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앞에서 뛰지 않아도 괜찮아˝ <청춘예찬> 배우와의 만남

  • like16
  • like16
  • share
‘청춘’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찬란한 햇빛이 쏟아질 것 같지만, 청춘이 무작정 빛나기만 한 건 아니다. 부딪히고, 깨지고, 좌절하고, 상처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연극 <청춘예찬> 역시 푸른 봄을 찬양하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이리저리 깨어진 ‘청년’의 청춘을 그린다. 스물 둘, 아직까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청년,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누워만 있는 아버지, 아버지와 이혼 후 재가하신 어머니. 앞을 알 수 없는 청년의 청춘, 배우들은 어떤 생각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을까. 지난 26일, 블루스퀘어 2층 북파크에서 연극 <청춘예찬>의 세 청년, 김동원•안재홍•이재균 배우를 만났다. 이날 배우와의 만남 행사는 청춘과 관련된 키워드 토크와 간략한 버스킹, 그리고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DREAM – “원래 꿈은 배우가 아니었어요”
‘원래 꿈이 배우였냐’는 질문에 세 사람 모두 처음부터 배우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제각각 다른 이유로 배우의 길을 만났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김동원은 “처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지나면서 하나의 꿈이 되고, 다행히도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제 업이 되고 이 일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답했다.

안재홍은 자신을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없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연기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가면서 점점 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가장 막내인 이재균이 처음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건 ‘대학 입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대학교를 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재미있더라. 앞으로도 계속 재미있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여자 –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사이”
<청춘예찬>에서 ‘청년’이 간질을 앓고 있는 ‘여자’, 그리고 함께 고등학교에 다니는 ‘예쁜이’를 대하는 태도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거칠다. 배우들에게 이런 청년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극중 청년은 어떤 마음으로 ‘여자’를 대하는지 물었다.

이재균은 “많이 힘들기도 했고, 상대 배우를 때려야 해서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극중에서 예쁜이가 여자를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청년이 아버지의 모습 중 가장 증오하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걸 본 청년이 예쁜이를 때리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닮기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극 중 청년을 설명했다. 덧붙여 ‘청년’이 ‘여자’에게 심하게 대하는 이유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부정적으로 살아왔던 삶을 들어 설명했다.

“계속 (부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표현을 독하게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집 사정이 어렵고, 네가 나와 함께 살면 더 힘들어’ 하고 설명해주는 방법을 모르고, 보여주기도 싫어서 더 막 대하는 거다. 그런데도 여자는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한다. 항상 겉돌기만 하던 청년에게 누군가가 처음 진심으로 자신이 필요하다고 말한 거다. 그래서 결국에는 여자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더라.”

<청춘예찬>에 처음 출연한 이재균, 안재홍과 달리 2013, 14년에 청년으로 분한 바 있는 김동원 역시 청년의 감정을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결국 대본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여자가 하는 말 사이에 있는 청년이 하는 말을 싹 지워버리면 여자의 독백이 된다. 나(청년)한테 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여자 혼자서 하는 독백처럼 느껴졌다. 청년이 여자에게 ‘너 없이도 세상 잘 돌아간다, 세상은 너에게 관심 없다’고 하는 것도 사실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책임지고 말고를 떠나서, 나와 지금 함께 해봐야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하는데도 같이 있겠다는 여자를 보면서 (저렇게 나를 필요로 한다면) 집에 데리고 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그렇게 원한다면, 그래 그럼’ 하게 되는 거다.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지만,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납득이 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지금의 청춘들을 위한 버스킹
짧은 키워드 토크가 끝난 뒤 배우들이 준비한 버스킹이 이어졌다.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먼저 안재홍은 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족구왕>에 소개된 문병란 시인의 ‘젊음’이라는 시를 낭독했다. 뒤이어 김동원이 평소에 좋아하던 인디 뮤지션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가사를 한 편의 시처럼 담담히 읊었다.

이재균은 작품 속에 나오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김광석)를 짧게 노래했다. 극 중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라고 소개한 그는, 매 공연 무대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청년과 어머니가 만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몰래 만나러 가보고, (보이지 않는 어머니) 옆에서 걸어도 보고,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도 했을 거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만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을 거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는 장면에 나오는 이 곡을 소개하고 싶었다.”
 
안재홍이 소개한 <젊음> 문병란 시인
 
김동원이 소개한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
 
이재균이 소개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故 김광석
 
잔잔한 버스킹 시간이 끝나고, 행사 시작 전 관객들이 직접 준비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준비됐다.
 
Q. 커튼콜 때 어떤 감정으로 나오시는지 궁금하다.
안재홍: 공연 말미에 선생님이 세계사 책을 주시면서 ‘행복해라, 넌 젊으니까’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많이 와 닿는다. 그 후에 청년이 혼자 야광별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마치 자기 이야기 같은 공연을 보고 나와서 팸플릿을 한 켠에 두고 떠난다. 그때 감정이 참 먹먹하다. 그런데 효섭 선배님이 자꾸 웃으라고 하시더라. ‘커튼콜 때 안 웃으면 관객분들이 공연이 뭔가 잘못된 줄 안다. 커튼콜에서는 우리 공연을 보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가 될 수 있으니 활짝 웃고 끝내자’ 하셔서 마음은 많이 먹먹하지만 ‘웃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Q. (이전 질문에 덧붙여) 등•퇴장을 객석에서 공연 보듯 설정한 이유가 있나.
김동원: 등어떻게 보면 나 역시 공연장에 오신 수많은 분의 청춘을 보러 온 거다. 작품 속에서도 모든 인물들에게 청춘이 있고, 관객분들도 청춘이 있다는 의미가 (등,퇴장 장면에) 담겨있다. 커튼콜 때 감정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날은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재균: 보통 공연을 시작하면 무대로 나오는데, 이 공연은 객석으로 들어가니까 관객분들과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 공연이 뚜렷하게 무언가를 제시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공연에서 관객분들과 무언가를 나누려면 정말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커튼콜 때 마냥 웃거나 행복해할 수 없더라. 과연 내가 이 내용이 관객들에게 와 닿을 수 있도록 연기를 제대로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Q. 극 중 청년과 어머니의 이야기는 언급이 거의 없다. 청년에게 어머니는 어떤 의미인가?
안재홍: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을 것이고, 허우적대고 있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유일하게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에 대한 미안함도 있을 거다. 연민, 증오도 있고.

김동원: 극에서는 어머니와 청년이 못 만난다. 청년이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사도 거의 없다. 저도 청년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예컨대 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을 마주치고 말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마주치면 너무 불편하고, 마음 아프고 미안하니까. 서로 잊을 수 없지만 못 만나서 더 슬픈 거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극 말미에 ‘앞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가?’ 싶은 부분이 있다는 거다.

이재균: 어머니 역의 정은경 선배님이 전에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내가 아버지,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을 항상 무대 뒤에서 듣고 있으니까 언젠가 무대에서 들어오시면서 내 모습을 보셨던 것 같다. 술을 마시다가 이야기해 주셨는데,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미안하다’ 하시는 거다. ‘(극 중) 아들이 어디선가 듣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해봤다. 앞으로는 내 아들이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해보겠다. 고맙다’ 하시더라. 그런 관계인 것 같다. 서로 만나지도 않고 못 다가가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사이. 어머니도 계속 아버지를 받아주는 것도 어쩌면 청년 때문일 수도 있고, 청년도 아버지와 이러고 사는 게 어머니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였다.
 
Q. 극중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이재균: 밥 잘 먹고, 여자 잘 챙기고, 아기 낳으면 좋은 아빠 되고, 어렵겠지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김동원: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작품을 보면 결국 청년에게 아무것도 안 남는다. 그러면서 ‘청춘예찬’이 말이 돼? 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데, 안 되는 걸 알면 거기서 묘한 희망을 얻는 것 같다. 내일의 알 수 없는 희망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금 고통스럽고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에서부터 시작하면 편해지는 것 같다. ‘내가 맨 앞에서 안 뛰어도 되는 구나, 내가 저 뒤에 있어도 상관없구나. 그런데 적어도 내가 이 뒤에 있다는 것만 알고 시작하자. 그러니 열심히 뛰자’라는 희망인 거다.

안재홍: 얼마 전에 셋이서 월간지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님이 ‘청춘이란 무엇일까요’ 라고 물어보셨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노력하면 청춘인 것 같다’고. ‘청춘’ 하면 청년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애쓰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년에게도 ‘노력하자’라고 말하고 싶다.
 
청년에게 전하는 세 배우의 진솔한 마음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이 종료되고, 연이어 진행된 포토타임과 미니 사인회를 끝으로 이날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4년째 졸업을 고민 중인 고등학교 2학년생 ‘청년’, 그리고 찬란하지만은 않은 그의 청춘을 그린 연극 <청춘예찬>은 오는 2017년 2월 12일까지 아트포레스트 아트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www.studiochoon.com)

[ⓒ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공연

#다른 콘텐츠 보기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