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머리
- 장르
- 연극 - 연극
- 일시
- 2007.07.25 ~ 2007.08.02
- 장소
- 상명아트홀 2관
- 관람시간
- 0분
- 관람등급
- 만 15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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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머리와 몸이 뒤바뀐 기가 막힌 사건! 제 여자라니까요! 누가 제 남편인가요?
아라비안 나이트 보다 재미있고, 솔로몬의 재판보다 흥미진진하다!
<뒤바뀐 머리>는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다.
완벽한 머리를 갖고 있으나 몸이 부실한 남편. 그리고 완벽을 몸을 지난 남편의 친구. 여인은 과연 누구를 사랑하는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한 두 남자의 머리를 붙여 다시금 살아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남편과 친구의 몸과 머리가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진다!
진짜 남편은 누구인가? 머리를 가진 자인가, 몸을 가진 자인가? 그리고 그녀가 진정 사랑하는 남자는 누구인가?
<뒤바뀐 머리>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들 보다 진기하고, 솔로몬의 재판보다 버금가는 흥미진진함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인도 신화의 이색적 소재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머리와 몸”의 이야기
-2006년 작은신화 20주년 기념 공연에 이어 새로이 선보여.
2006년 극단 작은신화 20주년 기념 공연 “각양각색” 시리즈 중 하나였던, 이곤 연출의 <뒤바뀐 머리>가 2007년 새롭게 선보인다.
단연 돋보이는 소재와 이야기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연극 <뒤바뀐 머리>는 짧은 공연기간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연극 <뒤바뀐 머리>는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뒤바뀐 머리(The Transposed Heads)’와 인도 극작가 기리쉬 카나드(Girish Kanard)의 희곡 ‘하야바다나(Hayavadana)’를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이다.
이곤 연출은 인도의 신화와 독일의 문학을 매개로 현재 몸짱, 얼짱 열풍에 몸살 앓는 한국의 정서를 불어 넣는다.
남녀의 사랑과 아이러니 속에 감쳐진 “몸”이 정치학을 살펴본다.
현대사회는 이성과 육체의 절묘한 줄다리기를 시도하면서 시시각각으로 서로의 중요성과 상품성에 대해서 논한다.
<뒤바뀐 머리>는 결국 머리와 몸 무엇이 중요한가? 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제 현대 한국 사회는 남녀노소의 구분을 떠나 “몸”의 정치학을 적용하는 사회에 이르렀다.“
그 어느 나라보다 유교적인 정서가 큰 나라에서의 그러한 것은 의외적인 일.
<뒤바뀐 머리>는 몸과 머리가 엇갈린 남녀의 사랑과 아이러니 속에서 이성과 몸 무엇이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연극 ‘뒤바뀐 머리’는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뒤바뀐 머리(The Transposed Heads)’와
인도 극작가 기리쉬 카나드(Girish Kanard)의 희곡 ‘하야바다나(Hayavadana)’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다.
이 이야기의 최초 원전은 AD 1070, Somadeva가 지은 Kathasaritasagar라는 설화집에 포함돼 있다.
이 책은 악마가 왕 Vikramadiya에게 짧은 이야기들을 한 뒤 마지막에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에 왕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뒤바뀐 머리는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마다나순다리(Madanasundari)라는 여자는 남편 다발라(Dhavala)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오빠가 방문해 여신 파바티(Parvati)의 축제에 여행 가자고 한다.
여행 중에 남편은 파바티의 신전에 들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고, 잠시 뒤 남편을 찾으러 간 그녀의 오빠도 슬픔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뒤이어 마다나순다리도 신전 안으로 그들을 찾으러 갔으나 죽은 그들을 발견하고 목매달아 죽으려 한다. 하지만 두 아들이 자신을 위해 희생한 데 대해 흡족한 여신이 다시 그 둘을 살려주기로 한다. 그런데 당황한 마다나순다리는 그 둘의 머리를 바꿔 붙인다.
이까지의 이야기를 한 뒤 악마는 질문을 던진다. “누가 마다나순다리의 남편인가?”왕은 대답한다. “남편의 머리를 가진 사람이 남편이다.
왜냐하면 머리는 몸을 다스리고 정체성은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왕은 감성보다 이성의 우위를 인정한 것이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짐머가 20세기 초 이 얘기를 다시 썼다. 짐머는 아내가 머리를 바꾼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의문을 던졌고, 남편은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자살했으리라 추측했다.
1940년에 쓰여진 토마스 만의 소설은 짐머의 이야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머리가 바뀐 후의 이야기는 모두 그의 창작이다.
토마스 만은 두 인물의 카스트의 차이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는 인도에서의 카스트를 아리안이라는 외래문명(브라만 사상)이 드라비다의 토착문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폐쇄적 위계구조라고 해석했다. 소설은 두 가지 본성(브라만의 머리와 드라비다의 몸)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함을 보여주며 나치의 Superhuman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카나드는 서구로 수입된 인도의 전통을 다시 역수입했다.
그리고 서구문명으로의 수용과정에서 생긴 여러 오해와 오류들을 다시 인도의 전통 안에서 수정했다. 그는 만의 소설을 각색해 약샤가나(Yakshagana)라는 인도 민속극 형식 안에 집어넣었다. 민속극은 낮은 카스트가 즐기는 연희형태이다. 카나드는 낮은 카스트가 즐기는 민속극이 주류의 사상과 체계를 비판하고 전복시키는 우리나라의 마당극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또한 이성을 중시하는 브라만적 사고를 전복시키기 위해 코끼리 머리를 가진 완전함의 신 가네샤를 찬양하고, 말의 머리를 가진 반인반마 하야바다나의 머리가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말이 되어 완전함에 이른다는 역발상의 결말 등을 시도한다.
우리는 이 ‘몸과 머리의 분리와 재결합?’ 이라는 화두가 지금 다시 해석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점점 더 사회는 스마트화 되어가고 있고 머리와 몸, 정신과 육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하고 있다.
과연 인간의 존재는 정신과 육체로 이분되어 설명 되어 질 수 있는 것일까?
카필라와 데바닷타는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채 섣불리 서로를 동경했지만 사랑, 결혼, 출산, 고행, 죽음 등 삶의 통과의례를 경험하며 점차 자신의 본질에 다다른다. 머리가 바뀐 후 몸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성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 의한 귀결이다.
카필라는 현실에 강한 의지적 인물로 이 과정에서도 데바닷타 보다 적극적이다.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고행을 한다.
카필라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적극성 때문이다.
데바닷타는 오히려 어긋난 본질에 머무르고자 하는 속내였으나 몸은 순리에 따라 본질로 회귀한다.
이로써 데바닷타 역시 아무리 파드미니를 사랑하여 카필라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해도 자신의 본질은 데바닷타임을 안다.
이런 대전제 위에 치러지는 마지막 그들의 결투는 싸움이 아닌 오히려 화해와 결합의 의식이다.
결투의 중심에 서있는 파드미니는 이 극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다. 변덕스럽고 충동적이며 때로는 이해 불가하다.
선과 악이 혼재하는 칼리 여신과 닮은 듯도 하다. 그녀는 카필라에게 반했으면서 데바닷타와 결혼하고, 몸으로는 카필라를 입으로는 데바닷타를 부르고, 그녀의 머리는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지만 발은 그 길을 따라간다. 그녀는 불완전한 우리 자신이다. 불완전함은 인간의 본질이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완전해지려고 노력함으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닐까?
본질을 파헤친다는 것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잔인한 문제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본질을 깨닫고 완전해지는 순간은 오직 죽음을 맞이할 때 뿐이기 때문이다.
감성과 이성 사이의 균열된 틈을 위태롭게 혹은 행복하게 걷는 우리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