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 대구

장르
클래식/오페라 - 오페라
일시
2008.01.05 ~ 2008.01.05
장소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구.대구시민회관)
관람시간
100분 (인터미션:20분)
관람등급
만 5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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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1920년 푸치니는 18세기 베네치아의 작가 카를로 고치가 쓴 "투란도떼 (Turandotte)"란 우화극을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하고 작곡하였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소재를 다뤄본 적이 없었던 그는 <투란도트>야말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열정과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그의 정열로 1년 만에 1막을 완성하였으나 ‘전설 속의 중국'이라는 이전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몽환적인 배경 때문에 작곡이 지연되었다. 푸치니 스스로 예술가적 자질에 회의를 품게 할 정도로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힘이 그를 매혹시켰다. 어려움과 고민 속에서도 투쟁적인 노력으로 간신히 2막을 완성해낸 푸치니는 1923년 6월이 되어서야 3막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특히 원작에는 없지만 전형적인 푸치니적 히로인이라 할 노예 류가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경우 멜로드라마의 대가답게 완숙한 솜씨로 빠르게 곡을 마무리 지었다. 푸치니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류의 죽음 다음에 전개되는 두 주인공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간의 '사랑의 2중창’었다. 푸치니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인 “사랑의 듀엣”이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푸치니가 마지막 사랑의 2중창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후두암에 따른 건강악화 였지만,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비극의 작곡가일 수 밖 에 없었던 푸치니로서 오페라의 마지막을 비극의 정화 (katharsis) 대신 사랑의 승리로 끝낸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의 정신세계 안에선 수용하기 힘든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1924년 11월 29일,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마지막 2중창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푸치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투란도트>의 저작권자인 리코르디 출판사의 사장 티토 리코르디와 예술적 동지 토스 카니니는 오페라의 피날레를 대신 작곡할 적임자로 토리노 음악원 원장으로 있던 푸치니의 친구이자 후배 프랑코 알파노를 지명하였다.알파노는 푸치니가 남겨놓은 23페이지 분량의 단편적인 스케치를 바탕으로, 앞선 장면에서 제시된 몇 가지 동기들을 활용해가며 오페라를 마무리 지었다. 1926년 4월 25일 라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역사적인 초연을 갖게 되었는데, 이 공연에서 토스카니나가 푸치니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푸치니가 작곡한 3막 ‘류의 죽음’ 까지 지휘한 뒤 지휘봉을 내려놓고 관객에게 돌아서서 “마에스트로가 작곡한 것은 이 부분까지입니다.” 라고 이야기 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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