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를 넘어 확장되는 젠더 개념, 공연 속에선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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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배우 수잔 서랜든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성적 취향은 누구에게든 열려 있다”는 말로 자신이 양성애자(Bisexual)임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가 자신은 범성애자(Open-sexual)이라고 밝혀 화제에 오른 바 있다. 그렇다면 양성애자와 범성애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양성애자가 여성/남성에게 모두 끌리는 사람이라면, 범성애자는 여성/남성을 포함한 모든 젠더에 끌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처럼 양성애자와 범성애자를 구분해 말하는 까닭은, 젠더 개념이 여성/남성을 넘어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성소수자들을 가리키던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용어에 무성애자(Asexual), 양성의 성징 및 생식기를 모두 가진 양성구유자(Intersexual),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확신이 없는 퀘스처너(Questioner), 범성애자(Open-sexual),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를 더해 LGBTAIQOC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소 머리가 복잡해지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기존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층위의 성소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공연계에서도 이미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왔고, 일부 작품에서는 남자/여자의 구분을 넘어 보다 복잡하고 섬세하게 분화된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다뤄왔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살펴보자.

 
<프라이드>

공연 속 L(Lesbian), G(Gay) - <프라이드><콩칠팔 새삼륙> 등
오는 21일 개막하는 연극 <프라이드>는 게이들의 사랑과 그들을 향한 사회의 억압을 그린다. 1958년과 2014년, 각기 다른 두 시대를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통해서다. 1958년을 살아가는 필립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하며 혼란스러워 하지만, 2014년의 필립은 친구들과의 연대 속에서 자긍심을 찾아나간다. 매끄럽게 교차되며 펼쳐지는 두 개의 이야기는 성소수자들의 지난한 투쟁사를 생생하게 전하며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이밖에도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 아픔을 겪는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며, 지난 1월 공연된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1931년 동반자살한 홍옥임과 김용주의 실화를 모티브로 억압과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경성시대 레즈비언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공연 속 T(Transgender) - <헤드윅>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과 반대되는 성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공연은 바로 <헤드윅>이다. 헤드윅은 성전환수술을 받다가 실패한 트랜스젠더이자, 분단 시대에 동독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방인이다. 사회문화적 태생에 있어서도, 성정체성에 있어서도 늘 소수자이자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그의 이야기는 강렬한 음악과 함께 국내 초연부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굴곡진 삶 속에서 편견에 맞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헤드윅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게 했고, 비단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성소수자들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도록 도왔다.     
 
(위) <헤드윅> (아래)<라카지>
 
공연 속 C(Cross Dresser) - <라카지> <프리실라> <킹키부츠>
뮤지컬 <라카지> <프리실라> <킹키부츠>에는 드랙퀸들이 등장한다. 드랙퀸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면서 여장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넓게는 크로스드레서의 범주에 포함된다. 크로스드레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별의 복장을 즐겨 입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중 이를 기반으로 독특한 화장과 가발, 몸짓 등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을 드랙이라고 부른다. 드랙퀸(Drag queen)은 여장을 한 남성, 드랙킹(Drag king)은 남장을 한 여성이다. 이는 하나의 행동양식일뿐 성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과는 관계없는 개념이므로, 드랙은 이성애자일수도 있고 동성애자일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아예 크로스드레서나 드랙퀸을 ‘성소수자’ 개념 안에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하기도 한다.
 
위의 세 공연에서도 드랙퀸은 등장인물들의 한 가지 특징일 뿐이다. <라카지>의 주인공 앨빈은 드랙퀸인 동시에 게이이자 아들 사랑이 지극한 엄마이며, <킹키부츠>의 롤라는 탄탄한 근육을 가진 수준급 복서다. 이들은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벌이는 좌충우돌 해프닝을 통해(<라카지>), 남자용 부츠힐을 제작해 망해가는 구두공장을 되살려내면서(<킹키부츠>), 함께 떠난 여행을 통해(<프리실라>) 진정한 꿈과 성공, 가족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성정체성이나 복장 취향과는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수탉들의 싸움>
 
공연 속 Q(Questioner) - <수탉들의 싸움>
지난 10일 개막한 연극 <수탉들의 싸움>(3.10~4.9 아트원씨어터 3관)은 성정체성을 어느 한 가지로 규정짓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억압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주인공 존은 남자친구가 있지만 여자 ‘W’에게도 끌린다. 그런 존에게 주변인들이 성정체성을 명확히 밝히라고 다그치자, 존은 “왜 내가 누구랑 잤냐고 물어보지 않고 무언가랑 잤냐고 물어보냐”고 항의한다. 존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이 사람이냐, 저 사람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존의 이야기는 여러 감정과 층위로 이뤄진 한 인간을 억지로 규정짓는 태도가 폭력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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