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리 인터뷰① “배우의 삶은 힘든 게 일상…거기서 행복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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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마이클 리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영어로 말해도 된다고 해도 그는 몇 번이고 어휘를 고쳐가며 자신이 아는 한국어 중 가장 적확한 표현을 골라 말하려 애썼다. 인터뷰가 끝난 후 진이 다 빠지진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재미교포 2세인 그가 마흔 살이 넘어 처음 배운 언어로 자신의 뜻을 기어이 다 전달한 것이다.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사실 인터뷰는 그가 이제껏 해왔던 일에 비하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탠퍼드 의대생이었던 마이클 리는 꿈을 쫓아 안전한 길을 버리고 배우의 길로 뛰어들었다. 첫 오디션에서 배역을 맡아 <미스 사이공>에 출연했지만, 이후 몇 년간 일 없이 지내기도 했다.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단숨에 한국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뒤이은 활동도 한 편으로는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주연 배우로서 무대를 이끌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일을 해냈고, 그 시간 덕분에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한국 공연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배우 마이클 리의 이야기.
 
Q 의대에 다니다 진로를 바꾸셨습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어요.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변호사가 될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근데 아버지랑 형이 의사라서 나도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에요. 사실 좀 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영화, 공연, 클래식, 록…다 좋고 다른 분야와는 다른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2학년 방학 때 암 관련 학회 때문에 LA에 갔어요. 분명 좋은 일인데 내 안에 열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지역의 작은 연극동호회에 들어갔어요. 사람들도 좀 이상하고(웃음) 참 작고 낡은 공간인데 그 곳에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은 거에요. 그 때부터 난 이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Q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되게 힘들었어요. 첫 오디션을 본 후부터 아버지가 1년 반 동안 저한테 말을 안 걸었어요. 근데 제 첫 공연을 보시고는 ‘우리 아들 실력 좀 있네’ 하시면서(웃음)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얼굴이 달라 보인다고. 네가 그 길을 가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아쉽지만, 이곳에 네 길이라는 걸 알겠다고.
 
Q 과감하게 진로를 바꾸고 배우가 되셨는데,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나요?
있죠. 근데 슬럼프로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에게는 힘든 게 일상이거든요. 배우들은, 특히 미국에 있는 동양인 배우들은 반 이상 일이 없어요. 그래서 매년 슬럼프를 겪어요. 일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우리 삶은 롤러코스터와 같아요.
 
저도 처음 이 길을 택했을 때부터 그런 삶을 각오했어요. 안전한 삶을 원했다면 당연히 의사가 되었겠죠. 근데 이 길은 힘든 게 일상이에요. 그래서 힘든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야 하죠. 예술, 감동, 사랑, 슬픔…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성공인 거에요. 소극장에서 몇 안되는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배우들의 삶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전혀 성공으로 보이지 않겠죠. 그런데 예술가들은 단 한명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아니 자신만이라도 그런 감동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성공이거든요.
 
일반 사람들이 내 삶을 본다면 슬럼프라고 할지도 몰라요. 늘 불안정하니까. 하지만 제 기준에서 본다면 이게 제 일상이에요. 그리고 한국에 오면서부터 보너스 같은 일이 정말 많이 생겼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매니저도 있고, 이 앞에 이렇게 과자도 놓여 있고요(웃음).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게 아니고, 특별한 거죠. 보너스 같은 거에요.
 
제가 정말 운 좋게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했는데, 그 후로 2년 동안 일이 없었어요. 근데 돌아보면 그 2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성악 레슨도 받고 공부도 열심히 했거든요. 예술가들은 슬럼프를 가장 창조적인 시간으로 생각해야 돼요. 작년에도 뮤지컬 출연 제안이 왔지만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거절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왜 공연을 안 하냐고 했지만, 그런 기간이 없었다면 앨범도 못 내고, 개인 콘서트도 하지 못했겠죠. 제 생각에 배우들에겐 슬럼프도 필요해요.
 
Q 예술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조언을 구한다면 선배로서 어떤 말을 해주시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는 거에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조승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옥주현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해요. 하지만 그러면 안 돼요. 나는 마이클리인데 조승우처럼 되려고 하면 아무리 해도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이 되려고 하면, 나의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면 항상 두번째일 수밖에 없지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해내면 그건 세상에서 하나뿐인 게 되겠죠. 물론 그건 되게 어려운 거에요.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
 
Q 그동안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셨는데, 지금은 스스로 어느 정도로 평가하시나요.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어렵죠(웃음). 첫째 아들이 작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한국말을 정말 완벽하게 해요. 저랑 얘기할 때는 영어를 쓰는데, 아이들끼리 놀 때는 한국말을 쓰더라고요. 너무 신기해요.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해서 자랑스럽고 좋긴 하지만 아쉽기도 해요. 제가 한국말을 못하면 아이들이랑도 깊게 친해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어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어요. 아이들에게 자극을 많이 받아요.
 
Q 뮤지컬계 관계자들 사이에 품성이 좋은 배우,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시하는원칙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상대가 누구든지 그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해요. 가장 어린 배우든, 나이든 배우든, 모든 사람에게 다 배울 게 있거든요.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든, 하나의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가 다 중요한 사람이에요. 배우들끼리야 연습을 같이 하니까 항상 친하지만, 극장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스텝들과도 잘 지내야 돼요. 어쩌면 그들이 배우들보다 중요한 분들이죠. 음향이 안 좋으면 우리 목소리는 다 묻히는 거니까요. 무대 세트가 위험하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죠(웃음). 그래서 누구든 다 존중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도 ‘지킬 앤 하이드’에요(웃음). 나쁜 면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죠. 그래도 노력하는 거죠.  
 
Q 애처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부부관계를 잘 유지해나가는 자신만의 팁이 있다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려운 거에요. 내 불안, 두려움까지 다 보여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그런 어두운 부분까지 다 보여줘야 해요. 결혼했는데도 배우자에게 자신을 다 안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솔직히 그렇게 살면 싸울 일도 많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온전한 행복은 느낄 수 없죠. 결혼생활 중 행복한 시간은 51%, 힘든 시간은 49%에요. 그런데 그 2% 차이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은 그렇게 자신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죠(웃음).
 
Q 아이들에게는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세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지금 아이들이 9살, 7살이라 아직 친구같이 지내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친구 같은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저랑 성격이 많이 달라요. 첫째는 엄마처럼 똑부러지는 성격이고, 둘째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첫째와 놀 때는 장기 같이 규칙이 있는 게임을 많이 하고, 둘째와 놀 때는 역할 놀이나 연기를 같이 해요. 아이들이 저를 100% 믿고 어떤 얘기도 다 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면 좋겠어요.
 
Q 지난 연말에 하신 단독콘서트는 록콘서트였어요. 3월 18일에 하는 < So Far> 공연은 어떤 컨셉인가요.
작년에 했던 록콘서트는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공연이었어요. 마이클 리가 아닌 다른 역할로 변장해서 했던 공연이라, 분장도 많이 하고 파격적인 의상도 입었죠. 이번에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들려줄 수 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했던 뮤지컬이나 혹은 제 삶과 비슷한 뮤지컬 넘버들을 들려드릴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고 나서 관객 분들이 저를 좀 더 가깝게 느끼시길 바래요. 즐겁게, 행복하게, 그리고 깊게 마이클리라는 사람을 알게 되는 시간이면 좋겠네요.
 
Q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은.
우선 3월 18일에 콘서트를 열고, 그 다음에는 <록키호러쇼>에 출연할 거에요. 너무 훌륭한 작품이라 정말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그 다음 작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연말에는 다시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가을에는 뮤지컬 앨범도 낼 거고요.
 
* 마이클 리 인터뷰② 7가지 키워드로 말하는 마이클 리(링크)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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