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용범 인터뷰② “관객 악평도 이해…10년치 공연 계획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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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터뷰(링크)에 이어, 이번에는 왕용범 연출에게 평소 작업 스타일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었다. 그가 인터뷰 중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좋은 작품이 관객을 부른다’였다. 1998년 <서푼짜리 오페라>로 데뷔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스로에게, 또 관객들을 향해 그 신념을 증명해 보이려 애썼고, 마침내 증명해냈다. 이제 그는 하반기에 선보일 <벤허>와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넓혀갈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Q <뮤지컬 밑바닥에서>가 초연 후 12년 만에 무대에 올라갑니다. 그 공연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다가갔으면 하시나요.  
이 작품을 하면서 일단 제가 많은 위로를 받아요. 관객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정말 끝까지, 삶의 밑바닥까지 가거든요.  
 
원작과 달리 이 공연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가난해서 밑바닥 삶을 살지는 않아요. 지금의 관객들에게 가난하고 궁핍한 삶의 밑바닥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 작품을 보시면 인물들이 그렇게 가난해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200석 규모의 소극장인데 말도 안 되게 큰 제작비를 써서(웃음) 세트나 무대도 결코 가난해 보이지 않아요.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서 행복과 돈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가난보다도 마음의 밑바닥에 초점을 맞췄어요. 인물들이 극한 상황에 처해서 자기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에요. 거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다른 작품에 없는 독특한 매력이죠.
 
Q 예전 공연과 달라지는 것들이 있나요.
이전 공연이 10년 전이다 보니 그 사이 대사의 화술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옛날에는 말에 조사를 다 붙였는데, 요즘은 조사를 많이 생략해서 말하거든요. 그 동안 한국의 언어가 많이 바뀐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을 좀 수정했고, 그때 공연하며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밀도 있게 만들었어요. 연출 면에 있어서는 작품을 좀 더 새롭게 보려고 노력했고. 그래도 가능하면 그때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는 게 목표에요.
 
Q 평소에 관객들의 공연 평을 찾아 보시나요.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해요. (부정적인 평이 있을 때는?) 제가 부족한 거죠. 공연 초기에는 특히 평을 많이 봐요.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고. 그리고 어느 시기가 지난 후에는 적당히 봐요.
 
분명한 건, 관객 분들이 공연을 보다 불편한 게 있었다면 다 제 책임이라는 거에요. 물론 저도 제 주관으로 예술을 하는 거니까 관객들이 요구하는 대로 작품을 바꿀 수는 없죠. 근데 관객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와서 공연을 보시는 거잖아요. 내돈 내고 내가 보는데 좋은 말도 할 수 있고, 나쁜 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연이 불편하셨다면 서비스의 주체인 제가 부족한 거죠. 천 명이면 천 명의 생각이 다 다른데 어떻게 칭찬만 받으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그 중 더 많은 분들에게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 목표죠.
 
Q 배우 캐스팅에 대한 평소 생각도 궁금합니다.  
전 티켓 파워가 신기루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티켓 파워로 배우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는 거죠. 좋은 작품이 관객을 부르고, ‘그 캐릭터’를 잘하는 배우가 스타가 된다고 믿어요. 물론 상업적인 부분을 완전히 벗어나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가 그 배역을 잘할 것이냐 이지, 티켓을 얼마나 팔 것이냐가 아니라는 거죠. 티켓을 먼저 생각하면 배우가 자기 길을 못 가요. 상업적인 논리에 휩싸이다 보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자기 빛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배우를 평가할 때는 그 배우의 능력만 평가해야 배우와 작품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해요. 그 믿음으로 <프랑켄슈타인> 때는 100% 제가 원하는 캐스팅을 했어요."
 
Q 연출가는 리더로서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떤 것들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시나요.
정확한 이유가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선택을 계속 보류해요. 그래서 저와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저보고 결정장애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웃음). 설득이 안 되면 결정을 안 내리거든요. 근데 저랑 오래 작업하신 분들은 그런 면을 좋아하시기도 해요. 모 아니면 도니까. 그리고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니까. 절대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거든요. 음향이 잘못돼도, 제작사가 잘못돼도 제 책임인 거에요. 그래서 자학이 좀 심해요. 다 책임지려고 하니까. 
 
Q <두 도시 이야기> 공연을 보고 감동해서 연출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도>도 그렇고 진정성, 진실 어린 메시지에 대한 열망이 큰 것 같습니다.
아뇨, 저는 의외로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관객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설교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요. 메시지는 관객 분들이 공연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정리되는 거죠.
 
저는 오직 그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이 좋아요. <프랑켄슈타인>도 굉장히 특별한 이야기잖아요. 신이 되어본 인간과 만들어진 인간의 이야기. 그렇게 그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들의 아픔과 기쁨이 있는 작품이 좋아요. 그래서 제 작품들에 눈물도 웃음도 더 많은 것 같아요.
 
Q 하반기에 연출하실 뮤지컬 <벤허>는 어떤 작품이 될까요.
<벤허>는 한 민족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에요. 로마에게 정복당한 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 독립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어떤 방법론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요. 영화에서는 벤허라는 인물이 굉장히 성인처럼 그려지는데, 전 그렇게 안 봤어요. 그냥 보통이고 못난 인간의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 인물이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리는 모습을 그리려고 해요.
 
<벤허>라는 작품에 워낙 힘이 있어요. 영화도 좋지만 전 소설이 훨씬 더 좋아서 거기서 많은 모티브나 아이디어를 가져왔어요. 제가 지금 만드는 뮤지컬에도 신화적인 에너지가 가득해요. <프랑켄슈타인>이 두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벤허>는 그냥 ‘남자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에 대처하고, 그 운명을 헤쳐나가는 지의 모습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앙상블을 다 남자 배우로만 구성했어요. 아마 이런 공연은 처음일 것 같아요.
 
Q 뮤지컬 연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세상에는 그 사람이 연출가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왜냐면 이건 잉여 산업이거든요. 먹을 거 다 먹고, 볼 거 다 보고 나서 돈이 남아서 하는 산업이에요. 외국에서는 공연이나 콘서트를 보는 것이 문화생활의 필수 요소로 들어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든 거죠.
 
근데 이쪽(대극장 뮤지컬)으로 넘어올 후배들도 별로 없어요. 요즘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바로 뭔가가 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소극장 쪽에서는 튀는 친구들이 되게 많아요. 근데 대극장은 전혀 다르거든요. 인력 구성도 다르고, 운용 방식도 달라요. 대극장 연출을 하려면 어시스던트 생활을 하면서 익혀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그리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충분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뮤지컬 밑바닥에서>와 <벤허> 이후 계획은.
10년치 계획이 있어요. 올해 <벤허>를 시작으로 매년 혹은 격년으로 작품을 하나씩 올릴 거에요. 원작이 있는 공연도 있고, 처음부터 창작한 작품도 있어요. 흥미진진한 신작들로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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