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알고보면 재밌는 사람이에요" 배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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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에 새빨개진 볼. 시종일관 이렇게 망가질 수 있을까 싶은 이 역할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한 배우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바로 32년 차 연기자, 배종옥. 주로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해서 정극 연기를 선보이던 그녀는 2년 만의 무대 복귀작으로 코미디 연극 <꽃의 비밀>을 택했다.

32년 차 배우의 이유 있는 연기 변신
“코미디 연극은 정교한 작업”


“저도 사실 재밌는 사람이거든요. 그동안 너무 진지한 모습에 짓눌려 있었죠”

작품 속에서 무게감 있는 연기로 인상을 남겼던 배종옥은 항상 마음 한 편에선 아쉬움이 있었다. 주로 진지한 역할을 맡았던 터라 코믹한 캐릭터 작품의 섭외가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그러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연극 <꽃의 비밀>은 코믹 연기에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꽃의 비밀> 초연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장진 감독에게 얘기했거든요. 재연을 하게 되면 자스민 역을 제게 달라고요. 근데 그때 장 감독은 제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나 봐요. 이후에 꼭 하고싶다고 다시 얘기를 하면서 작품에 출연하게 됐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라는 시트콤에 출연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코믹 연기는 처음이기에 시작은 쉽지 않았다. 특히 코미디 연극이 단지 망가지는 것만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캐릭터를 더 철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코미디 연극은 정확하게 구도가 잘 짜인 스토리 안에서 재미있는 요소들이 순간순간 터져야 하는 정말 정교한 작업이더라고요. 그 구도에서 1초만 벗어나도 사람들은 안 웃어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설명을 잘 해줘야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웃게 되더라고요. 코미디도 정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 공연을 통해 느꼈죠.”

배종옥이 이번 작품에서 맡은 역할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소리를 질러대는 주당 자스민. 자칫 실없고 엉뚱해 보이기만 할 수 있는 캐릭터를 그녀는 섬세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도록 캐릭터의 성격을 살려 일부 대사도 추가했다.

“그냥 주정뱅이 같아 보이는 자스민은 사실 굉장히 섬세하고 소심한 여자 거든요. 행동은 거칠지만 사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남장을 해야 할 때도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쑥스러워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과격하게 질러버리죠. 거기에서 웃음 포인트가 유발되는 거고요. 이런 해석들이 자스민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요. 근데 장진 감독이 별말 안 하는 거 보니 맞나 봐요. (웃음)”
 
연기를 못해 혼났던 20대, 치열한 연구로 극복해
좋은 작품에 출연한 건 내 배우 생활의 힘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힘든 시절은 있었다. 특히 연기 초년생 시절에는 연기를 못한다고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다고. 그럼에도 그녀는 주눅이 들기 보다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고쳐 나가기 위해 묵묵히 노력했다.

“데뷔 초반에는 연기 못한다고 엄청 혼났죠. 이런 이야기 하면 다들 놀라는데, 저 말고도 데뷔 초반에는 연기 못한다고 혼난 배우들 많아요. (웃음) 그런데 저는 혼나면 항상 기억하려고 했어요. ‘난 왜 연기가 안 되지?’, ‘뭘 공부해야 하지’ 고민하면서 여러 노력을 했죠. 3년 정도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대본을 보면 어떤 감정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은 작품이 들어오게 됐고, 배우로서 조금씩 빛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배우 생활이 어느덧 30여 년. 출연한 작품만 해도 70여 편이 훌쩍 넘은 그녀는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좋은 작품들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점을 꼽았다.

“여배우로 버티는 건 아주 힘들죠. 돌이켜보면 생각이 없이 작품들에 충실하게 빠져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은 생각에 빠져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저는 작품이 있을 때는 작품, 없을 때는 공부나 여행, 그때그때 그렇게 살았어요. 다행인 건 꾸준하게 저에게 좋은 작품들이 와줬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힘들다는 생각 없이 보냈던 것 같아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배종옥의 인생 목표
“좋은 배우가 되는 것”


배종옥은 지난 10월 자신의 30여 년 연기 인생을 담은 책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을 펴내기도 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제는 배우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내가 얘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출판사 쪽에 제의가 들어와서 집필하게 됐어요. 아까 말씀드린 제 연기 초년생 시절의 모습들도 가감없이 담았죠. 누구나 이러한 과정을 겪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배우를 꿈꾸는 친구들이 지레 겁먹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이라는 제목처럼 그녀는 50대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공부한다. 최근에는 외국인과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목표로 중국어 공부까지 시작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란다.

“공부하는 건 어느 순간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책을 항상 읽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으면 이상한 것처럼, 저는 뭔가 하지 않는 시간이 낯설어요. 시간이 있을 때 뭘 배우고, 배우다 보면 깊이 있게 들어가고.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그렇다면 열심히 공부하는 그녀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천만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냐 묻자 그녀는 손사래를 친다.

“인기 얻는 거 좋죠. 인기가 있어야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으니깐요. 그런데 인기만 얻자고 하면 배우를 하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 배우는 때로는 대중을 끌어가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어요. 때로는 대중들이 외면할지라도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도전도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명확한 목표는 한 가지에요. 좋은 배우가 되는 거죠. 어떤 한 캐릭터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려 하는 것도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어요. ‘난 배종옥이니깐 이것만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꽃의 비밀>도 그런 의미에서 하게 된 거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종옥에게 진지한 모습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모습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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