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초청 재개관 기념연주회

장르
클래식/오페라 - 클래식
일시
2009.10.20 ~ 2009.10.20
장소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관람시간
120분 (인터미션:15분)
관람등급
만 8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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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두 말 필요없는 세계정상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가 이번 문화예술회관 재개관 기념연주회에 초청되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단조 Op.40을 연주 하게된다.

교향곡과 라흐마니노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yevich Rachmaninov 1873-1943)

20세기 초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고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 전설적인 기교와 13도의 음정까지도 연주해 낼 수 있을 만큼 손이 컸던 그 당대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명이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교향곡 1번 이후 12년 만에 작곡되었다. 라흐마니노프가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을 때 만들어진 곡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라흐마니노프가 스물두 살 때 작곡한 교향곡 1번은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고, 그 결과 라흐마니노프는 이후 3년 동안 아무런 주요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작품의 초연을 지휘했던 글라주노프의 탓이기도 했는데, 훗날 라흐마니노프의 아내의 말에 따르면, 연주 당시 글라주노프는 레슨 중에도 테이블 뒤에 술병을 숨겨놓고 빨대로 마시면서 레슨을 했다고 하니 가능할 법도 한 일이다.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2번을 작곡할 당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러시아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러시아 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피의 일요일’사건이 1905년에 일어났다. 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측되는 이 사건 이후 러시아의 정치적 불안함은 점점 커져만 갔고,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의 상임 지휘자로 있던 라흐마니노프는 안식년 휴가를 내고 1906년 가을, 가족과 함께 드레스덴으로 잠시 몸을 피합니다. 물론 피아니스트, 작곡자, 지휘자로 항상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해야 했던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 곳에서 1번 교향곡 이후 십 이년 만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이 이 2번 교향곡이다. 초연은 멀티플레이어답게, 자신이 직접 지휘를 맡았다.

라흐마니노프의 친구이자 동료인 니콜라이 메니터에서 쓴 편지에 의하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4번 g단조 작품 40은 그가 자신의 모국 러시아를 떠난지 9년 뒤인 1926년에 씌여졌다. 초연은 1927년 3월 18일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는데, 역시 작곡가 자신이 독주자였으며 지휘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였다. 여기서 우리는 역시 현저하게 나타나는 라흐마니노프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성격과 러시아적인 성격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2악장에서 그는 영국 동요인 '세 마리의 장님 쥐'의 운율을 사용하다가 선율과 분위기를 반음계적 빛깔로 교체하면서 라르고 악장에서는 좀 더 러시아적인 사고와 느낌으로 근접하게 된다. 이는 낯설음 속에서의 친숙함의 발견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라르고 악장을 볼 때 라흐마니노프는 충분히 침묵의 대가라 불릴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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