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내한 뮤지컬 자막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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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앤 하이드>를 시작으로 <드림걸즈>, <시카고>, <리걸리 블론드>, <캣츠>까지. 올 상반기 원어로 공연하는 뮤지컬만 무려 5편이다. 마치 여기가 브로드웨이인가 싶을 정도다. 덕분에 덩달아 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이 있다. 바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 중요한 요소, 자막이다. 관객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자막의 세계에 대해 <지킬 앤 하이드>, <드림걸즈> 등의 번역을 맡은 김수빈 작가와 함께 알아보았다.

■ 자막은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것’
“자막을 보고 싶어서 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지킬 앤 하이드>, <드림걸즈>의 번역을 담당한 김수빈 작가는 자막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를 동시에 봐야 하는 관객들에게 자막은 사실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 무대 양쪽 끝에 위치한 스크린 자막을 보기 위해서는 수천 번씩 눈을 좌우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작가는 번역할 때 관객들의 ‘눈 피로도’를 줄이는 것을 가장 중점에 둔다. 관객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피곤하지 않으면서 작품 내용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요. 그러다 보니 최대한 원문 내용을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번역하게 되더라고요.”
 
▲ 뮤지컬 <드림걸즈> 의 자막. 쇼뮤지컬의 특성을 살린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글씨체가 특징이다.

■ 드라마 살린 <지킬 앤 하이드>, 화려함 살린 <드림걸즈>
간결·명확함을 기준으로 원문을 번역한다 해도 놓쳐서는 안 될 요소가 있다. 바로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과 정서다. 김 작가는 작품마다 각각 가진 매력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는 맞춤형 번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금 공연 중인 <지킬 앤 하이드>와 <드림걸즈>만 봐도 스타일이 완전 달라요. <지킬 앤 하이드>는 드라마가 매우 중요한 작품이에요. 주인공 지킬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미지의 실험을 시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지킬이 ‘왜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게 됐는지’를 자막만으로도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했어요. 어려운 과학용어들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면서도 지킬의 의도가 잘 드러나게 번역했죠.

<드림걸즈>는 반대로 쇼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에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미지로 포인트를 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죠. 어떤 서체와 어떤 색감으로 단어들을 적절히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자막을 보면서도 <드림걸즈> 뮤지컬 특유의 화려함이 잘 드러나기를 바랐죠.”


■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번역 “에너지가 달라”
배우에 따라 자막 스타일이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배우가 하는 연기, 호흡, 표정이 다 다르듯이 자막도 마찬가지라는 것. 특히 문화 특성상 외국 배우들과 한국 배우들의 에너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라이선스 버전의 내용을 그대로 자막에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킬 앤 하이드>의 ‘브링 온 더 맨(Bring on the men)’이 특히 그랬죠. 한국 라이선스 버전 곡 같은 경우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더라고요. 수위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고요. 하지만 이번 월드투어 속 루시는 더 직설적으로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연기를 하더군요. 성적인 표현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자막에 녹여냈죠.”
 
국민송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유명 곡도 예외는 될 수 없는 법. 하지만 김 작가는 모두가 아는 명곡의 경우엔  배우의 감성은 살리되 최대한 원래 알고 있는 가사를 살려주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관객들이 잘 아는 노래를 바꾸는 건 부담이 크죠. 자기가 알던 가사와 다른 가사가 뜰 때 위화감이 들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반복되는 가사는 그대로 두되 다른 부분들을 배우 톤에 맞게 조금씩 바꿨어요."
 
■ ‘잡고 풀기’로 살리는 자막의 리듬감
노래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뮤지컬 특성상 자막의 리듬감도 무시 못 할 요소다. 김 작가는 이를 ‘잡고 풀기’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배우의 호흡에 따라 한 페이지에 들어갈 가사의 분량을 쪼개고 늘려가면서 리듬감을 살리는 방법이다.

“<지킬 앤 하이드> ‘머더 머더(Murder Murder)’라는 넘버에선 살인 살인이라는 가사가 반복돼요. 관객들이 자막만 보고서도 리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했어요. 살인 살인이라는 단어만 따로 한 페이지에 넣고 자막이 넘어갈 때마다 노래의 운율을 함께 느끼게 했죠.

<드림걸즈> 같은 경우에도 코믹한 지미의 대사에 리듬감을 더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작곡가 씨씨와 지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씨씨가 지미에게 '내가 써준 신곡 어때?'라고 묻는 장면에 지미는  '니가 써준 신곡 디져 / 졸려 디져'라고 대답하거든요. 라임을 맞춰 번역한 뒤 대답을 두 페이지로 나누었어요. 보는 사람들이 리듬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죠.”
 
▲ <지킬 앤 하이드>의 자막. 곡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반복되는 가사를 따로 나누었다.

김 작가는 취재 과정 내내 튀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작품 속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자막을 통해 내용만 빨리 파악하고 무대 장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저의 바람이자 목표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최대한 문장 길이를 줄여야겠죠?”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클립서비스, 오픈리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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