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젊음의 행진>, 10년차 '상남이' 배우 전역산
- 2016.11.11
- 김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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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연시장에서 창작뮤지컬 한 편이 10년 째 공연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스테디셀러 공연에 같은 캐릭터로 10년째 출연하는 배우는 정말 흔치 않다. 전역산은 그런 의미에서 남다른 배우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이 공연되는 10년 동안 무대에는 (한 시즌을 빼고) 늘 ‘상남이’ 전역산이 있었다. <젊음의 행진>을 거쳐간 130명의 배우 중 최다 출연 횟수를 자랑하며 ‘행진의 공무원’이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다. 맡는 배역마다 대사 비중과는 관계없이 늘 주목받는 배우 전역산에게 맛깔스런 연기의 비결을 물었다.
어른이 된 만화 캐릭터 오영심과 왕경태의 추억여행 뮤지컬 <젊음의 행진>이 10주년을 맞이했네요. 초연부터 출연해서 벌써 9번째 시즌인데 기분이 어때요?
10주년인건 모르고 있었어요. 세월이 되게 빠르네요. 근데 이렇게 10년 넘게 하는 작품은 드물지 않아요? 얼마전에 <젊음의 행진>쇼케이스 할 때 농담삼아 이런 얘기했어요. <명성황후>에 이태원이 있다면 <젊음의 행진>에는 늘 전역산이 있다고요.(웃음)
<젊음의 행진>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요?
매니아 층도 좋아하지만 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 분들도 많이 사랑해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연령층에게 구애 받지 않고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젊음의 행진> 공연장에는 뮤지컬을 처음 보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이 회전문 관객이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직장인들끼리 문화회식 왔다가 가족들 데리고 또 오고 하는 식이죠.
10주년인건 모르고 있었어요. 세월이 되게 빠르네요. 근데 이렇게 10년 넘게 하는 작품은 드물지 않아요? 얼마전에 <젊음의 행진>쇼케이스 할 때 농담삼아 이런 얘기했어요. <명성황후>에 이태원이 있다면 <젊음의 행진>에는 늘 전역산이 있다고요.(웃음)
<젊음의 행진>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요?
매니아 층도 좋아하지만 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 분들도 많이 사랑해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연령층에게 구애 받지 않고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젊음의 행진> 공연장에는 뮤지컬을 처음 보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이 회전문 관객이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직장인들끼리 문화회식 왔다가 가족들 데리고 또 오고 하는 식이죠.
보이시한 매력을 가진 여고 퀸카 ‘상남’이란 캐릭터는 이 작품의 씬스틸러잖아요. 작품이 롱런하는 데에 상남이가 끼친 공을 점수로 매긴다면요?
70점? 아니 80점은 줘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연말에 배우들 제일 바쁠 땐데 다른 작품 안하고 계속 의리 지켰는데 80점은 줘야지. 항상 회장님(송승환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의 분부로 인하여 다른 작품 안 하고 열심히 했어요.(웃음)
지난 시즌들의 공연 영상을 보니 상남이는 의상도 머리도 포인트 동작도 조금씩 바뀌어 왔더라고요. 어떻게 바뀌어 왔나요?
의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초연 때 의상은 씨에이치수박(뮤지컬 <빨래> 제작사) 최세연 대표님이 제작해줬던 거였어요. 그게 너무 잘 어울려서 진짜 오래 입었어요. 이게 결국 찢어져서 재킷을 여밀 수가 없어서 안에 민소매 티셔츠 하나 받쳐 입고 공연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비슷하게 다시 제작하긴 했는데 제가 좀 리폼했어요. 제가 또 엉덩이가 예쁘잖아요? (웃음) 재킷이 엉덩이를 덮길래 엉덩이 좀 보여주고 싶어서 밑단을 잘랐죠. 근데 너무 잘라서 허리에 채워야 할 벨트를 명치부근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에요. 옷이 잘못 나온 거지.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될 걸 제가 스탭들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해서 그냥 컨셉을 바꿨어요. ‘상남이는 다리가 너무 길어서 허리가 이렇게 위에 있다!’ 공연 중에 양손을 허리에 얹을 때도 이렇게 겨드랑이 쪽에 손을 댔더니 관객들이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의상을 벌써 7~8년째 입고 있네요. 이제 이 스트라이프 재킷은 상남이의 트레이드 마크예요.
70점? 아니 80점은 줘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연말에 배우들 제일 바쁠 땐데 다른 작품 안하고 계속 의리 지켰는데 80점은 줘야지. 항상 회장님(송승환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의 분부로 인하여 다른 작품 안 하고 열심히 했어요.(웃음)
지난 시즌들의 공연 영상을 보니 상남이는 의상도 머리도 포인트 동작도 조금씩 바뀌어 왔더라고요. 어떻게 바뀌어 왔나요?
의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초연 때 의상은 씨에이치수박(뮤지컬 <빨래> 제작사) 최세연 대표님이 제작해줬던 거였어요. 그게 너무 잘 어울려서 진짜 오래 입었어요. 이게 결국 찢어져서 재킷을 여밀 수가 없어서 안에 민소매 티셔츠 하나 받쳐 입고 공연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비슷하게 다시 제작하긴 했는데 제가 좀 리폼했어요. 제가 또 엉덩이가 예쁘잖아요? (웃음) 재킷이 엉덩이를 덮길래 엉덩이 좀 보여주고 싶어서 밑단을 잘랐죠. 근데 너무 잘라서 허리에 채워야 할 벨트를 명치부근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에요. 옷이 잘못 나온 거지.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될 걸 제가 스탭들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해서 그냥 컨셉을 바꿨어요. ‘상남이는 다리가 너무 길어서 허리가 이렇게 위에 있다!’ 공연 중에 양손을 허리에 얹을 때도 이렇게 겨드랑이 쪽에 손을 댔더니 관객들이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의상을 벌써 7~8년째 입고 있네요. 이제 이 스트라이프 재킷은 상남이의 트레이드 마크예요.
▲ 너무 오래 입다보니 찢어진 스트라이프 재킷을 풀어 헤치고 공연하는 전역산(오른쪽에서 두번째)
▲ 2008년 공연 당시 전역산. 이 때는 붉은 아이섀도로 메이크업에 포인트를 줬다.
상남이 등장씬에 환호하는 관객이 많아요. 머리를 휙 휘날릴 때 반짝이 가루가 공기중에 퍼지잖아요. 꼭 만화 같았어요.
아 그 장면요? 머리카락 속에 펄 넣어놓는 거에요. 분장팀에 있는 미용용 펄인데 그날의 모발 상태가 성공적인 반짝이 헤드뱅잉을 결정짓는 변수가 돼요. 두피의 온도, 모발의 기름기 같은 거요. 머리가 너무 기름지면 반짝이가 안 떨어지고요, 샴푸가 잘돼서 너무 찰랑거리면 걸어나오다가 펄이 다 떨어져요. 헤어에센스 양도 잘 조절해야 하고, 등장할 때도 목을 빳빳이 고정시키고 나와야 임팩트 있게 반짝이는 헤드뱅잉을 할 수 있어요.
아 그 장면요? 머리카락 속에 펄 넣어놓는 거에요. 분장팀에 있는 미용용 펄인데 그날의 모발 상태가 성공적인 반짝이 헤드뱅잉을 결정짓는 변수가 돼요. 두피의 온도, 모발의 기름기 같은 거요. 머리가 너무 기름지면 반짝이가 안 떨어지고요, 샴푸가 잘돼서 너무 찰랑거리면 걸어나오다가 펄이 다 떨어져요. 헤어에센스 양도 잘 조절해야 하고, 등장할 때도 목을 빳빳이 고정시키고 나와야 임팩트 있게 반짝이는 헤드뱅잉을 할 수 있어요.
초연 때 20대였던 전역산이 어느새 서른 즈음이네요. 10년전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체력적으로 달라졌죠. 지인들이 공연 보고서 ‘작년보다 힘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종종해요. 특히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부를 때 진짜 힘들어요. 원래 현진영을 춤도 거의 안 추면서 부르던 노랜데 서너 배 빠르게 편곡해서 부르다보니 이 곡 부르고 토한 적도 꽤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젊음의 행진> 배우들은 공연 전에 밥을 양껏 못먹어요. 격하게 춤추다가 토할까 봐서요. (웃음) 근데 또 공연 끝나고는 지쳐서 못먹고. 살빠질 것 같아요. 아, 변한 거 또 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점점 농염해지고 있어요. 상남이 여고생인데.(웃음) 어쩔수 없는 거죠. 나이가 나이니까. 근데 관객들은 농염해질수록 더 좋아하던데요?
90년대, 영심이 시대의 가요들은 역산씨의 소년기와 겹치지 않잖아요. 소년시절에 실제로 좋아했던 넘버가 작품 속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건모의 ‘핑계’요. 가장 좋아했는데 그 넘버는 이번 공연에서 빠졌어요. 혹시 ‘핑계걸’ 아세요? 김건모가 노래할 때 옆에서 춤추던 핑계걸이 강원래 형이랑 결혼한 김송 누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핑계도 좋아하고 핑계걸 송이 누나도 너무 좋아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재연 때 연출님한테 제가 핑계걸 역할을 제가 하면 안되냐고 제안했어요. 괜찮다고 하시길래 직접 의상 준비해서 핑계걸 코스프레를 했는데 공연 때 대박이 났었죠.
송이 누나랑은 그때 친해져서 지금도 잘 지내요. <젊음의 행진>으로 만난 인연이죠. 송이 누나랑 원래 형을 공연에 초대했었는데 그때 송이 누나가 너무 고맙다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줬어요. ‘힘들게 살면서 잊고 있었는데 김송이란 여자가 저런 삶을 살았었단 걸 다시 알려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되게 눈물 나더라고요. ‘대한민국 뮤지컬에 누나 캐릭터가 남는 거야’라고 얘기해줬더니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
체력적으로 달라졌죠. 지인들이 공연 보고서 ‘작년보다 힘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종종해요. 특히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부를 때 진짜 힘들어요. 원래 현진영을 춤도 거의 안 추면서 부르던 노랜데 서너 배 빠르게 편곡해서 부르다보니 이 곡 부르고 토한 적도 꽤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젊음의 행진> 배우들은 공연 전에 밥을 양껏 못먹어요. 격하게 춤추다가 토할까 봐서요. (웃음) 근데 또 공연 끝나고는 지쳐서 못먹고. 살빠질 것 같아요. 아, 변한 거 또 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점점 농염해지고 있어요. 상남이 여고생인데.(웃음) 어쩔수 없는 거죠. 나이가 나이니까. 근데 관객들은 농염해질수록 더 좋아하던데요?
90년대, 영심이 시대의 가요들은 역산씨의 소년기와 겹치지 않잖아요. 소년시절에 실제로 좋아했던 넘버가 작품 속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건모의 ‘핑계’요. 가장 좋아했는데 그 넘버는 이번 공연에서 빠졌어요. 혹시 ‘핑계걸’ 아세요? 김건모가 노래할 때 옆에서 춤추던 핑계걸이 강원래 형이랑 결혼한 김송 누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핑계도 좋아하고 핑계걸 송이 누나도 너무 좋아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재연 때 연출님한테 제가 핑계걸 역할을 제가 하면 안되냐고 제안했어요. 괜찮다고 하시길래 직접 의상 준비해서 핑계걸 코스프레를 했는데 공연 때 대박이 났었죠.
송이 누나랑은 그때 친해져서 지금도 잘 지내요. <젊음의 행진>으로 만난 인연이죠. 송이 누나랑 원래 형을 공연에 초대했었는데 그때 송이 누나가 너무 고맙다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줬어요. ‘힘들게 살면서 잊고 있었는데 김송이란 여자가 저런 삶을 살았었단 걸 다시 알려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되게 눈물 나더라고요. ‘대한민국 뮤지컬에 누나 캐릭터가 남는 거야’라고 얘기해줬더니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
▲핑계걸 역할을 맡아 큰 호응을 받았던 2008년 공연.
2015년 말쯤이었던가요. 플레이디비가 주목한 씬스틸러로 꼽힌 적이 있어요. 어떤 작품에 출연하든 출연분량과는 관계없이 시선을 끄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인 더 하이츠> 상견례 날 이지나 연출에게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요. “<난쟁이들>보러 가면 네가 하는 신데렐라만 보인다며? 여기서는 네가 너무 주목받으면 균형이 안 맞으니까 무대에서 눈도 돌리지마. 눈알만 굴려도 다 너만 볼 거 같아.” 혼내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전 이 얘기 듣고 되게 기분 좋았어요. 인정받은 거잖아요.
그렇게 시선을 끄는 비결이 뭔가요?
작품마다 연결되어 흐르는 공기가 있잖아요. 저는 그 분위기와는 좀 다른 냄새를 한번 풍기고 빠진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작품의 흐름에 방해될 정도로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노래적으로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대신 다른 방법으로 살 길을 찾아 왔던 거죠 뭐.
분위기를 전환하는 기술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 아역으로 데뷔 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끼가 남달랐던 걸까요?
제가 아역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는 한의사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는데 두 분 다 제가 그냥 공부 열심히 하면서 자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정 하고 싶으면 돈은 대줄 테니 알아서 해라’라고 하셔서 혼자 인천 집에서 여의도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연기학원에 다녔어요. SBS 드라마 <임꺽정>에서 아역으로 데뷔했을 때도 혼자 새벽 5시에 첫차 타고 촬영장 갔어요. 스태프 차 얻어 타고 다녔고요.(웃음) 다른 애들이 엄마랑 다니는게 부러웠는데 또 숫기는 없어서 다른 아역들이랑 친해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인 더 하이츠> 상견례 날 이지나 연출에게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요. “<난쟁이들>보러 가면 네가 하는 신데렐라만 보인다며? 여기서는 네가 너무 주목받으면 균형이 안 맞으니까 무대에서 눈도 돌리지마. 눈알만 굴려도 다 너만 볼 거 같아.” 혼내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전 이 얘기 듣고 되게 기분 좋았어요. 인정받은 거잖아요.
그렇게 시선을 끄는 비결이 뭔가요?
작품마다 연결되어 흐르는 공기가 있잖아요. 저는 그 분위기와는 좀 다른 냄새를 한번 풍기고 빠진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작품의 흐름에 방해될 정도로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노래적으로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대신 다른 방법으로 살 길을 찾아 왔던 거죠 뭐.
분위기를 전환하는 기술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 아역으로 데뷔 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끼가 남달랐던 걸까요?
제가 아역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는 한의사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는데 두 분 다 제가 그냥 공부 열심히 하면서 자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정 하고 싶으면 돈은 대줄 테니 알아서 해라’라고 하셔서 혼자 인천 집에서 여의도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연기학원에 다녔어요. SBS 드라마 <임꺽정>에서 아역으로 데뷔했을 때도 혼자 새벽 5시에 첫차 타고 촬영장 갔어요. 스태프 차 얻어 타고 다녔고요.(웃음) 다른 애들이 엄마랑 다니는게 부러웠는데 또 숫기는 없어서 다른 아역들이랑 친해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씬스틸러, 개성 강한 배우, 코믹연기의 강자.’ 이런 이미지랑 실제 성격은 다를 수 있잖아요.
<난쟁이들>이나 <젊음의 행진> 보고 뒷풀이 오신 분들은 제 성격이 무대 위 모습이랑 너무 달라서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릴 땐 사석에서도 좀 더 쾌활했던 것 같아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밖에서는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현실 나이에 맞게 좀 더 점잖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니까요.
2014년 말 경에는 작품활동을 거의 1년 가까이 쉬셨더라고요. 혹시 배우로서의 고민이 있었던 시기인가요?
맞아요. 저두 울 줄도 알고 진지한 연기도 할 수 있는 배우인데 춤추고 끼부리는 연기만 시켜서 힘들었던 시기예요. 그게 큰 스트레스가 돼서 작품들어오면 다 안하고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지냈어요. 근데 어느 날 바에서 설거지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왜 가지고 태어난 재능으로 먹고 살지 않고 이걸 하고 있지? 설거지가 재능은 아닌데.” 그 때 쯤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성스럽거나 코믹한 역할도 열심히 하고 박수 받으면 감사한 거잖아요. 제가 눈물 흘리는 연기 잘 한다고 누가 알아주겠어요.(웃음) 그렇게 고민의 늪에서 나와서 죽기 살기로 준비했던 작품이 <난쟁이들> 초연이에요.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긴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모든 걸 쏟아서 신데렐라 역을 준비했더니 뮤지컬 십 몇 년 하면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연말에는 여기저기 뮤지컬상 후보에도 오르고요. 돌아보면 진짜 생각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난쟁이들>이나 <젊음의 행진> 보고 뒷풀이 오신 분들은 제 성격이 무대 위 모습이랑 너무 달라서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릴 땐 사석에서도 좀 더 쾌활했던 것 같아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밖에서는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현실 나이에 맞게 좀 더 점잖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니까요.
2014년 말 경에는 작품활동을 거의 1년 가까이 쉬셨더라고요. 혹시 배우로서의 고민이 있었던 시기인가요?
맞아요. 저두 울 줄도 알고 진지한 연기도 할 수 있는 배우인데 춤추고 끼부리는 연기만 시켜서 힘들었던 시기예요. 그게 큰 스트레스가 돼서 작품들어오면 다 안하고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지냈어요. 근데 어느 날 바에서 설거지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왜 가지고 태어난 재능으로 먹고 살지 않고 이걸 하고 있지? 설거지가 재능은 아닌데.” 그 때 쯤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성스럽거나 코믹한 역할도 열심히 하고 박수 받으면 감사한 거잖아요. 제가 눈물 흘리는 연기 잘 한다고 누가 알아주겠어요.(웃음) 그렇게 고민의 늪에서 나와서 죽기 살기로 준비했던 작품이 <난쟁이들> 초연이에요.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긴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모든 걸 쏟아서 신데렐라 역을 준비했더니 뮤지컬 십 몇 년 하면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연말에는 여기저기 뮤지컬상 후보에도 오르고요. 돌아보면 진짜 생각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전역산이 되고 싶은 이상적인 배우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런 그림은 없고요. 그냥 일 안 끊기고 끝까지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요즘 저 출연료 바겐세일 중이니까 많이들 전화 줬음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젊음의 행진> 10년 했으면 뭐 SM엔터테인먼트의 보아나 강타처럼 주식 좀 주고 이사 같은 거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웃음)
전 누가 롤모델 있냐고 물어보면 늘 없다고 대답해요. 제2의 000이 뭐가 멋있어요. 그냥 전역산으로 사는게 제일 멋진 것 같지 않아요? 지인이 해 준 얘긴데 ‘나’랑 연애하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내가 뭘하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게 자기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죠.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요?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웃음)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www.studiochoon.com)
그런 그림은 없고요. 그냥 일 안 끊기고 끝까지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요즘 저 출연료 바겐세일 중이니까 많이들 전화 줬음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젊음의 행진> 10년 했으면 뭐 SM엔터테인먼트의 보아나 강타처럼 주식 좀 주고 이사 같은 거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웃음)
전 누가 롤모델 있냐고 물어보면 늘 없다고 대답해요. 제2의 000이 뭐가 멋있어요. 그냥 전역산으로 사는게 제일 멋진 것 같지 않아요? 지인이 해 준 얘긴데 ‘나’랑 연애하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내가 뭘하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게 자기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죠.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요?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웃음)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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