고 나와야 임팩트 있게 반짝이는 헤드뱅잉을 할 수 있어요.
 
초연 때 20대였던 전역산이 어느새 서른 즈음이네요. 10년전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체력적으로 달라졌죠. 지인들이 공연 보고서 ‘작년보다 힘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종종해요. 특히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부를 때 진짜 힘들어요. 원래 현진영을 춤도 거의 안 추면서 부르던 노랜데 서너 배 빠르게 편곡해서 부르다보니 이 곡 부르고 토한 적도 꽤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젊음의 행진> 배우들은 공연 전에 밥을 양껏 못먹어요. 격하게 춤추다가 토할까 봐서요. (웃음) 근데 또 공연 끝나고는 지쳐서 못먹고. 살빠질 것 같아요. 아, 변한 거 또 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점점 농염해지고 있어요. 상남이 여고생인데.(웃음) 어쩔수 없는 거죠. 나이가 나이니까. 근데 관객들은 농염해질수록 더 좋아하던데요?

90년대, 영심이 시대의 가요들은 역산씨의 소년기와 겹치지 않잖아요. 소년시절에 실제로 좋아했던 넘버가 작품 속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건모의 ‘핑계’요. 가장 좋아했는데 그 넘버는 이번 공연에서 빠졌어요. 혹시 ‘핑계걸’ 아세요? 김건모가 노래할 때 옆에서 춤추던 핑계걸이 강원래 형이랑 결혼한 김송 누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핑계도 좋아하고 핑계걸 송이 누나도 너무 좋아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재연 때 연출님한테 제가 핑계걸 역할을 제가 하면 안되냐고 제안했어요. 괜찮다고 하시길래 직접 의상 준비해서 핑계걸 코스프레를 했는데 공연 때 대박이 났었죠.

송이 누나랑은 그때 친해져서 지금도 잘 지내요. <젊음의 행진>으로 만난 인연이죠. 송이 누나랑 원래 형을 공연에 초대했었는데 그때 송이 누나가 너무 고맙다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줬어요. ‘힘들게 살면서 잊고 있었는데 김송이란 여자가 저런 삶을 살았었단 걸 다시 알려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되게 눈물 나더라고요. ‘대한민국 뮤지컬에 누나 캐릭터가 남는 거야’라고 얘기해줬더니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
 
▲핑계걸 역할을 맡아 큰 호응을 받았던 2008년 공연.
 
2015년 말쯤이었던가요. 플레이디비가 주목한 씬스틸러로 꼽힌 적이 있어요. 어떤 작품에 출연하든 출연분량과는 관계없이 시선을 끄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인 더 하이츠> 상견례 날 이지나 연출에게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요. “<난쟁이들>보러 가면 네가 하는 신데렐라만 보인다며? 여기서는 네가 너무 주목받으면 균형이 안 맞으니까 무대에서 눈도 돌리지마. 눈알만 굴려도 다 너만 볼 거 같아.” 혼내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전 이 얘기 듣고 되게 기분 좋았어요. 인정받은 거잖아요.
 
그렇게 시선을 끄는 비결이 뭔가요?
작품마다 연결되어 흐르는 공기가 있잖아요. 저는 그 분위기와는 좀 다른 냄새를 한번 풍기고 빠진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작품의 흐름에 방해될 정도로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노래적으로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대신 다른 방법으로 살 길을 찾아 왔던 거죠 뭐.  
 
분위기를 전환하는 기술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 아역으로 데뷔 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끼가 남달랐던 걸까요?
제가 아역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는 한의사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는데 두 분 다 제가 그냥 공부 열심히 하면서 자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정 하고 싶으면 돈은 대줄 테니 알아서 해라’라고 하셔서 혼자 인천 집에서 여의도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연기학원에 다녔어요. SBS 드라마 <임꺽정>에서 아역으로 데뷔했을 때도 혼자 새벽 5시에 첫차 타고 촬영장 갔어요. 스태프 차 얻어 타고 다녔고요.(웃음) 다른 애들이 엄마랑 다니는게 부러웠는데 또 숫기는 없어서 다른 아역들이랑 친해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씬스틸러, 개성 강한 배우, 코믹연기의 강자.’ 이런 이미지랑 실제 성격은 다를 수 있잖아요.
<난쟁이들>이나 <젊음의 행진> 보고 뒷풀이 오신 분들은 제 성격이 무대 위 모습이랑 너무 달라서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릴 땐 사석에서도 좀 더 쾌활했던 것 같아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밖에서는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현실 나이에 맞게 좀 더 점잖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니까요.
 
2014년 말 경에는 작품활동을 거의 1년 가까이 쉬셨더라고요. 혹시 배우로서의 고민이 있었던 시기인가요?
맞아요. 저두 울 줄도 알고 진지한 연기도 할 수 있는 배우인데 춤추고 끼부리는 연기만 시켜서 힘들었던 시기예요. 그게 큰 스트레스가 돼서 작품들어오면 다 안하고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지냈어요. 근데 어느 날 바에서 설거지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왜 가지고 태어난 재능으로 먹고 살지 않고 이걸 하고 있지? 설거지가 재능은 아닌데.” 그 때 쯤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성스럽거나 코믹한 역할도 열심히 하고 박수 받으면 감사한 거잖아요. 제가 눈물 흘리는 연기 잘 한다고 누가 알아주겠어요.(웃음) 그렇게 고민의 늪에서 나와서 죽기 살기로 준비했던 작품이 <난쟁이들> 초연이에요.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긴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모든 걸 쏟아서 신데렐라 역을 준비했더니 뮤지컬 십 몇 년 하면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연말에는 여기저기 뮤지컬상 후보에도 오르고요. 돌아보면 진짜 생각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전역산이 되고 싶은 이상적인 배우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런 그림은 없고요. 그냥 일 안 끊기고 끝까지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요즘 저 출연료 바겐세일 중이니까 많이들 전화 줬음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젊음의 행진> 10년 했으면 뭐 SM엔터테인먼트의 보아나 강타처럼 주식 좀 주고 이사 같은 거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웃음)
전 누가 롤모델 있냐고 물어보면 늘 없다고 대답해요. 제2의 000이 뭐가 멋있어요. 그냥 전역산으로 사는게 제일 멋진 것 같지 않아요? 지인이 해 준 얘긴데 ‘나’랑 연애하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내가 뭘하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게 자기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죠.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요?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웃음)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www.studiochoon.com)

 

[ⓒ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공연

#다른 콘텐츠 보기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