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모시너리

장르
연극 - 연극
일시
2009.12.03 ~ 2009.12.20
장소
미아리고개예술극장
관람시간
100분
관람등급
만 10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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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개인무한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신자유주의 시대, 모바일 기기와 웹의 발달로 디지털 유목주의이념이 널리 소비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가족이야기는 어쩌면 시대의 관심에서 저만치 뒤쳐진 낡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동안 공연계에서 가족을 소재로 소개되어 온 연극들의 경우 과거 힘들었던 시절의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하거나 모녀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가부장적인 가족관의 시선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했던 경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족이야기에 대해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거로의 회귀 혹은 도피나 최종적인 종결지점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를 향한 출발지점이기 때문이다. 엘리모시너리는 기행과 도피, 강요와 외면이라는 과거의 기억과 그 부정적인 선택을 벗어나 알을 깨고 날아올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삼대에 걸친 모녀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단지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있는 상투적인 가족관계가 아닌 자신이 선택하는 가족의 의미와 그런 가족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작가인 리 블레싱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종종 가족 사이의 역학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엘리모시너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작품은 1985년에 미국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이후 1987년 미국극작가 연극협회에서 희곡으로 발간되었다. “엘리모시너리”는 웨스브룩 집안의 삼대에 걸친 비범한 재능을 가진 모녀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성공적인 극작을 인정받아 1997년 명성있는 로스엔젤레스 드라마 비평협회 상(Los Angeles Drama Critics Circle Award)을 수상했다.

“엘리모시너리”는 웨스브룩 집안의 삼대에 걸친 세 명의 여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괴팍함을 통해 현실의 얽매임을 벗어나 자신의 독립적인 권리를 쟁취한 할머니 도로시아와 무엇이던 한 번 들은 것을 잊지 않는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이지만 엄마의 질식할 것 지배에서 도망친 도로시아의 딸, 아티. 아티에게 버려져 할머니 도로시아의 손에 길러진 뛰어난 지능과 감수성을 가진 아티의 딸, 에코우, 이렇게 세 여자의 미묘한 관계를 탐구해 들어간다. 작가 블레싱은 개인적으로 또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확립하려 분투하는 여자 세 사람의 삶의 조각조각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이처럼 날카롭고 성숙하게 세 모녀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엘리모시너리”는 관계 맺음와 용서를 필요로 하는 인간존재의 원초적인 욕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한 단과 몇 개의 소품만을 이용하며 극도로 단순화된 무대로도 충분한 이 작품은 과거의 시간과 세 명의 여자들의 기억을 따라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진행된다. 이런 각 인물의 잠재의식과 현실적인 사건사이의 연결점을 드러내기 위해 “엘리모시너리”는 영화의 몽타쥬적인 내러티브 요소를 이용한다. 즉,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장면들의 배치를 통해 각 세 사람의 개별적인 현실과 감정이 결국 서로 연결되어있고 유사하지만 무의식적인 선택을 통해 차단되어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선택과 차단은 장면의 몽타쥬적인 구성에서만이 아니라 같은 장면의 세 명의 인물의 대화와 움직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전화통화의 장면에서 각 인물은 서로 다른 공간에 속해있지만 동시에 각 자의 공간이 중첩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무대상의 공간을 겹쳐 사용하여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시각화한다.

영상은 눈앞에 보이지만 실제 존재는 부재하는 것이고 존재는 부재하지만 이미지를 통해 존재한다. 이처럼 공간적으로 함께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하고 공간적으로 부재하지만 심리적으로 늘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영상을 통해 은유한다. 영상은 배경적인 스펙타클로 사용되기보다 인물의 내면을 은유하도록 활용한다.

음악 혹은 음향은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인물의 심리를 은유하는 방식으로 극에 개입한다. 예를 들어 여행 가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상념에 잠기는 아티의 머리속에 스치는 것은 빈 공터에 혼자 삐걱이는 시소의 쇳소리이다. 하지만 사실 세 사람의 인물은 이미 각각이 하나의 악기이며 작품의 진행이 이 악기의 연주과정이다. 도로시아는 바순의 우스꽝스러움과 슬픔을 담고 있고 아티는 더블 베이스의 우울과 결벽증을, 에코우는 오보에의 깨달음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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