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칠맛 나는 2인극 <인간> 연습현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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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을 각색한 연극 <인간>이 오는 17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지난 7일 오후에 찾아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부 연습실에서는 전 출연진과 창작자들이 모여 열띤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003년 발표한 희곡 <인간>은 외계인이 만든 유리상자 안에 갇힌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 라울과 사만타의 이야기다. 2004년 프랑스 초연 후 2010년 충무아트홀에서 국내 초연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올해 공연에서는 소심한 화장품 연구원 ‘라울’ 역의 전병욱을 제외한 모든 출연진이 새롭게 캐스팅 됐다. 개그맨 출신으로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 <톡식 히어로> 등에 출연했던 고명환,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반신>으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준 오용, 연극무대에 처음 도전하는 데뷔 20년차 배우 박광현이 라울 역을 맡았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 <트레이스 유>등으로 활발히 활동해 온 안유진, 제36회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김나미, 걸그룹 ‘천상지희’ 출신으로 연극무대에 처음 도전하는 스테파니가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를 연기한다.
 
일찌감치 연습실에 모인 배우들은 먼저 요가매트를 펼쳐놓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춤을 추거나 몸싸움을 연기하는 장면도 있는 만큼 부상 예방을 위해 스트레칭은 필수. 몸을 풀고 난 배우들은 대사를 빠르게 외우며 입을 푸는 동시에 쉴 새 없이 서로 농담을 주고 받았다. 선후배 간에도 스스럼없이 장난치며 어울리는 모습에서 두터운 친밀감이 엿보였다.
 
연습실 바닥에는 무대 영역과 객석 영역을 나누기 위한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독특한 점은 객석이 무대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배치 되었다는 점. 관객들은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인간들을 들여다보는 외계인의 시점으로 공연을 즐기게 된다.
 
배우 일곱명은 둘씩 짝을 지어 90여분 동안 런스루를 이어갔다. 첫 장면은 유리상자 안에서 정신을 차린 라울과 사만타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우왕좌왕하는 대목이다. 전병욱과 스테파니가 연기했다. 전병욱은 초연 경험이 있는 만큼 한 치의 실수도 없는 매끄러운 대사와 동작으로 상대를 리드해 나갔다.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스테파니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어 호흡을 맞췄다.
 
사만타는 라울보다 과격한 몸짓이 많은 배역이다. 낯선 이성을 경계한 나머지 레슬링 기술로 라울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자신들이 갇힌 공간이 사실은 리얼리티쇼 촬영장일지도 모른다며 가상의 시청자들을 위한 댄스쇼를 선보이기도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출신인 스테파니는 여유롭게 아크로바틱한 춤 동작들을 소화한다. 스테파니는 “몸 쓰는 것 때문에 저를 캐스팅한 이유도 크다고 들었다. 천상지희 활동할 때의 예쁜 춤에 비하며 조금 기이해 보일 수도 있다.”며 캐스팅 배경을 전했다.
 
오용과 김나미는 누구보다 대사의 감칠맛이 잘 살아나는 연기를 보여줬다. 어미와 일부 단어(특히 비속어)를 자신의 입에 맞게 수정한 두 배우는 빠른 템포로 대사를 교환하며 극에 탄력을 더했다. 이들이 연기한 장면은 라울과 사만타가 나름의 실험을 통해 유리감옥 바깥의 누군가에게서 음식을 얻어내는 방법을 알아내는 대목이다.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던 라울과 사만타는 둘이 친밀하게 접촉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유리 감옥 바깥의 누군가가 음식을 던져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배우들의 대사가 전반적으로 맛깔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배우 스스로 캐릭터를 해석하고 나름의 표현방식을 찾게 만드는 문삼화 연출 특유의 ‘방목형 연출’ 스타일과 문어체를 철저히 배제한 각색 덕분이다. 문 연출은 “아무래도 원작자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관념적, 설명적인 부분들이 있었는데 최대한 구어체로 다 바꿨다. 무대 언어는 어려우면 안된다. 좋은 대사랑 어려운 대사는 다른 것이지 않나. 어려운 말이 아닌 좋은 말로 공연을 채워야 한다.”며 각색 방향을 밝혔다.
 
고명환과 안유진은 라울과 사만타의 모의재판 연습장면을 보여줬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지구를 멸망시킨 인류는 과연 존속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다소 철학적인 대사들로 인해 지루해질 수 있는 지점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다. 재판장, 검사, 변호사, 증인, 배심원의 자리를 오가며 그럴듯한 모양새로 재판을꾸려나가는 고명환과 안유진은 철학적 대사의 무게를 코믹한 연기로 덜어낸다.
 
김나미와 합을 맞춰 결말부 장면을 보여준 박광현은 로맨틱한 연기에 잘 어울렸다. TV드라마에 오랜 기간 출연해 온 내공 덕분일까. 그동안 티격태격하던 사만타와 다소 빠르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박광현이 담백한 어투로 미묘한 감정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연습실 가장자리에 앉은 다른 배우들이 짓궃은 표정을 지으며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에도 박광현과 김나미는 로맨틱한 감정선을 놓지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 넘치는 대사,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연극 <인간>은 12월 17일부터 2017년 3월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Mini interview] 스테파니 (사만타 역)

Q. 연극 무대는 처음이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연습생 시절부터 연기 수업을 받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닐 때도 연기수업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연기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배우들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다. 네 명의 라울이 개성이 뚜렷해서 연습 상대가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 연기를 새로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공부가 많이 된 것 같다. 2인극이라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연기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Q. 네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라울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각 배우들의 특징을 짚어줄 수 있나?   
배우별로 다른 분위기 정도는 짚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병욱 라울은 대사 전달을 많이 중요시해서 또렷한 라울로 표현하는 것 같다. 광현 라울은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연기를 능청스럽게 한다. 명환 선배는 동네 형처럼 푸근하고 재밌는 스타일이다. 오용 선배는 상대배우를 정말 많이 배려해준다. 세 명의 사만타에 맞게 자신을 바꿔주더라.  
 
Q.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는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배역과 실제 자신과 잘 맞는 편인가?
처음 제안받아 본 연극이다.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서 꼼꼼하게 대본을 읽었다. 사만타와는 ‘꽁한’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더라. 조금 전까지 울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잊고 웃는 사만타처럼 나도 감정에 충실한 편이다. 아무래도 가수활동을 하다보니 음악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반응을 뚜렷하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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