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장르
연극 - 연극
일시
2007.08.21 ~ 2007.10.21
장소
산울림 소극장
관람시간
140분
관람등급
만 14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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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기다림’의 연극, 연극적 기다림
약속, 만남, 그리고 기다림의 놀이
나무 한 그루뿐인 어느 시골길에서, ‘고도’라는 인물과의 약속을 위해(다시)만난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 지루한 기다림, 그 과정에서 잠시 스쳐가는 포조와 럭키라는 기괴한 인물들, 끝내 연기되는 약속, 그래도 반복되는 기다림...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은, 몇 줄로 그럭저럭 요약될 수 있는 이 연극의 ‘줄거리’는 물론 그 이면의 본질적인 상황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일반적인 연극에서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 ‘기다림’은 언제나 그것의 대상과 목적을 상정하고, 그 기대가 배신되건 이루어지건 간에 늘 어떤 상황의 완결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고도>의 기다림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더욱 부조리한 것은 약속의 시간도, 장소도, 목적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상도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하다”는 에스트라공의 푸념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총체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들에게 보다 시급한 것은 ‘지금-여기’의 상황을 메우고 견뎌내는 일이다. 잠시라도 의혹과 좌절의 순간들을 벗어나기 위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에스트라공). <고도>의 희극성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절망적인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나’의 존재를 둘러싼 모든 부조리함이 극복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안에서 그 방식대로 ‘나’도 자유롭게 ‘놀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상황이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서커스라면, 코미디라면, 결국 ‘연극’이라면, ‘나’도 ‘배우’로서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고고와 디디가 벌이는 다양한 ‘놀이’들(핑퐁처럼 주고받는 대화들, 만남을 축하하기, 인사하기, 욕하기, 반대말 하기, 화해하기, 모자놀이, 포조와 럭키 놀이...)은,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역할’로 받아들이면서 무의미를 견뎌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그 외에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베케트가 <고도>를 쓰면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역에 당대의 최고 희극배우였던 챨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을 염두에 두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고도를 기다려야 해”라는 말은,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마법의 주문처럼, 고고와 디디를 다시 그 지루한 ‘기다림’의 현실로 불러들인다. <고도>의 축을 이루는 ‘기다림’, 그리고 그 과정 속의 인물들에 대해 모두 이해한다 해도, 이 연극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고도」에서 가장 결핍된 부분은 정작 ‘고도’가 아니던가? “내가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작품에서 밝혔을 것이다”라고 짐짓 시치미를 떼는 베케트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가? 바꾸어 생각해 보면, ‘고도’가 누구, 혹은 무엇인지는 애초에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거나, 더 나아가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닐까? ‘고도’가 아무 데도 없고 또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이 아이러니 자체가 이 연극을 이해하는 핵심이 아닐까? ‘기다림’의 상황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에 의해 닫혔다가 다시 반복되는 이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다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기다리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그러나 베케트는 <고도>를 통해 어떠한 교훈도, 대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고도가 온다 해도, 그것이 고고와 디디에게 구원과 단죄 중 어느 쪽인지조차 명백하지 않다(고도가 지닌 양면성은 작품 곳곳에 암시되어 있지만, 그가 자신의 메신저인 두 소년 중 하나에게는 애정으로, 다른 하나에게는 매로 대한다는 사실을 통해 좀 더 분명해진다). 50년 동안 이 연극을 접한 관객들은 각자 나름대로 ‘고도’라는 빈자리를 채워 왔다. 그것이 절대에 대한 믿음이건, 추상적인 개념이건, 일상적인 희망이나 꿈이건, 욕망하는 대상이건 간에, 기다림의 행위가 지닌 절실함, 불안, 덧없음, 반복 등은 지극히 보편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의 기다림은, ‘고도’라는 대상 자체가 그렇듯이, 근거 없는 낙관도, 손쉬운 비관도 허용하지 않는다. 웃음과 눈물, 긍정과 부정,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 성스러움과 속됨이 엇갈리는 그 지루한 기다림의 어디쯤에선가, 언제쯤에선가, 그들은, 우리는 ‘고도’를 만날 수 있거나, 혹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고고와 디디는 그렇게 50년을 기다려 왔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고도’라는 빈 자리를 채우려 애쓴다. 다시 50년이 지나도, 그들은 그 벌판에 그대로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이미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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