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고 충만한 무대를 향해, <세일즈맨의 죽음> 배우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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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는 것에 대해, 무대와 연기와 삶에 대해 세 명의 배우와 스무 여명의 관객들이 모여 조근조근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7일 낮, 블루스퀘어 북파크 다윈룸에서 진행된 <세일즈맨의 죽음> 배우와의 만남 자리에서다. 이날의 주인공 이승주, 박용우, 이형훈 배우와의 만남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승주, 박용우, 이형훈 배우는 내달 초 개막하는 <세일즈맨의 죽음> 개막을 앞두고 한창 연습에 임하고 있다. 아서 밀러가 남긴 희곡을 바탕으로 <레이디 맥베스>의 한태숙이 연출하는 이번 공연은 지난해 초연에서 배우들의 호연과 주인공들을 압박해오는 강렬한 무대 등으로 큰 호평을 자아낸 바 있다.
 
이날의 만남은 <세일즈맨의 죽음>과 극 중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이 연극은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았던 윌리 로먼과 그 가족의 비극을 담았다. 이승주는 아버지가 강요하는 그릇된 가치관에 짓눌린 장남 비프를, 박용우는 형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차남 해피를 연기한다. 이형훈이 맡은 버나드는 비프의 친구로, 그와는 전혀 다른 인생 경로를 밟아가는 인물이다.
 
초연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나서는 배우들
“마지막 장면 너무 아름답고 가슴 아파”


지난해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하게 된 배우들은 각기 맡은 인물들을 좀 더 깊이 있게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1년만에 다시 대본을 보니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었다”는 이승주는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자신과 가족, 넓게는 우리가 속한 사회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태숙 연출로부터 “초연보다 더 야비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다는 박용우는 야비한 동시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해피를 연기하고 싶다고.
 
전체 드라마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고민 중이라는 이형훈은 버나드 외에 한번쯤 연기해보고 싶은 인물로 해피를 꼽았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아파하면서도 밖에서는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매력적이어서다. 이승주는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윌리 로먼을 꼭 연기해보고 싶다고.
 
극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달라는 청에 이형훈은 린다 로먼 역 예수정 배우가 혼자 무대에 남는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그는 “아무 장치도 없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가슴에 확 와 닿고 가슴이 아프다. 커튼콜 때도 선생님들이 마지막 장면에서의 기분과 눈빛, 아우라로 무대에 나오시는데 그 모습을 보며 관객 분들이 박수를 쳐주실 때 모두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며 무대에서 느낀 감동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선생님들이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분들의 삶이 보이는 것 같다”는 이승주 역시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았다. “예수정 선생님이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시는 모습, 또는 찰리 역 이문수 선생님의 호흡과 눈빛들이 무대 밖에서도 깊이 와 닿는다”는 그는 원작소설 중 비프가 잠시 멈춰 생각에 빠진 장면도 함께 언급하며 관객들에게 소설도 함께 읽어보라고 권했다.  
 
박용우는 극중 찰리와 윌리가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가슴이 찡해진다고. 찰리 역 이문수 배우가 윌리를 대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한다는 그는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는 비프와 윌리의 유년 시절 장면을 꼽았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무거운 작품이다 보니 그 장면에선 좀 숨통이 트이거든요. 뭐든 편하게 다 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자유’ ‘외로움’ ‘선택’ 등 극중 인물들과 관련된 화두에 대해 얘기하는 키워드 토크와 관객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아래는 이어진 순서에서 오고간 문답이다.
 
Q 극중에서 비프는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합니다. 배우로서 무대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이승주: 비프는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이라기 보다 ‘잘못된 자기 인식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인식이 어린 시절에 멈췄고, 더 나아가 거기서 점점 더 어려지는 것 같아요. 그런 결과를 만든 것은 결국 아버지 때문이죠. 아버지가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넌 대단한 애야”라고 환상을 심어줬으니까요. 비프는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직면한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잖아요. 저도 제 진짜 모습과 마주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자꾸 어떤 결을 덧씌워서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려는 비프의 그 행동이 큰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배우로서 무대에 있을 때 자유롭지는 않아요. 심장도 터질 것 같고, 관객 분들도 신경쓰여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항상 긴장하고, 올라가고 나서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에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 편으로는 무대가 저에게 자유로운 공간이에요. 무대 밖에서 더 답답한 일들이 많아요. 무대에선 고민하지 않거든요.
 
Q 가족의 모든 관심이 형 비프에게 쏠려있는 상황에서 해피는 외로움을 경험하는데요, 박용우 배우도 외로움을 많이 타시나요?
박용우: 저도 외로움을 많이 타요. 근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 같아요. 심심하고 외로울 때는 그냥 집에 있어요. 요리해서 먹는 걸 좋아해서, 룸메이트와 맛있는 걸 해먹거나 먹으면서 예능프로그램을 봐요. (자신 있는 메뉴는?)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실망하시는데, 카레가 가장 자신 있어요. 양파를 40분 볶아서 캬라멜라이징을 하는 게 포인트죠(웃음).
 
Q 비프와 버나드는 함께 유년기를 보냈지만 서로 다른 선택으로 상반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형훈 배우는 인생에서 어떤 큰 선택들을 하셨나요?
이형훈: 연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큰 결정이었어요. 고3 올라가면서 어머니께 연기하겠다고 말씀드렸다가 밥 먹을 땐 숟가락으로 맞고, 빨래하고 계실 땐 빨래방망이로 맞고, 옷 널고 계실 땐 옷걸이로 맞고, 책 보고 계실 땐 책으로 맞았어요(일동웃음). 제가 힘든 길을 선택했다는 게 가슴 아프셨던 거죠. 그게 제 인생에서의 큰 선택이었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한 결혼이었어요. 그 밖에도 살아가며 늘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세일즈맨의 죽음> 오디션을 보기로 한 것도 저에겐 큰 선택이었죠.
 
Q 이승주 배우는 <사회의 기둥들>에서 목소리를 하이톤으로 내셨는데, <세일즈맨의 죽음> 중 과거 장면에서도 그렇게 하시나요?
이승주: 제가 톤 조절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사회의 기둥들>만큼 하이톤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좀 낮고 넓은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박용우 배우는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배우 박지일)가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박용우: 저는 원래 절대 배우를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영화감독이 꿈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무의식 속에선 연기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먹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휴…그럴 줄 알았다” 하셨어요(웃음). 지금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계세요. 저한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시죠.

Q 이형훈 배우는 그간 주로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하셨는데 이번에 버나드를 연기하신다고 해서 놀랐어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이형훈: <세일즈맨의 죽음>의 버나드가 오랜만에 하는 정상적인 인물이었어요(웃음). <필로우맨><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변신이야기>에서 했던 인물들은 굉장히 변화의 폭이 컸고, 다들 개성이 뚜렷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표현의 방법만 다를 뿐, 각각 다 개성 있는 캐릭터에요.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이 개개인이 가진 개성은 뭘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거든요.
 
차분하면서도 밀도 높은 대화가 오간 후, 배우들은 평일 낮부터 부지런히 ‘배우와의 만남’을 위해 북파크를 찾아온 관객들에게 입을 모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관객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와 단상들은 이후 연습실로 향한 배우들에게 또 다른 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이승주, 박용우, 이형훈과 함께 손진환, 예수정, 이문수 등 관록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오는 4월 12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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