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이런 위기는 처음…건강한 공연계 인프라 구축 위해 지원 필요”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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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모두가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새해를 맞았고, 공연계에도 벽두부터 공연 중단 및 연기가 계속되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응당 필요한 일들이지만, 동시에 많은 공연 종사자들이 위기에 놓인 것도 사실이다. 지난 12일, 신년 첫 인터뷰로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의 추진위원장을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를 만나 당면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과 해법에 대해 물었다.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은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는 그간 ‘지킬앤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스위니토드’, ‘드라큘라’ 등 수많은 인기작을 성공시켰고, 일찍이 브로드웨이 진출에 도전한 프로듀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뮤지컬 프로듀서 최초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그는 지난 20년간 여러 위기와 실패를 겪었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는 처음이라 말하면서도, 보다 더 먼 미래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한국 뮤지컬이 더욱 건강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활짝 날개를 펴는 것이 신춘수 대표가 그리는 미래다.

Q 코로나 상황이 근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한 좌석 띄어 앉기도 계속 연장되고 있습니다. 제작자로서 느끼시는 위기감은 어느 정도인가요.
처참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전체 공연수가 60~70% 줄었고, 앞으로의 상황도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체 제작사의 위기죠. 이보다 큰 위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제작사를 운영하며 여러 작품을 만들 때 현금 흐름상 문제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다음 미래를 계획하며 넘어갈 수 있어요. 근데 이건 아무리 계획을 해도 시도조차 못하는 캄캄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오디컴퍼니는 브로드웨이에서 진행하던 몇 가지 작업이 있었는데, 셧다운으로 모든 게 완전히 중단된 것도 큰 타격이었어요.

Q 현장에서 공연 스텝 및 배우 분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도 목격하고 계실 텐데요. 
사실 제작사들이 자주 모이게 된 계기도 생활고를 겪는 스텝과 배우들을 돕는 기부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였어요. 각 회사마다 배우와 스텝들이 처한 환경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공연은 기본적으로 프리랜서 계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취소되면) 그들은 수입이 전무한 상태가 되고, 당연히 생활고를 겪게 돼요. 해당 사항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 뮤지컬 종사자의 70~80%는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물론 지금은 다른 많은 소상공인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죠. 다만 저희가 뮤지컬이라는 공연 예술을 하고 있다 보니 ‘공연하는 사람들은 덜 힘들 거야’라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상 생계의 위기는 똑같아요. 공연예술이지만 동시에 뮤지컬 산업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고용돼 있는데, 이 산업의 파이가 줄어든다는 것은 여기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거든요. 
 
Q 대표님이 추진위원장을 맡은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에서 지난 달 말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협회에 참여한 10개 제작사에서 가장 시급히 공유하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준비했던 뮤지컬이 중단·취소되면 그동안 들어갔던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어요. 엄청난 매몰 비용이 발생되죠. 그래서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정부측에 얘기하는 것은 좀 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좌석간 거리두기를 완화해서 공연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거에요. 지금의 거리두기(두 칸 띄어 앉기)로는 공연을 유지할 수조차 없거든요. 사실 한 칸 띄어 앉기만 해도 수익은 발생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손실을 최소화하고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지킬 수는 있죠. 그러면 저희들은 최선을 다해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거고요.

또 코로나 상황을 반영해 민간 공연장 대관료를 조정할 수 있는 조치나 지원도 필요해요. 이런 일에 대비한 명확한 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작사와 민간 극장이 선의를 갖고 (대관료)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부분을 정부에서 좀 지원해준다면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보다 건강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해달라는 것이죠. 이렇게 공연 생태계가 한번 무너지고 다시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이걸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산업의 파이 자체가 너무 크게 줄어들 수 있어요.

그걸 막기 위해 일단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문화산업완성보증(제작사가 공연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도록 보증서를 발급하고 이후 공연 수익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게 하는 제도)의 한도를 높이고 대출금 상환을 유예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러면 제작사가 좀 더 버틸 수가 있죠. 더 나아가서 뮤지컬 산업의 저변 확대와 해외진출을 위한 뮤지컬 투자 펀드 등 기금 마련이 필요하고요. 이건 굉장히 오랫동안 정책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에요.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 호소문

Q 코로나 상황 속에서 국공립극장과 일부 제작사에서 공연 영상화 사업을 추진해왔습니다. 공연 영상의 시장성과 확장성, 공연계 OTT 플랫폼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공연은 관객과 함께 만드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절대 영상이 공연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라도 볼 수밖에 없구나’라는 절실한 필요에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익 구조도 그렇고 만족도도 높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만족도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더 막대한 예산과 섬세한 연출이 필요한데 지금의 구조는 그렇지 않거든요.

OTT 플랫폼으로도 확장이 되면 좋겠지만, 먼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플랫폼 구축과 컨텐츠 제작 환경이 만들어져야겠죠. 요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도 꽤 완성도 높은 영상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기부를 통해 만든 제작비가 상당 부분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일반 제작사나 프로듀서가 혼자 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브로드웨이 유료 VOD 서비스(www.broeadwayhd.com)
 

Q 코로나 이전에도 뮤지컬 제작 구조 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나왔고, 대표님도 뮤지컬 시장의 거품에 대해 여러 번 얘기하셨습니다. 앞으로 개선돼야 할 부분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뮤지컬제작자협회의 출범 이유 중 하나가 시장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서고, 시장이 건전하다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제작사가 작품을 올리는 거에요. 브로드웨이에선 전체 제작비가 펀딩돼야 제작을 시작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런 진입장벽이 없다 보니 누구나 와서 공연을 만들다가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최소한 전체 제작비의 70% 이상은 갖고 시작해야 문제가 생기지 않고, 그러려면 그 회사의 신용이 뒷받침돼야 해요. 회사의 신용이 검증돼야 (제작자)협회원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은 뮤지컬 종사자 모두를 위해 중요한 일이죠.
 

그리고 지금까지는 각 회사마다 배우, 스텝과 맺는 계약 방식이 다 달랐어요. 근데 코로나를 계기로 보다 합리적인 제작 방식과 계약 내용을 고민하게 된 거죠. 지금처럼 외부 이슈로 공연이 갑자기 중단될 경우에도 배우와 스텝에게 보상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브로드웨이에선 배우, 스텝도 다 조합이 있어서 제작사가 그들과 협상을 하고, 공연이 중단될 경우 배우 조합에서 출연료의 일부를 보전해줘요. 공연을 할 때마다 제작사가 배우의 보험금을 조합에 납입하거든요.
 

우리도 그렇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어야 해요. 제 생각엔 뮤지컬제작자협회가 시장 확대를 위한 일들을 해나가고, 뮤지컬협회가 배우나 작가를 대리해서 그런 제도를 우리와 협의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해요. 서로 정체성이 다르니까. 그렇게 제작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표준 계약 시스템을 만들면 작품의 질적 성장도 이뤄질 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 이후에는 그런 정리가 한 번 물리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의 정식 출범 시기와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5월 정식 출범을 목표로 협회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10개 제작사가 참여하고 있지만, 대학로에서 활동 중인 제작사들과도 뜻을 모으면 출범 무렵에는 25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향후 계획은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뮤지컬을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으로 만드는 거에요. 우리가 뉴욕이나 런던에 가면 뮤지컬을 꼭 보듯이, 해외 관광객도 뮤지컬을 보러 서울에 오게 되면 좋겠어요. K팝이 해외시장을 오가며 성장한 것처럼 한국 뮤지컬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부 차원에서의 장기적이고 공격적인 정책과 마케팅이 필요해요. 그게 결국 한국 뮤지컬의 경쟁력이 되고 한국의 산업과 시장이 커지는 것이니까요. 그런 정책적인 얘기를 정부와 계속 나누고 싶어요.

그동안 관객 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사회적 기여나 기부 활동도 계속 해나갈 것 같아요. 기부 콘서트 ‘The Show must go on!(더 쇼 머스트 고 온)’도 그래서 저희에게 중요한 의미였고, 이미 제작사들이 각자 기부를 했어요. 앞으로도 소외계층에게 공연을 보여주거나 공연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주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토니어워즈 같은 공신력 있는 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것도 결국 해외를 향한 훌륭한 마케팅이기도 하잖아요. 시상식을 좀 더 성대하게 제대로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죠.
 
▲ 오디컴퍼니 작품들

Q 오디컴퍼니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20년을 자평하신다면.
2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요. 초반엔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실패도 했지만 모든 과정이 즐거워서 한 번도 슬퍼한 적이 없어요. ‘킹앤아이’로 부채가 8억 생긴 적도 있지만 그게 얼마나 큰 돈 인지도 몰랐고, 7년에 걸쳐 결국 다 갚았죠. ‘레미제라블’의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를 만나러 무작정 영국에 간 적도 있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어서 일찌감치 ‘드림걸즈’ 등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2012~2015년쯤에는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렵게 미국에서 데뷔했는데,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서 자충수를 많이 뒀고 상처도 받았죠. 초반에는 나만 즐거워도 충분히 만족했다면, 점점 고민이 깊어지고 무게가 커졌어요. 관객 분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공연을 보러 오는데, 그 분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졌죠.

20주년을 맞아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었는지 다시 생각해봤는데, 결국은 앞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공연을, 좋은 작품을 즐겁게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개발한 창작 작품을 하나씩 선보이고, 브로드웨이에서도 꼭 좋은 작품을 올리고 싶어요. 브로드웨이에 가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오픈런 공연을 만들어서 우리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고요.

만약 누군가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성공하면 한국뮤지컬산업의 양상도 달라질 거에요. 자본도 움직일 거고, 내용도 달라지겠죠. 우리 스텝들은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선봉장 역할을 할 프로듀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간의 도전을 해온 것이거든요. 토니어워즈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이번 ‘맨 오브 라만차’의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 등 꾸준히 함께 하고 있는 배우 분들이 많은데, 오디컴퍼니를 운영하며 지키고자 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오디컴퍼니는 배우와 스텝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우리 생각을 관철시키기보다는 합리적으로 대화해서 진행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의 첫 인사(상견례)를 할 때 ‘잘 하자’ 보다는 ‘서로를 배려하자’라고 얘기해요.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누군가 상처를 받아서 한 마음이 되지 않거든요. 어느 누가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에너지를 하나로 모았을 때 잘되는 것이 이 장르이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이해와 배려죠.

개인적으로 사업하면서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내본 적이 없어요. 우리 직원들 외에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죠. 우리 컴퍼니매니저의 노력도 컸고요. 사실 저도 많이 바뀐 거에요. 처음에는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는데, 우리 팀원들과 일하며 저도 변했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됐고.

Q 프로듀서를 떠나 개인으로서 가진 바람과 계획을 말씀하신다면요.
예전에는 유명한 프로듀서가 되는 것만이 꿈이었어요 지금도 일 욕심은 많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해졌어요. 좀 더 주변을 바라보고, 사람으로서는 좀 더 깊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올해부터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해요. 지난 20년간 충분히 사랑받았고 행복했으니 이제는 나눠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또 언젠가 영화감독으로서 꼭 음악 영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지금 혼자 즐겁게 여러 시나리오를 읽고 대본 작업도 하고 있어요.
 

▲ ‘맨 오브 라만차’ 포스터
 

Q 지난해 12월 18일 예정됐던 ‘맨 오브 라만차’ 개막이 코로나로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지금 배우 분들의 심경은 어떤가요. 
지금 배우들의 마음은 ‘공연을 하고 싶어서 미치겠어’에요. 그 에너지가 단단히 뭉쳐져서 터져나갈 것 같은 상태에요.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져 있고,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져 있어요. 공연이 시작되면 그 응축된 에너지가 빵 터질 거에요.
 

동시에 이런 시기에 관객들께서 공연을 보러 와 주시는 것에 대한 부담감, 공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미안함도 커요. 그래서 다들 솔선수범해가며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요. 
 

Q 끝으로, 코로나라는 상황을 함께 맞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코로나로 공연을 중단하면서 저희가 가장 크게 느낀 건 관객분들의 소중함이에요.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저희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간 관객 분들이 저희에게 보내준 사랑이 감사하다는 것을 정말 크게 느끼고 있어요. 저희는 방역도 철저히 하고 공연 준비도 철저히 해서 최선의 공연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우리가 그 시간 동안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관객 분들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일이니까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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