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오컬트 뮤지컬’ 어떨까, 창작뮤지컬 ‘검은 사제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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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엑소시즘의 발견’이라는 호평과 함께 54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이 동명의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영화의 강렬한 색채를 뮤지컬이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 가운데, 지난 3일 만난 창작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원작의 서사를 매끄러운 음악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마귀와 사투를 벌이는 사제들의 내면 갈등을 진중히 그려내며 순항을 예고했다.

장중한 음악 속에 사제들이 예배를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주인공인 최부제와 김신부의 시점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어린시절 참혹한 사고로 여동생을 잃고 죄책감 속에 살아온 최부제는 구마 사제인 김신부의 보조 사제로 임명되어 그를 찾아가지만, 번번이 길이 엇갈린다.
 
최부제가 찾는 김신부는 자신의 신자였던 18세 소녀 이영신의 몸에 들어온 마귀를 내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교단의 아웃사이더다. 타협 없는 고집 센 성품으로 교단의 눈밖에 난 그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소녀를 죽이라는 지령을 받지만, 과연 다수를 위해 한 사람의 신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극은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핵심 장면인 구마 예식을 향해 빠르게 향해가고, 적소에서 강약을 달리하며 배치된 매끄러운 음악이 함께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최부제와 김신부, 그리고 이영신까지 세 인물의 갈등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김신부에 대한 험담을 들은 최부제는 자신이 찾아가는 사람이 과연 믿을만한 인물인지 혼란에 빠지고, 김신부는 이영신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로 괴로워하며, 이영신은 마귀의 힘에 압도된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갈등 아래에는 신의 존재와 인간의 의지에 대한 깊은 의구심이 깔려 있다.
 
마침내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여 펼치는 구마 예식 장면은 이 공연의 백미다. 앞서 무당들의 퇴마굿으로 고조된 분위기를 이어받아 이영신이 등장하고, 저마다 풀지 못한 의심을 품은 세 사람은 최후의 결전에 임한다. 강렬한 음악과 조명, 배우들의 열연이 어울린 이 장면은 기대가 아쉽지 않을 만큼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마귀에 씌어 괴기한 방언과 욕설, 저주를 내뱉는 소녀 이영신의 존재감이 빛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공연의 주축은 두 사제, 최부제와 김신부다. 지난 3일 공연에는 최부제 역 김경수와 김신부 역 박유덕이 호흡을 맞췄다. 김경수 배우 특유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깊은 고민 속에서 성장해가는 최부제와 잘 어울렸고, 짙은 피로와 회의 속에서 끝까지 구마의 결의를 놓지 않는 김신부 역 박유덕의 활약도 든든했다. 혼신을 다해 임한 마지막 구마 예식을 기점으로 두 신부는 인간의 의지와 신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그 끝에 최신부가 외치는 “네, 여기 있습니다”라는 대사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영신 역의 박가은은 신예임에도 안정된 연기를 펼쳤고, 총장신부 역 지혜근을 비롯해 장면마다 수사, 무당, 마귀 등으로 변신하며 톡톡히 활약한 심건우, 김정민, 이동희, 이지연 등 앙상블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총 8명의 배우가 수십 명의 인물로 분하며 꽉 채우는 밀도 높은 무대다. 또다른 최부제 김찬호, 조형균, 장지후와 김신부 역 이건명, 송용진, 이영신 역 김수진, 장민제의 호흡도 기대를 모은다.
 

공연 전반에 걸쳐 무대와 조명 활용도 눈길을 끌었다. 어둡고 차가운 질감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 중앙에 피라미드형의 좁은 2층 구조물이 놓였는데, 이 2층 공간이 때로는 성스런 빛이 어른거리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또는 마귀가 도사린 음험한 공간으로 변모하며 각 장면에 걸맞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상승의 구조로 완성된 무대는 신을 향한 주인공들의 간절한 물음과 열망을 전하기도 한다.


다소 조화를 깨는 장면도 있다. 구마의식에 쓰일 돼지 ‘돈돈이’를 떠나 보내는 수사들의 요란한 환송 장면과 프란체스코의 종을 찾는 최부제 앞에 VR헤드셋을 쓴 신부들이 등장하는 장면 등 분위기 전환을 의도한 코믹한 장면들이 곳곳에 섞여 있는데, 일부 장면은 불필요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5월 30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알앤디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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