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여자를 말하다

  • like7
  • like7
  • share
“’여배우’는 여성혐오적 단어가 맞습니다” “(여자 배우들을) 왜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라 부르죠?” ‘여배우’라는 단어와 관련해 지난해 화제를 낳았던 배우 이주영과 박찬욱 감독의 발언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화두 중 하나는 ‘여성’이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몇몇 유명인들의 여성 비하 발언을 계기로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직면하는 차별과 위험에 대한 고발이 쏟아졌고, 영화계에서는 <아가씨><미씽: 사라진 여자><비밀은 없다><연애담> 등이 그간 주변인물로만 그려졌던 여성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출판계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4배 많은 28종의 페미니즘 도서가 출간됐다.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성차별과 여성 혐오에 대해 모두가 눈을 떴고, 그 논의가 온라인과 문화계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공연계에서는 여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여기 여성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세 개의 공연이 있다.

 
'레즈비언의 사랑' 다룬 첫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2012년 초연 이후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콩칠팔 새삼륙>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홍옥임과 김용주라는 두 여성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다. 이 공연의 작/작곡과 연출을 맡은 이나오는 실제 1931년 동반자살한 두 여성에 대한 기사를 보고 연민을 느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쓰릴 미><스프링 어웨이크닝> 등 게이들의 사랑을 다룬 공연은 이미 여러 편 무대에 올라 인기를 끌었지만, 레즈비언들의 사랑을 다룬 뮤지컬은 흔치 않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라는 이중의 약자의 위치에 선 레즈비언은 이제까지 영화계에서도 소외된 존재였다. 그런 점에서 <콩칠팔 새삼륙>이 작년 화제에 올랐던 영화 <아가씨>나 <연애담>보다도 먼저 레즈비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점이다. 이 뮤지컬은 우정을 넘어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레즈비언의 사랑도 여느 남녀나 남남의 사랑처럼 당연히 존중 받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이 공연은 여성들의 자주적인 삶과 사랑을 막는 사회의 억압을 고발한다. 극 중 여성들의 결혼이나 진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나 남편에 의해 결정되고, 여성들 간의 연애는 결혼 전 남성들과의 자유연애를 방지하는 수단으로만 권장된다. ‘자유’를 주겠다며 청혼하는 류씨에게 “자유는 당신만 가지는게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옥임의 대사는 철저히 남성의 편리만 보장하는 결혼제도를 꼬집는다. ‘여성성’을 멋대로 규정짓고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기에, <콩칠팔 새삼륙>에 담긴 이야기는 2017년의 여성 관객들에게도 큰 울림과 공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이 공연은 오는 8일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막을 내린다.
 
웃음 속에 성차별 현실 꼬집는 <꽃의 비밀>
2015년 초연 이후 인기리에 세 번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연극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포도 농장을 하며 살아가는 네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꼬집는다. 여느 때처럼 한 자리에 모여 수다를 떨던 네 여자는 함께 차를 타고 축구 경기를 보러 간 남편들이 추락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들이 경기장이 아닌 환락가에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분노와 원망에 휩싸인 이들은 결국 보험금이라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분장해 남편 대신 보험가입을 위한 의료 진단을 받기로 한다.
 
주인공들이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120분간 쉼없이 객석의 폭소를 자아낸다. 그런데 그 웃음의 대부분은 남녀간의 성차별 현실이나 불합리한 부부관계를 드러낼 때 터져 나온다. “전화해서 안 받는다고 다시 거는 남편도 있어?” “불쌍해…하필 같은 집에 사는 남자를 사랑하다니” 같은 대사 뒤에는 수시로 남편에게 맞거나 남편이 혼외정사로 낳은 딸을 묵묵히 키우는 여성들의 현실이 있다. 극의 배경은 이탈리아이지만, 데이트 폭력이나 부부간 폭력 등의 사건이 실제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유머는 ‘웃픈’ 여운을 남긴다.
 
남성을 향한 풍자도 통렬하다. 어설프게 남편 행세를 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다리를 아무렇게나 벌리고 앉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멋대로 굴거나, 상대방을 향해 고압적인 말투를 쓰는 남자들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동시에 여성의 말투와 태도, 외모에 요구되는 불합리한 잣대를 깨닫게 한다. 여성들은 언제쯤 극중 대사처럼 “남자들의 수고스러운 일들을 대신 해주는” 존재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오롯이 살아갈 수 있을까. 웃음 끝에 공감을 자아내는 <꽃의 비밀>은 오는 2월 5일까지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이어진다.
 
여성의 성(性) 끄집어내는 발칙한 도발, 개막 앞둔 <레드북>
인기작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한정석 작가&이선영 작곡가의 신작으로 일찍부터 기대를 모은 <레드북>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금기시된 여성의 성(姓)에 대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꺼내는 한 여성의 로맨스를 담았다. 힘들 때마다 야한 추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 주인공 안나는 여성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자신의 추억을 소설로 쓰고, 보수적이지만 올곧은 신사 브라운과 사랑을 키워나간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왜 이제야 나왔어?” 안나가 출간하는 소설 ‘레드북’에 대한 반응은 여러모로 뜨겁다. 남성들은 여자들이 성에 눈뜨는 모습을 보며 위협을 느끼고, 여성들은 억눌려왔던 내면의 욕망을 발견하며 통쾌한 기분을 느낀다. 거센 사회적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안나의 모습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욕망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전할 예정이다.
 
<드가장><난쟁이들> 등 연애, 결혼을 둘러싼 과감한 성 담론을 담은 뮤지컬은 이미 공연된 바 있다. 그러나 여성의 솔직한 성적 욕망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레드북>은 또 다른 참신한 서사를 기대하게 한다. 이미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한 차례 벌어진 지금, 공연계 젊은 창작자들이 빚어낼 이 이야기가 여성의 성과 사랑, 삶에 대해 얼마나 진취적인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을까. <레드북>의 첫 공연은 오는 10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글/구성 :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공연

#다른 콘텐츠 보기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