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열기와 냉기가 교차하는 무대, 연극 ‘얼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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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능프로그램 ‘1박 2일’과 드라마 ‘스타트업’ 등에서 크게 주목받은 김선호를 비롯해 정웅인, 이철민, 박호산, 이창용, 신성민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은 연극 ‘얼음’이 지난 9일 개막했다. 7일 언론 공개 리허설로 만난 이 공연은 90분간 쉴 틈 없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무대로 여운을 남겼다.

‘얼음’의 배경은 어느 경찰서의 취조실이다. 얼마 전 벌어진 잔인한 토막살인 사건을 두고 두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한다. 용의자는 살해된 여성을 짝사랑한 18세 소년이다. 두 형사는 제각기 증거물과 추론을 토대로 소년을 압박해가지만, 그 끝에 예상치 못한 국면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극의 매력은 연출의 묘와 배우들의 열연에 있다. 이 연극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 ‘킬러들의 수다’, 연극 ‘택시 드리벌’,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을 쓴 장진 감독이 작/연출했다. 충무로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그는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로 밀도 높은 연극 무대를 완성했다.

두 형사와 용의자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는 이 극에서 용의자인 소년은 등장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무대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와 심리전을 펼치는 두 형사의 표정과 감정 변화를 통해 맞은편 빈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소년의 존재가 생생히 빚어진다. 형사 역 배우들은 탁월한 연기로 관객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잔인성이 섞인, 속을 알 수 없는 용의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 연극 ‘얼음’ 무대 사진

서로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형사1과 형사2의 캐릭터도 재미를 더한다. 형사1은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용의자의 심중을 떠보는 반면, 형사 2는 곧잘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는데다 ‘화해’와 ‘화훼’를 헷갈리고 용의자의 혈액형에 집착하는 단순한 면모가 있는 인물이다. 이들이 번갈아 심문을 진행하면서 무대에는 팽팽한 열기와 냉기가 교차한다. 온갖 잔혹 범죄에 이골이 난 이들은 “머리통은 뜨지 않나?” “(시신을) 어디서 썬 거지?” 등의 대사를 무심히 툭툭 던지는데, 이러한 대사들이 어두운 조명의 무대와 어울려 빚어내는 긴장감도 크다.
 

극중 한 장면, 형사1은 냉커피를 만드는 형사2를 가만히 지켜보다 실소를 터뜨린다. 성격이 급한 형사2가 얼음과 온수, 커피를 엉뚱한 순서로 섞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커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얼핏 열정과 냉정이라는 극단의 온도로 진실을 향해 치닫다 막다른 벽에 부딪히는 두 형사의 모습을 닮았다. 이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한 순간 녹아버리는 얼음처럼 어느새 형체를 알 수 없게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각자 그만큼 차갑고 뜨거워야 할 나름의 이유와 사명감이 있다. 이들의 온도가 용의자의 진실과 만나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 무대는 또 다른 온도로 슬픈 여운을 남긴다. 대체로 진지한 극이지만, 곳곳에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도 버무려져 있다. 정웅인, 이철민, 박호산이 노련하고 치밀한 형사1로 분하며,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가 걸핏하면 욕설을 뱉는 다혈질의 형사2를 연기한다. 공연은 3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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