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아래 숨겨진 <팬텀>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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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아래 숨겨진 <팬텀>의 심리
이 기사는 뮤지컬 <팬텀>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파리, 한 오페라극장에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돈다. 극장 지하는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되는 금지구역이며, 5번 박스석은 항상 비어 있어야 한다. 유령을 위한 지정석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시기, 오페라 극장 앞의 거리에서 노래하며 악보를 팔던 크리스틴 다에가 우연히 필립 드 샹동 백작을 만나게 되고, 백작의 도움으로 오페라극장에 입성한다. 그곳에서 크리스틴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 유령(팬텀)은 흰 가면을 쓰고 나타나 그녀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팬텀>에서 주인공인 ‘팬텀’은 시종일관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가면’은 익명성을 대변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인간은 비단 물리적인 가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가면, 페르소나를 이용하며 실제 모습, 혹은 욕망을 감춘다. 또한 개인의 분신이자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가면의 첫 번째 의미 – 억압
 그렇다면 뮤지컬 <팬텀> 속 팬텀의 가면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가면 아래 숨겨진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일그러진 얼굴’을 숨기기 위함이다. 극 중 제라드 카리에르가 크리스틴에게 “에릭은 마음은 따뜻하지만 얼굴은 죽음과도 같다”고 말한 것처럼, 팬텀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얼굴을 감당하지 못해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면을 쓰게 될 정도다.

하지만 뮤지컬 <팬텀>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가면에서 알 수 있듯, 에릭의 ‘가면’은 단순히 팬텀의 외면을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먼저 그의 가면은 어린 시절 제대로 양육 받지 못했던 어두운 기억과 그로 인한 상처를 억압한다.

가면을 쓰고 극장에 숨어 지내는 팬텀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독을 말하지 못한다. 상처를 내보일 수도 없고, 보듬어줄 타인을 만날 수도 없다. 가면은 오히려 그를 ‘무서운 존재’로 만들면서 외부와 팬텀을 분리시킨다. 이렇듯 가면은 집단사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팬텀의 상처와 고독을 끝없이 억누른다.

가면의 두 번째 의미 – 욕망
하지만 이와 동시에 가면은 ‘유령’이라는 익명성을 이용해 더 대담한 짓을 저지르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팬텀은 오페라 극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를 원망하지만, 동시에 오페라 극장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친다. 5번 박스석에 나타나 공연을 관람한다거나, 마담 카를로타의 윽박에 못 이겨 극장 지하로 내려간 조셉 부케를 죽인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캐스팅(크리스틴)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공연을 망치고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 크리스틴이 팬텀의 또 다른 가면이라고?
일면으로는 팬텀이 사랑했던 크리스틴 역시 그의 페르소나(가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페르소나는 앞서 언급한 개인의 분신이자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이 특정 배우와 오랫동안 작업하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팬텀은 세상에 내보이지 못한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욕망을 대신할 수 있는 대상(크리스틴)을 만났고, 그녀를 통해 이루지 못한 욕구를 드러내려 한다. 크리스틴은 음악적 욕구뿐만 아니라 ‘사랑’과 ‘애정’에 대한 욕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온전히 사랑받을 기회가 없었던 팬텀에게 단 하나의 구원이었다.

이런 크리스틴을 괴롭히던 마담 카를로타는 극 중 팬텀의 손에 응징을 당하기도 한다. 희망이자 또 다른 자신을 짓밟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팬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벗은 팬텀을 본 크리스틴은 겁에 질려 도망쳐버린다. 팬텀에게는 또 다른 나 자신에게마저 버림받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팬텀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뮤지컬 <팬텀>은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음악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흰 가면 속 숨겨진 이야기를 그리는 뮤지컬 <팬텀>은 오는 11월 26일부터 2017년 2월 26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된다.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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